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신조어를 대하는 기성세대의 '엄숙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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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답이'가 무슨 말인지 아는가.
줄임말인 것은 짐작할 수 있으나 그 뜻은 쉽게 유추하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이 신조어가 세대 간 갈등과 배타성을 공고히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신조어가 주로 모바일 환경 속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소통에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친숙한 10~20대들에 의해 주로 만들어지다 보니, 그들과 그 윗세대들 간 언어 단절 현상이 초래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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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 세대, '언어 파괴' 우려 깊어져...언어 '역사성' 간과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고답이’가 무슨 말인지 아는가. 줄임말인 것은 짐작할 수 있으나 그 뜻은 쉽게 유추하기 어려워 보인다. 바로 ‘고구마 잔뜩 먹은 것처럼 답답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21세기의 우리는 신조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신조어들은 언어의 공기 중을 빠르게 흘러다니고 있다. 언어는 생물같다. 언어의 특성 중 ‘역사성’이라는 것이 있다. 언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성, 소멸, 변화의 과정을 겪는 것을 가리켜 바로 ‘언어의 역사성’이라고 한다. 언어의 역사성에 기반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신조어다. 하지만 이 신조어가 세대 간 갈등과 배타성을 공고히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지난 2021년 국립국어원은 전국 만 20~69세 성인 남녀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0년 국민의 언어 의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의미를 몰라서 곤란했던 경험’에 대한 문항 중 신조어의 의미를 몰라 곤란했던 경우가 43.1%로 조사됐다. 신조어가 주로 모바일 환경 속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소통에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친숙한 10~20대들에 의해 주로 만들어지다 보니, 그들과 그 윗세대들 간 언어 단절 현상이 초래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신조어의 생산 주체인 10~20대들은 신조어를 그들만의 전유물로 삼으며 세대를 구분짓는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배타성이 드러난다.
이런 신조어의 부작용에 천착해 해마다 한글날이면 신조어에 대한 우려가 그득한 언론 보도가 쏟아진다. ‘언어 파괴’ 현상에 대한 걱정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덮어놓고 신세대들의 언어를 비판만 할 것은 아니다. 그들이 만들어 낸 신조어 중에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말들이 얼마든지 많다. 창의적이고 직관적인 신조어 역시 넘친다. 그런 이유에서 국립국어원의 개방형 국어사전인 ‘우리말샘’은 이들이 생산한 신조어들을 빠르게 등재 중이다.
‘흑우’, ‘국룰’의 뜻을 알고 있는가. ‘흑우’는 어수룩해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 ‘호구(虎口)’에서 비롯됐다. 호구와 발음이 비슷한 점에서 착안해 ‘흑우’라는 단어를 차용하기 시작하면서 널리 퍼졌다. ‘국룰’이란 말은 ‘국민 대다수가 널리 받아들이는 규칙’이라는 뜻이다. ‘국민 룰’의 줄임말로 국민의 ‘국(國)’과 규칙을 뜻하는 영단어 ‘룰(Rule)’을 붙여 만든 말이다. ‘흑우’와 ‘국룰’은 모두 우리말샘에 나오는 말들이다.
기성세대들은 국어사전에도 버젓이 나오는 이런 말들까지 천박하다며 무시하고 비난할 것인가. 그 전에 본인 스스로가 지나친 ‘엄숙주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10~20대들의 언어들이 1446년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불쌍히 여겨 스물여덟 자를 만들어’ 반포한 세종대왕의 고귀한 뜻을 훼손하는 것 같아 불쾌한가. 아니면 그들의 세계와 어울리지 못하는 ‘소외감’이 두려운가.
앞서 언급했듯 언어는 역사성을 가진다. ‘짜장면’도 한때는 비표준어였으나, 다수의 사람들이 ‘자장면’ 대신 ‘짜짱면’, ‘짜장면’을 줄곧 쓰니 ‘짜장면’도 표준어가 됐다.
반대로 기성세대는 신세대들이 이해 못하는 말들을 전혀 쓰지 않고 있는가. ‘심심한 사과’, ‘심심한 감사’라는 표현을 신세대들은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이 이 단어가 ‘심할 심(甚)’에 ‘깊을 심(深)’을 쓰는 ‘매우 깊고 간절하다’는 뜻의 한자어라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허무할 것인지 생각해 보자.
이연호 (dew901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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