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75)스스로 고일라 않

김종목·김종길 기자 2023. 1. 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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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다 죽어 없어질 수 있는 멸망의 ‘인류세’에 와 있다. 씨알 인류(人類:民)가 기후환경과 생태계를 때려 부수고 깨뜨려 헐어서 땅구슬 지구(地球)의 환경체계는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 두말 할 필요 없이 기후재앙을 앞당기는 지구환경문제의 까닭은 씨알 인류다. 도대체 씨알 인류는 천지자연(天地自然)의 무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두려워하지 않으니 큰 무서움이 닥친 것이다.

노자 늙은이 72월은 ‘싶뜻’(欲心)이 일어 ‘하고픔’(欲望)에 빠진 씨알 인류의 억지힘과 나쁜 짓에 놀람을 던져 일깨우는 무거운 가르침이다. 천지자연의 무서움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큰 무서움이 닥친다는 깨우침! 다석 류영모는 “천지자연, 이 모두가 다 글월이다. 다 편지요, 문장이다. 이 글월을 읽게 하는 것은 이승의 짐승 버릇을 잃게 하자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짐승 노릇을 내버리도록, 하늘 생각을 이루도록 해달라는 것”이라 가르쳤다.

씨알 인류가 하늘 생각을 이루어야 뒷하늘(後天)이 열리고 땅곶이(地軸)가 바로 선다. 씨알 인류가 하늘 생각을 이루어야 세상천지 온갖 것들이 다 제대로 바루어 올을 이룬다, 닝겔, 흐르는 시선30, 2022, 아이패드

글월이요, 편지요, 말씀인 천지자연을 읽고 배우며 하늘 생각(天命)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 씨알 인류다. 씨알 인류가 하늘 생각을 이루어야 뒷하늘(後天)이 열리고 땅곶이(地軸)가 바로 선다. 씨알 인류가 하늘 생각을 이루어야 세상천지 온갖 것들이 다 제대로 바루어 올을 이룬다. 다 올발라진다. 그런데 천지자연을 읽기는커녕 짐승 버릇으로 내내 부수고 파내고 자르고 불태우고 사냥한다. 망하는 길로 곧장 달려드는 꼴이다.

하늘 생각 이룸으로 뒷하늘을 열어야 한다!

하늘 생각 이룸으로 땅곶이를 뒤흔들어야 한다!

하늘 생각 이룸으로 온갖 것들이 올발라진다!

다석은 큰 소리로 타일렀다. 크게 부르짖었다. “이 고깃덩어리가 온통 죄악이다. 깜짝 정신을 못 차리면 내 속에 있는 독생자를 내어 쫓고 이 죄악 몸뚱이가 차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은 깨지 않으면 멸망해버린다. 이 육신은 멸망하고 만다.”고 말이다. 씨알 인류는 ‘한나신 아들’(獨生子)의 속알을 틔워야 한다. 속알의 씨를 터트려 모심으로 모셔야 한다. 하늘 모심이 늘삶이요, 참삶이다. 바로 그것이 하늘 생각을 이루는 것이다.

늘삶에 무서움이 어디 있나?

참삶에 무서움이 무슨 말?

무서움이 없으니 두려움도 없지!

자, 노자 늙은이 72월을 보자.

늙은이가 말을 거둔다. 늙은이는 씨알 인류에게 말침을 놓는다. 씨알 인류가 깨어 씻어난 이로 솟나기 위해 무엇을 집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저를 아는 이는 무서움이 없다. 저를 사랑하는 이는 저 사는 데를 좁아 안 하고, 저 난데를 싫어 안한다. 저 스스로가 ‘밝’이요, ‘사랑’이니 좁고 싫음이 없다. 그래서 오롯한 참나(眞我)는 길(道)이요, 참올(眞理)이요, 산숨(生命)이라고 하는 것이다.

늙은이 : 무섬(威)은 무서움이야. 씨알 인류는 도무지 천지자연을 무서워하지 않아.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버렸어. 천지자연의 무서움을 두려워안하니 곧 큰 무서움(大威)이 닥칠 거야. 씨알 인류는 기계를 만들고 기계를 앞세우고 심지어는 기계를 믿어. 기계 되기를 바라지. 기계에 믿음 바라기야. 기계에 파묻혀 온통 기계가 된 삶이야. 기계로 싸우고 기계로 죽이고 기계로 사랑하고 기계로 돈을 벌지. 기계의 무서움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곧 큰 무서움이 닥칠 거야.

늙은이 : 다석은 “우리가 우주인의 관념을 가진다면 주소가 어디에 있겠는가. 어디에 사느냐고 물으면 우주에 산다고 하면 그뿐”이라고 했지. 또 “살 거(居)의 시(尸)는 사람의 엉덩이를 나타내고 고(古)는 고정시킨다는 뜻이다. 거(居)는 앉아서 거기 있다는 뜻”이라도 했어. 왕필(王弼)도 “맑고 고요히 무위(無爲)함을 거(居)라 하고, 겸손하게 뒤로 물러서서 교만하지 않는 것을 생(生)”이라고 했지. 천지자연과 더불어 사는 씨알 인류는 그 무서움을 알기에 늘 집집 우주에 살며 맑고 고요히 있을 뿐이요, 늘 뒤물러 사는 ‘뒤섬’이기에 잘난 척하지도 않고 뽐내지도 않아. 그렇게 저 스스로 사는 곳과 난 곳을 싫어 안하니 싫음이 없지. 싫음이 없으니 좋음도 없어. 늘 있는 그대로의 삶이야.

늙은이 : 씻어난 이는 저를 알고도 스스로 뵐라 않으며, 저를 사랑하고도 스스로 고일라 않지. ‘고이다’와 ‘괴다’는 “특별히 귀여워하고 사랑하다”는 뜻을 가진 예스런 우리말이야. 노자 늙은이 18월에 “저 아는 게 밝”이라고 했어. 씻어난 이는 저를 알아 ‘밝’이어도 스스로를 감추고 보일라 하지 않아. 씻어난 이는 속알이 차고 넘치니 사랑으로 가득해. 스스로가 사랑이어도 나서지 않아.

다석은 “진리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내 뜻 없이 보는 것이 바로 보는 것이다. 내 뜻 없이 볼 때 진리의 뜻을 이루게 되는 것이 성의(誠意)다. 진리의 뜻을 이루는 것을 진성(盡性)이라고도 한다. 이는 내 뜻이 없어지고, 내 고집이 없어지고, 나라는 것이 없어지고, 반드시가 없어진 세계다. 진리와 나가 하나가 되는 세계다.”라고 가르쳤어.

저를 알아 알고 저를 사랑하여 사랑이 가득하면 저라는 것이 아예 없지. 있는 그대로의 ‘나’는 참과 하나거든. 저가 없으니 뵐라 해도 없고, 고일라 해도 없지. 불불불상견(佛佛不相見)인 거야.

늙은이 : 무엇을 집고 무엇을 버려야 할까? 이것은 무엇이고 저것은 무엇일까? 집어야 하는 것은 저를 앎이요 저를 사랑함이야. 버려야 할 것은 스스로 뵐라 하는 싶음이요, 스스로 고일라 하는 싶음이지. 그러니 ‘저를 앎’(自知)과 ‘저를 사랑함’(自愛)을 집어 저를 텅 비우되, ‘스스로 뵘’(自見)과 ‘스스로 고임’(自貴)이 들어차지 않도록 해야 하지. 자, 그럼 72월을 새겨볼까?


☞ 김종길의 다석 늙은이(老子) 읽기(74)모름직이
     https://www.khan.co.kr/culture/scholarship-heritage/article/202301190700011

■김종길은
다석철학 연구자다. 1995년 봄, 박영호 선생의 신문 연재 글에서 다석 류영모를 처음 만났는데, 그날 그 자리에서 ‘몸맘얼’의 참 스승으로 모셨다. 다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민중신학과 우리 옛 사상, 근대 민족 종교사상, 인도철학, 서구철학을 좇았다. 지금은 그것들이 모두 뜨거운 한 솥 잡곡밥이다. 함석헌, 김흥호, 박영호, 정양모, 김흡영, 박재순, 이정배, 심중식, 이기상, 김원호 님의 글과 말로 ‘정신줄’ 잡았고, 지금은 다석 스승이 쓰신 <다석일지>의 ‘늙은이’로 사상의 얼개를 그리는 중이다.

■닝겔은
그림책 작가다. 본명은 김종민이다.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큰 기와집의 오래된 소원>, <소 찾는 아이>, <섬집 아기>, <워낭소리>, <출동 119! 우리가 간다>, <사탕이 녹을 때까지> 등을 작업했다. 시의 문장처럼 사유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작가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김종길 다석철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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