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talk] 한국영화가 극장에서 살아남으려면
호불호가 갈리지만, 안중근이나 이토 히로부미 등 주요 캐릭터를 향한 시선이나 묘사에서도 영화는 의당 요청되는 비판적 거리를 구축, 견지했다. 제목과 달리 안중근과 그 동지들을 ‘영웅들’로서, 맹목적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이토를 지독한 악당으로서 일방적으로 단죄하지 않는다. 김훈의 베스트셀러 소설 ‘하얼빈’(2022)처럼 이토나 메이지 일왕을 야심 외에도 인간적 향취 짙게 밴 영웅들로 묘사하지도 않는다. 영화는 이렇듯 성격화 등에서 엿보이는 균형감 면에선 꽤 주목할 만한 성취를 일궈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도 개봉 한 달이 지난 ‘영웅’은, 설 연휴 특수가 무색하게 300만 명 선조차 넘질 못했다. 감독의 쌍 천만 영화 ‘해운대’(2009)와 ‘국제시장’(2014)과는 달리 예의 대중적 호응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반면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 물의 길’은 ‘마침내’ 국내에선 외국 영화로는 9번째, 종합적으로는 29번째로 ‘천만 영화 클럽’에 진입했다. 세계적으로는 20억 달러 고지를 돌파하며, ‘아바타’(2009)와 ‘어벤져스: 엔드 게임’(2019), ‘타이타닉’(1997),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2015),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에 이어 월드 박스오피스 6위에 등극했다. 순위 상승이 시간문제인 것은 물론이다.
‘영웅’ 이후 선보인 일련의 국산 영화들에 눈길을 주면, 위기감은 배가된다. 임순례 감독이 황정민, 현빈, 강기영 등을 기용해 빚어낸 ‘교섭’은 개봉 첫 주 내내 흥행 1위를 달리고도 고작 100만 선을 넘어서는 데 만족해야 했다. ‘독전’(2018)의 이해영이 설경구, 이하늬, 박소담, 박해수, 서현우 등과 함께 만든 ‘유령’은 그 3분의 1 정도 성적에 그치고 있다. 권상우, 오정세, 이민정이 출연한 ‘스위치’나 주지훈, 박성웅 주연의 ‘젠틀맨’에 눈길을 주면 더 초라해진다. 나름 빵빵한 출연진이 동원됐거늘, 각각 40만과 20만을 넘었을 따름이다. 고 강수연, 김현주, 류경수가 나온 넷플릭스 영화 ‘정이’(감독 연상호)는 공개 하루 만에 세계 넷플릭스 영화 부문 정상을 차지하고 있거늘.
대체 왜 이런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걸까. 코로나 변수 외에도 급격히 오른 입장료나, 일상화된 비대면 문화로 인해 급변한 관객들의 관람 성향·패턴 등 이런저런 이유들이 거론된다. 한데 왜 그 대상이 유독 한국 영화에 집중되는 것일까.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처럼, 입소문에 힘입어 2달 가까이 장기 상영되며 100만 고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소박하기 그지없는 일본 영화도 있지 않은가.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3040 관객층의 ‘추억팔이’를 자극해 150만을 넘어 200만으로 달리고 있지 않은가.
국산 극장 영화는 이제 그 수명이 종말을 고했으니 모두가 다 OTT 영화나 드라마로 내달려야 하는 걸까. 냉정하게도 현실은 그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당장 ‘체험으로서의 영화’를 역설하며 ‘영화관 영화’의 생존을 위해 남다른 ‘피 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제임스 캐머런 같은 거인이 있지 않은가. 우리에게도 봉준호, 박찬욱, 홍상수, 강제규, 윤제균, 김한민, 한재림, 홍의정 등 영화관 영화를 지속시키려는 뜻 있는 시네필들이 수두룩하다.
살아남기 위해 한국 극장 영화는 근본적으로, 전격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영화에 대한 새로운 사유와 관점, 실천을 두루 겸비하면서. 무엇보다 스타 캐스팅이나 물량 공세에 대한 집착적 관행부터 당장 지양해야 한다.
김보영 (kby5848@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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