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인플레 재발이 더 무섭다

방현철 경제부 차장 2023. 1. 2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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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적 인플레이션(underlying inflation)이 여전히 심각합니다.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후(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의 한 호텔에서 글로벌 CEO(최고경영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 앞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오른쪽부터), 짐 콜터(Jim Coulter) 텍사스퍼시픽그룹(TPG) 회장,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 제이피모건 체이스(JPMorgan Chase) CEO, 추경호 경제부총리, 스테판 슈왈츠만(Stephen A. Schwarzman) 블랙스톤(Blackstone) CEO와 대화하고 있다. 2023.1.20/대통령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이 최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작년 6월 9.1%에서 12월 6.5%로 속도가 줄었다. 하지만 다이먼 회장은 유가가 잠시 진정되기는 했지만 앞으로 10년간 오를 것으로 봤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 포기도 결국 물가를 자극할 것으로 봤다.

다이먼 회장은 작년 이맘때 미국이 금리를 6~7차례 올릴 것으로 내다봤다. 월가에선 많아야 3~4차례 인상 전망이 나오던 때였다. 결과적으론 화끈한 금리 인상을 예상한 다이먼 회장이 맞았다. 그런 만큼 인플레이션 재발 가능성을 경고하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재작년 미국에서 시작된 물가 급등은 ‘40년 만의 인플레이션’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1970~1980년대 고물가 이후 처음이란 얘기다. 그런데 당시 1970년, 1974년, 1980년 등 세 차례 인플레이션 파도가 왔다. 잠잠해지는가 하면 재발했다. 더구나 꼭지는 1970년엔 6.4%, 1974년엔 12.2%, 1980년엔 14.6% 등 갈수록 높아졌다.

‘인플레이션 파이터’였던 폴 볼커 전 연준 의장마저 임기 초기인 1980년 잠깐 고개를 숙였던 인플레이션에 깜빡 속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1979년 8월 취임한 볼커는 돈줄을 조여 금리를 높였다. 이듬해 4월 금리는 연 17%까지 올랐다. 하지만 11월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던 카터 대통령은 고금리 고통이 심해지지 않기를 바랐다. 마침 물가도 꼭지를 찍었다. 그에 맞춰 볼커는 금리를 연 9%대로 낮췄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은 방심한 틈을 타 12%대에서 더는 꺾이지 않았다. 볼커는 물가 잡기의 첨병이란 신뢰를 되찾느라 이후 금리를 연 20% 가까이로 높여야 했다. 미국 경제는 1년 넘게 강한 침체 수렁에 빠졌다. ‘볼커의 실수’에서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얕봤다가 재발하면 더 큰 비용이 든다는 교훈을 얻었다.

폴 볼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미국 연준

월가의 다수는 올해 ‘상저하고(上低下高·상반기에 낮다가 하반기에 반등)’ 흐름을 내다보면서, 금리 인상 여파로 인한 경기 침체가 짧고 얕을 것이라고 본다. 그 바탕엔 올 하반기엔 물가가 잡히고 연준은 금리 인하로 돌아서리란 기대가 깔려 있다. 그렇지만 1970~198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다이먼 회장 같은 이들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섣부른 낙관을 경고하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등 연준 고위 인사들도 올해 금리 인하는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인플레이션이 다시 불붙고 침체가 길어질 가능성도 대비해야 한다.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 경제는 미국이 기침만 해도 몸살을 앓는다. 미중 갈등 속에서 중국의 ‘위드 코로나’가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될지도 불확실하다. 한국 경제 앞길의 안개가 아직은 짙다는 얘기다. 안개로 앞이 안 보일 땐 안전이 최우선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올해 경제정책 방향을 설명하면서 “상반기에 수출, 민생 등의 어려움이 집중되고 하반기로 갈수록 점차 회복되는 ‘상저하고’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정부는 ‘상저하고’를 가정하고 예산의 65%를 상반기에 쏟아부을 예정이다.

그런데 ‘상저하고’만 맹신하다 경기 부양 실탄이 떨어지는 실책을 할 가능성은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 경기가 하반기 이후에도 게걸음을 걷는 ‘L자형 장기 침체’가 나타난다면 정부에 대비책이 있는지 궁금하다. 경기 부양 정책을 상반기에 ‘올인’ 하기보다는 고통이 길어질 때를 대비해 ‘분산’할 필요는 없는지 따져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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