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마약’ 펜타닐에 취한 미국… 최대 공급처 중국은 ‘뒷짐’[Global Focus]

김현아 2023. 1. 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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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bal Focus - 거미줄처럼 뻗은 유통망… ‘외교문제’로 비화 조짐
‘진통제’ 펜타닐 치사량 2㎎
헤로인보다 100배나 강력
6년간 미국인 21만명 숨져
중국 생산 → 멕시코 가공 → 미국
미·중 갈등에 마약퇴치 먼 길
미 “협조를” vs 중“미 수요 탓”
블링컨 장관 내달 5일 방중
‘펜타닐 문제’ 주요 안건으로
지난해 8월 18일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한 노숙인이 빨대를 이용해 펜타닐 연기를 피워 다른 마약 중독자의 입 안에 불어 넣는 모습. AP

춤의 열기, 좋은 친구, 잭팟.

마치 축제를 연상시키는 듯한 은어로 불리는 이것은 2015년부터 2021년까지 6년간 약 21만 명의 미국인을 사망하게 한 펜타닐이다. 헤로인의 100배, 모르핀보다 200배 이상으로 더 강력한 진통제로, 말기 암 환자처럼 극심한 고통을 겪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쓰이는 약물이다. 하지만 어느새부턴가 이를 ‘마약’으로 이용하는 불법 펜타닐 유통망이 거미줄처럼 뻗어 나가며 그 중독자 수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고 있다. 지난해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펜타닐 오남용이 미국인의 기대수명을 줄이는 데도 일조했다고 분석했다. 치사량은 단 2㎎. 은어와는 달리, ‘악마의 마약’이라는 데 의견이 모이는 이유다.

미국 내 ‘펜타닐 원천봉쇄’가 사실상 불가능해지자 미국은 중국과 멕시코 등 펜타닐의 주요 공급국에 협조를 구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북미 3국 정상회의에서 펜타닐 근절을 위한 협력을 주요 의제로 삼은 데 이어, 내달 중국을 방문하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역시 친강(秦剛) 외교부장과의 회담 테이블에 해당 안건을 올릴 예정이다. 하지만 해당국들이 “미국 내 수요가 문제”라며 뒷짐을 지고 있는 데다, 미·중 관계가 점차 더 경색돼가며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외교 테이블에 올라간 ‘펜타닐’ =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블링컨 장관은 오는 2월 5∼6일 중국 베이징(北京)을 방문해 친강 부장 등 중국 지도부와 만날 예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행정부 시절인 2018년 6월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한 이후 처음 이뤄진 미국 국무장관의 방중 일정이다. 지난해 낸시 펠로시 전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첨예해진 미·중 갈등을 풀어보겠다는 구상이지만, 당장 당면한 주요 안건 중 하나는 단연 ‘펜타닐’이다. 미국과 중국은 2018년부터 펜타닐의 핵심 원료 생산과 판매를 규제하는 데 협력해왔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중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될수록 중국 측의 협조가 부실해졌고, 펠로시 전 의장의 방문 이후로는 펜타닐과 관련한 모든 회담이 중단된 상태다.

지난 9∼10일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북미 3국(미국·멕시코·캐나다) 정상회의에서도 ‘펜타닐’이 주요 의제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對)중국 견제용 반도체 공급망 구성과 같은 주요 현안과 함께, 펜타닐 근절을 위해 협력하자고 강조했다. 멕시코는 중국을 제치고 미국 최대 펜타닐 공급처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멕시코 당국은 정상회의를 앞두고 멕시코 역사상 최대 마약왕인 ‘엘 차포’, 호아킨 아르치발도 구스만 로에라의 아들 오비디오 구스만을 전격 붙잡았다. 국가방위대와 군까지 참여한 대대적인 작전이었다고 CNN은 전했다.

지난해 8월 23일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한 30대 남성이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을 투약한 후 길을 걷다 잠이 들어 허리를 숙이고 있다.AP

◇‘가장 치명적인 마약’ 펜타닐, 어떻게 미국으로 들어오나 = 미국 정부가 외교의 장에서 펜타닐 문제를 꺼내 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 마약단속국(DEA)이 지난해 압수한 펜타닐의 양은 알약 5060만 정과 가루 1만 파운드(약 4536㎏). 펜타닐의 치사량이 2㎎인 점을 고려하면 미국 인구 전체를 사망케 할 수 있는 양이라는 설명이다. 지난해 말 기준 미국 인구는 약 3억3800만 명이다. 유통량이 급증하며 주요 사망 원인으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2021년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한 인원은 모두 10만7000명인데, 이 중 3분의 2가량이 펜타닐로 인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된다. WP는 “2021년 18∼49세 사망 원인 중 1위가 펜타닐”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펜타닐 원료의 주 생산지는 중국이다. 최근에는 중국의 일부 생산시설이 옮겨간 인도를 통해서도 공급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 생산된 원료와 펜타닐 분말은 우편물 등을 통해 미국으로 바로 향하거나 또는 멕시코로 수송되는데, 미국에는 이 같은 가루 형태 또는 멕시코에서 알약으로 재가공된 펜타닐이 모두 유입되고 있다고 DEA는 전했다. 그 외 주사제나 패치 형태 등 다양한 제형이 유통되고 있다.

◇단속 ‘엇박자’ 내는 중국·멕시코 = 현 바이든 행정부를 비롯해 미 당국은 헤로인과 코카인에 집중한 나머지 펜타닐 단속의 시기를 놓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7년 동안 펜타닐 유입량이 급증했지만, 유통 경로를 차단하지 못한 데다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하며 타국 협조도 놓쳤다는 지적이다. 2024년 대선까지 앞두고 있어, 당면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멕시코와 중국이 번번이 엇박자를 내고 있어 결국 국내 유통망을 차단할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멕시코 정부가 구스만을 체포했지만, 당국이 2019년 구스만을 체포한 뒤 ‘구스만을 가둬두면 폭력 사태가 더 크게 벌어질 수 있다’며 수 시간 만에 그를 풀어줬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멕시코 정부만 믿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중국 정부 역시 미국 내 펜타닐 등 마약성 진통제에 대한 수요 폭증과 제약회사들에 책임이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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