뇌 속 기억을 불러오는 과정을 무대로…화이트큐브 신작 ‘리콜…’
불분명한 기억 소환 과정을 무용극으로
무용·서커스·아크로바틱…고난위 춤사위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는 우리의 이야기”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거대한 트램펄린과 3m 높이로 된 정육면체의 철골 구조물이 들어찬 무대. 이 곳은 ‘인간의 머릿속’이다. 피부색과 같은 복장을 한 7명의 무용수들은 철골 구조물 위로 눕고 서고 매달리고 이동한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얽히고 설킨 머릿속 생각과 기억, 감정의 움직임. 아슬아슬하고 위태롭다.
“철골 구조물은 우리 머릿속의 한 공간, 무용수들은 시냅스를 상징해요. 물에 잉크가 떨어졌을 때 퍼져나가는 느낌처럼 구조물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거죠.”
그러다 누군가는 무대 한 켠에 뚫린 구멍 아래 설치된 트램펄린으로 툭 떨어졌다 난데없이 훅 튀어오른다. 잊고 싶었으나 잊히지 않아, 끝끝내 따라다니는 질기고 징그러운 상처, 이제는 떨쳐냈다 싶을 때 다시 찾아오는 불청객 같은 기억의 파편. 이 무대는 ‘기억이 소환되는 과정’을 몸으로 그린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억의 세계’를 형성화 한 화이트 큐브 프로젝트의 ‘리콜(Recall); 불러오기’다. ‘2022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 선정된 작품이다.
무대로 기억을 불러내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최근 대학로에서 만난 안무가 겸 연출가 정성태는 “우리에게 ‘기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졌다”고 말했다.
“살아가며 하게 되는 많은 경험과 기억, 과거의 히스토리들이 우리 머릿속과 몸 안에 기록돼 원할 때든 원치 않을 때든 어떤 자극과 감각에 의해 불려 나오는 경험을 하게 되잖아요. 그 기억들은 과연 당시의 정확하고 명확한 기억이겠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지나치게 확대 해석해 고통스럽게 남겨진 것은 아닌가 싶었던 거죠. 그 기억들에서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할 순 없을까 고민했던 것이 이 작품의 시작이에요.”
평화로운 일상을 파고드는 불분명한 ‘기억의 조각들’을 소환하기 위해 무대는 실험을 거듭한다. 정 안무가는 “가장 고민한 것은 기억이 소환되는 과정을 어떻게 시각화 하는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무용수의 몸은 “가장 중요한 오브제”다. 무용수들은 1막에선 “즐거움, 기쁨, 슬픔 등 기억에 대한 감정을 움직임으로 표현”하고, 2막에선 “감정과 기억이 일어나는 상황을 처리하는 머릿속 과정을 그린다”. 이 때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무대장치다. 기존 무용 무대와 달리 경사, 철골 구조물, 트랩, 트램펄린 등의 장치가 올라왔다.
“머릿속엔 세포도 있고 시냅스도 있잖아요. 그것을 의인화한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거예요. 이건 지극히 과학적이지 않아요. (웃음) 무용수들이 구조물을 타고 경사 무대에 올라 미끄러지고,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고, 트램펄린으로 떨어지는 것을 기억의 처리 과정으로 표현한 거죠.”
잊고 있던 기억을 트램펄린으로 보여주는 상상력이 기발하다. 의미도 상징적이다. “갖다 버리고 싶은 부정적인 기억을 처리하는 감정의 쓰레기통”이라고 한다. 하지만 기억은 그리 쉬게 지워지지 않아 버려졌다가도, 습격하듯 튀어오른다.
무용수들이 온몸을 사용해 꾸미는 무대는 역동적이다. 복잡한 머릿속 ‘사정’을 형상화하기 위해 “스킬적인 부분에 집중”했다. 무용과 컨템포러리 서커스, 아크로바틱까지 무대로 담아냈다. “좀 대단해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웃음) 서커스적인 움직임과 아크로바틱을 표현하려고 했고, 아이솔레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어요.”
표현 방식은 좀처럼 볼 수 없는 고난도 동작들의 연속이다. “서커스는 리스크예요. 리스크가 있는 모든 것은 다 서커스가 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서커스에서도 가장 위험하고 사람이 제일 많이 죽는 기구가 트램펄린이에요.” 탄성으로 인해 어디로 튕겨나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무대에서 정 안무가는 트램펄린을 이용해 최고 4m까지 뛰어오른다. “목숨을 담보로 한 고난도 춤의 세계”를 구현하는 무대인 셈이다. 재치있는 상상력을 구현하는 안무는 차원이 다른 ‘몸의 예술’이다.
정 안무가는 “이 작품엔 거대한 스토리텔링이나 메시지는 없다”고 말한다. 다만, 무대가 끝나고 돌아간 자리에서 “제목처럼 누구에게나 있는 어떤 기억이 일상에서 소환된다면 너무나 영광”이라고 한다.
“기억을 불러올 때 누구나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살아야하는 지를 고민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예요. 매작품 (화이트 큐브의) 방향성은 같아요. 우리의 삶은 늘 힘들잖아요.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왜 이렇게 힘들게 살까, 우리 좀 행복하고 긍정적으로 살자는 메시지를 늘 가지고 있어요. 이 공연도 그래요. (공연을 통해) 부정적인 것을 지우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얻는 기회를 됐으면 좋겠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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