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30분 설국열차의 낭만… 빛·맛·선율 쏟아지는 북미의 겨울축제[박경일기자의 여행]
축제의 도시 ‘몬트리올’
차창밖 설경에 빠져 도착한 곳
빌딩·유럽풍 건물 절묘한 조화
전망대 올라 내려다보면 압권
아름다운 대성당·광장 등 빼곡
33㎞ 길이 언더그라운드 시티
1600개 넘는 상점·식당의 유혹
동부 여행 종착지 ‘퀘벡’
중세 프랑스 연상케 하는 풍경
31년간 건축한 프롱트낙 호텔
드라마 ‘도깨비’촬영지로 유명
몬트리올·퀘벡(캐나다)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캐나다를 대표하는 최고의 자연경관 명소를 꼽으라면 주저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캐나다 동부 도시여행의 정점이 어디인지 묻는 질문에 답하기는 쉽습니다. 몬트리올과 퀘벡시티. 캐나다 동부 여행의 최종 목적지와 다름없는 퀘벡시티는 중세 유럽풍의 고색창연한 분위기에 여행자들이 쉽게 반하는 곳이고, 퀘벡 주에서 가장 큰 도시 몬트리올은 북미의 현대적인 역동성과 유럽의 전통적인 기품이 자연스럽게 결합한 대도시입니다. 지난주에 이은 캐나다 동부 여행의 두 번째 코스. 몬트리올을 거쳐 퀘벡시티까지 갑니다.
# 영국 지배 속에서 지켜온 프랑스의 전통과 문화
캐나다 동부 세인트로렌스 강 주변을 한때 ‘누벨(Nouvelle) 프랑스’라 불렀다. 누벨이란 영어로 ‘뉴(New)’를 뜻하니 ‘새로운 프랑스’란 의미였다. 원주민과 동맹을 맺고 사냥을 해서 유럽에다 모피를 팔았던 프랑스 상인들이 정착해 지금의 퀘벡시티 인근에 도시를 세웠고, 이어 세인트로렌스 강 중류 몬트리올의 작은 마을 빌마리에 식민지 거점 도시를 세웠다.
어디에서나 그랬듯 캐나다에서도 식민지 침략의 시작은 ‘교역’이었다. 퀘벡주 일대에서 교역의 주도권과 식민지 권리를 놓고 프랑스는 영국과 사사건건 충돌했다. 북쪽의 허드슨만에 교역소를 설치한 영국은 캐나다 영토의 지배와 무역 권리를 주장하고 있었고, 이에 맞서 프랑스는 세인트로렌스 강 일대를 ‘프랑스 왕령’으로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캐나다 땅을 놓고 벌어진 영국과 프랑스의 첨예한 갈등은 결국 1759년 영국 군대가 프랑스 군대를 공격하면서 정면 충돌했다. 치열한 전투 끝에 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돌아갔고, 누벨 프랑스는 종언을 고해야만 했다. 영국은 전쟁에서 이겼지만 당시 퀘벡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했던 프랑스계 문화와 전통까지 지배할 수는 없었다. 영국 연방의 지배 아래 독립 주가 된 퀘벡이 프랑스 문화가 깊숙하게 녹아있는 ‘캐나다 속 프랑스’ 모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이유다.
프랑스 정착민과 가까웠던 원주민 알공킨족 언어로 ‘강이 좁아지는 곳’이란 뜻의 ‘퀘벡’은 캐나다 10개 주(州) 가운데 하나의 지명이면서, 퀘벡 주의 주도인 퀘벡시티를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퀘벡이라 부를 때는 퀘벡시티를 지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퀘벡시티는 인구 50만 명 남짓의 작은 도시. 그러나 퀘벡 주는 캐나다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주다. 자그마치 대한민국의 17배다. 넓다고 하지만 퀘벡 주 대부분은 사람들이 살기 힘든 허드슨만 북쪽의 극한지역이고,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는 대개 세인트로렌스 강 주변이긴 하다.
# 퀘벡주의 도시, 몬트리올에 대한 과소평가
퀘벡주의 주도(州都)는 퀘벡시티지만, 퀘벡 주에서 가장 큰 도시는 몬트리올이다. 몬트리올 인구는 퀘벡시티의 8배가 넘는 422만 명에 달한다. 캐나다 동부를 여행하는 한국인 여행자들은 대부분 몬트리올을 들른다. 그건 몬트리올 자체의 매력 때문이라기보다 ‘퀘벡시티까지 가는 직항 비행기가 없기’ 때문이다. 목적지 퀘벡까지 가는 길에 몬트리올을 징검다리처럼 딛고 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몬트리올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몬트리올을 이렇게 과소평가한다는 게 터무니없는 일이라는 건, 몬트리올에 이틀쯤 머문다면 누구나 알 수 있다.
토론토에서 몬트리올까지, 그리고 몬트리올에서 다시 퀘벡까지 이동할 때 열차 비아레일을 이용했던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비아레일은 총 1만2500㎞의 거리를 운행한다. 철도 노선은 크게 세 개로 나뉘는데 국토를 횡단하는 4500㎞의 캐나디안 라인과 토론토에서 몬트리올을 거쳐 퀘벡을 잇는 코리도 라인, 그리고 몬트리올에서 핼리팩스까지 바다를 끼고 가는 오션라인이다.
토론토 중앙역을 출발한 코리도 라인의 초록색 비아레일 열차는 5시간 30분 동안 끝없는 설원의 한복판을 달려 몬트리올 중앙역에 도착했다. 눈발이 날리다 그치다를 반복한 날이었는데, 기왕에 내린 눈으로 차창 밖은 온통 순백의 세상이었다. 열차가 지나는 대부분 구간이 드넓은 초지와 목장, 그리고 숲이었다. 드문드문 눈 속에 푹 파묻힌 마을을 지났다.
# 이동의 즐거움… 설원을 달리는 비아레일 열차
비아레일 열차는 우리 KTX보다 흔들림이 심한 듯했지만, 그게 외려 기차 여행의 낭만을 더 진하게 느끼게 했다. 규칙적인 레일 음과 간혹 울리는 기적이 여행의 배경 음악처럼 깔렸다. 바깥의 냉기를 완벽하게 차단한 따스한 실내는 더없이 안락했다. 열차를 타니 이동은 곧 즐거움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목적지만 생각하게 되는 비행기나 차량에서 느끼는 지겨움과는 전혀 달랐다. 책을 펴서 읽기도 하고, 창밖을 바라보기도 하면서 점점 목적지에 가까워지는 즐거움이 생생했다.
비아레일의 비즈니스클래스 좌석은 비싸긴 했지만 여러 모로 편리했다. 우선 비즈니스클래스 승객들은 기차를 타기 위해 줄을 설 필요가 없었다. 탑승 기차역의 라운지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안내에 따라 우선 탑승의 혜택이 주어졌다. 여유 있는 좌석 공간도 좋았지만, 인상적인 건 식사와 간식이 제공된다는 것이었다. 호화 특급열차의 정찬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와인과 함께 즐기는 열차 안에서의 여유 있는 식사는 비행기 기내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앞에 놓고서 여유 있게 바라보는 설원 풍경은 또 어찌나 근사하던지…. 차창 밖의 설경에 흠뻑 빠져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목적지가 가까워지는 게 아쉽다는 느낌이었다.
다른 계절이라고 매력이 덜하지는 않겠지만, 특히 겨울 캐나다 여행이라면 비아레일만 한 선택지가 없을 듯했다. 비행기보다 느린 기차의 속도가 시간 낭비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열차는 까다로운 보안 검색도, 복잡한 시내의 교통체증도 없이 오로지 풍경에만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비행기나 자동차가 주지 못하는 즐거움이다. 겨울 캐나다 여행이라면 비아레일 탑승을 먼저 고려해보아야 하는 이유다.
# 고층빌딩과 유럽풍 건물이 절묘하게 뒤섞이다… 몬트리올
몬트리올은 현대적 북미의 역동성과 구시대적 유럽의 기품이 결합한 대도시다. 고층빌딩과 우아한 유럽풍의 건물이 뒤섞인 도시 곳곳에서 이런 조화가 느껴진다. 몬트리올은 도심 중앙을 가로지르는 생로랑 대로를 기준으로 서쪽은 영국계, 동쪽은 프랑스계로 나뉘어 있다. 길 하나를 두고 이쪽저쪽에서 전혀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건 몬트리올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이다.
현대적 건물로 가득한 서쪽 도심의 번화가가 영국풍의 무겁고 차분하면서 정돈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면, 구 몬트리올과 라탱 지구 등이 자리 잡고 있는 동쪽의 프랑스계 지역은 고색창연한 파리의 분위기 그대로다. 몬트리올을 대표하는 명소들은 대부분 몬트리올 동쪽인 프랑스계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몬트리올은 눈이 많이 내리기로 이름난 지역이다. 몬트리올에 도착한 날 오후에도 폭설이 쏟아졌다. 종아리까지 푹푹 빠지는 눈으로 보행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지만, 펑펑 내리는 눈은 여행자의 마음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눈이 가득 내린 도시에 따스한 불빛이 번지는 저녁나절 풍경은 동화의 한 장면처럼 낭만적이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몽루아얄 공원’에 올랐다. 몬트리올 북서쪽에 있는 해발 232m의 높지 않은 산에 조성한 공원으로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디자인한 조경사 올름스테드가 설계했다. 공원 정상까지는 제법 가파른 계단 길이 이어져 있는데, 옆으로는 곳곳에 거미줄처럼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탈바꿈한 공원 중턱을 도는 순환 산책 코스는 온통 눈밭이었다. 시민들은 스키를 신고 자연스럽게 크로스컨트리를 즐겼다.
몽루아얄 공원의 압권은 정상 아래 콘디아롱크 전망대 앞으로 펼쳐지는 몬트리올 전경이다. 테라스처럼 꾸며진 정상의 전망대에서는 도시가 한눈에 다 보였다. 고층빌딩과 도시 곳곳의 고풍스러운 유럽식 건축물이 자연스럽게 한데 어우러진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경관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주민이 ‘정말 아름답지 않냐’고 말을 걸었다. 기꺼이 공감을 표했더니 ‘밤에 꼭 한 번 더 와보라’고 했다. 기막힌 야경을 볼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밤 풍경은 보지 못했다. 거기 말고도 몬트리올에서 가봐야 할 곳의 목록이 끝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녀온 곳을 목록에서 부지런히 지웠지만, 한 곳을 가보면 가봐야 할 두 곳의 목록이 더해졌다. 몬트리올에서의 이틀은 짧아도 너무 짧은 일정이었다.
# 몬트리올에서 가본 곳, 가봐야 할 곳
다음은 몬트리올에서 바삐 돌아본 곳들이다. 노트르담 대성당, 올드 포트, 봉스크루마켓, 자크 카르티에 광장, 생폴 거리, 마리 렌뒤몽드 대성당, 도체스터 광장, 몬트리올미술관, 크라이스트처치 성당, 몬트리올 현대미술관, 몬트리올 고고학박물관, 장탈롱 마켓, 성요셉 성당…. 어느 한 곳도 건너뛸 곳이 없었다. 특히 몬트리올 구시가지의 중심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정교한 장식과 조각으로 아름다웠다. 푸른 빛을 끌어들인 제단 뒤쪽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매혹적이었다. 이 아름다운 성당 내부에서 하루 한 번 아우라(AURA)라는 제목의 몰입형 미디어 아트쇼가 펼쳐졌는데, 장중한 음악과 합창을 배경으로 대성당의 제단과 벽, 아치형 천장에 비추는 빛과 색으로 그린 그림에 숨이 막힐 정도였다.
도시 곳곳을 바삐 이동하는 틈틈이 훈제고기를 넣은 스모크 샌드위치를 먹었고, 감자튀김에 치즈와 소스를 얹은 푸틴도 맛봤다. 100년 역사의 베이글 가게 두 곳에서 깨가 잔뜩 박힌 고소하고 담박한 베이글을 사서 맛을 비교해보기도 했다. 이렇게 전력을 다했음에도 가본 곳보다 목록에만 적어놓고 가보지 못한 곳이 더 많았고, 먹어본 것보다 먹어봐야 할 것이 더 많았다.
가봐야 할 곳의 목록이 늘어나는 건 대개 이런 식이다. 몬트리올에는 캐나다의 다른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피하기 위해 고층빌딩 지하를 연결해 만든 언더그라운드 시티가 있다. 총연장 거리가 33㎞에 이르는 언더그라운드 시티에는 1600개가 넘는 상점과 200여 개의 식당이 들어서 있다. 지하 공간이긴 하지만 높은 천장과 자연스럽게 끌어들인 채광, 뛰어난 환기시스템 덕에 답답한 느낌이 전혀 없다. 언더그라운드 시티의 상점가 푸드 코트를 지나다 무대에 오른 혼성 밴드의 노래를 들었다. 레퍼토리는 올드팝이었는데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웅성거림으로 산만하던 분위기가 금세 조용해졌다. 노래를 듣다가 일정표를 꺼내 가봐야 할 곳의 목록 맨 앞에다 ‘몬트리올의 재즈바’를 올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
# 한 해 900개 축제가 열리는 도시… 몬트리올
얘기가 나온 김에 공연과 축제 얘기를 해보자. 몬트리올은 명실상부한 ‘축제의 도시’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해마다 900개가 넘는 축제가 몬트리올에서 열렸다. 겨울철에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2월에 열리는 ‘몬트리올 앙 뤼미에르’는 세계에서 가장 큰 겨울 축제 중 하나다. 축제 기간 내내 몬트리올 곳곳에서 화려한 야간조명과 라이트 쇼가 펼쳐지고, 미식과 문화 행사가 줄지어 열린다.
뤼미에르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밤을 하얗게 밝히며 축제를 즐기는 ‘뉘 블랑슈’ 프로그램이다. 매년 10월 첫째 주 토요일 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백야축제를 본떠 만든 행사인데, 몬트리올에서는 해마다 2월에 열린다. 올해 뉘 블랑슈는 오는 2월 25일 열린다. 이날 오후 5시부터 이튿날 오전 3시까지 밤새 몬트리올 구석구석에서 자그마치 200여 개의 퍼포먼스와 음악공연, 전시 등이 펼쳐진다.
뤼미에르 축제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정성껏 요리한 음식과 음료를 즐기는 미식파티 ‘카르티에 구르망’이다. 유명 레스토랑과 바, 베이커리, 식료품점이 늦게까지 문을 열고 다양한 행사를 벌이는, 뉘 블랑슈의 미식 버전이라 할 수 있는 ‘뉘 구르망’도 빼놓을 수 없다.
몬트리올에서는 지금도 한창 축제가 펼쳐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추운 야외음악 축제라는 별명이 붙은 ‘이글루페스트’다. 코로나19로 중단된 지 2년 만인 지난 19일 축제가 시작돼 2월 11일까지 몬트리올 올드 포트에서 열리고 있다. 축제 기간 중에는 몬트리올 전역에서 27개의 파티가 릴레이하듯 열린다. 몬트리올의 추위는 혹독하지만, 겨울이 여행을 주저케 할 조금의 이유도 되지 않는다. 몬트리올에는 겨울에도 겨울 축제가 있고, 겨울 나름의 즐거움이 있으니까.
# 마음 가는 대로… 퀘벡 여행하는 법
캐나다 동부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퀘벡시티다. 퀘벡시티가 캐나다의 동쪽 끝에 자리 잡고 있어 동선을 짜다 보면 십중팔구 일정이 그렇게 된다. 퀘벡이 캐나다 동부 여행의 종착지로 제격인 건 ‘가장 근사한 여행지는 여행의 끝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곳을 먼저 보면 뒤에 보는 여행지가 시시해지게 마련이다. 아껴두었다가 여행의 마지막에 가야 할 만큼 퀘벡시티는 특별하다.
퀘벡시티가 지닌 매력의 핵심은 중세 유럽을 연상케 하는 고풍스러운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퀘벡시티의 중심지역은 세인트로렌스 강을 끼고 있는 높은 벼랑 지대에 형성돼 있다. 높은 곳에 자리 잡았다고 해서 ‘어퍼타운’이라 부르고, 강변과 먼 낮은 지대나 항구 일대를 ‘로어타운’이라 부른다. 어퍼타운은 다시 구시가와 신시가로 나뉘는데, 퀘벡시티의 대표적인 관광지는 모두 구시가에 밀집해 있다. 유네스코가 1985년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도 성벽으로 둘러친 구시가 일대다.
어퍼타운의 중심은 단연 샤토 프롱트낙 호텔이다. 올드타운 어디서나 보이는 샤토 프롱트낙 호텔은 퀘벡시티의 아이콘이다. 호텔은 프랑스 고성을 연상시키는 웅장한 외관과 푸른 지붕의 우아함으로 시선을 붙잡는다. 호텔은 캐나다 열차회사가 열차를 타고 캐나다 대륙을 횡단하는 부유한 여행자들을 위해 프랑스 식민지 총독 관저 자리에다 지은 것이다. 공사를 시작한 게 1893년인데 1924년에 완공했으니 공사 기간만 31년이 걸렸다.
캐나다 관광청의 안내 브로슈어는 샤토 프롱트낙 호텔을 ‘전 세계에서 가장 사진이 많이 찍힌 호텔’이라 주장한다. 대체 그걸 어떻게 확인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퀘벡을 찍은 사진에는 거의 빠짐없이 이 호텔이 담겨있으니 터무니없는 얘기는 아닌 듯하다.
이런 유명세가 아니라도 샤토 프롱트낙 호텔은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낯익다. 드라마 ‘도깨비’의 배경으로 인상 깊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호텔뿐만 아니다. 에이브러햄 평원 동북쪽의 생드니 테라스는 드라마에서 묘비가 서 있던 자리이고, 유럽 도시의 아기자기한 골목을 연상케 하는 프티 샹플랭 거리는 드라마에서 캐나다로 순간 이동하는 빨간 문이 있는 거리다.
프랑스가 식민지 침략을 시작한 곳이라거나 영국과 프랑스가 식민지 지배를 놓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거나, 2차세계대전 중 각국의 지도자들이 종전 회의를 했다는 등의 역사적 사실들이 퀘벡이 건너온 시간에 첩첩이 쌓여있다. 그러나 이곳을 찾은 관광객은 별 관심이 없다. 유럽풍의 고색창연한 도시의 이국적인 경관이 이런 사실을 죄다 압도하고 마는 까닭이다.
그러니 퀘벡시티에서는 꼭 보아야 할 곳이란 의무감이 없다. 드라마의 기억을 떠올리며 걸어도 좋고, 그저 눈길을 붙잡는 것들을 따라가는 것도 좋다. 프랑스 문화와 전통이 새겨진 거리를 마음 내키는 대로 산책하는 것이야말로 퀘벡을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 퀘벡의 윈터 카니발
퀘벡은 지금 겨울축제 ‘윈터 카니발’ 준비가 한창이다. 올해 축제는 2월 3일부터 12일까지 식민지 지배를 놓고 프랑스와 영국이 맞붙었던 퀘벡 전투의 현장인 에이브러햄 평원에서 열린다. 축제 기간 이곳에는 거대한 얼음 궁전이 세워지고 얼음조각대회, 눈 목욕 등의 행사가 펼쳐진다. 퀘벡의 겨울축제가 성대하게 치러지는 이유는 퀘벡의 겨울이 유난히 길고 추위가 혹독해서다. 혹한을 이기려면 더 뜨겁게 열정의 불을 지피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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