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사이다 중독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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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료수를 꼽으라면 단연 사이다일 것이다. 단지 사이다를 많이 마신다는 말이 아니라, 이 단어가 다양한 맥락에서 자주 사용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사이다는 음식을 먹다 목이 막히거나 소화가 잘 안 돼 더부룩할 때, 청량감 있는 탄산으로 막힌 목을 뚫어주고 배 속을 상쾌하게 해준다. 이러한 특징에 빗대어, 사이다라는 말이 우리의 답답한 심정과 불편한 감정을 시원하게 해준다는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불합리한 상황이나 인물을 향해 일침을 가할 때, 우리는 ‘사이다!’라고 외치며 박수를 친다.
이러한 사이다에 대한 열망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드라마나 영화와 같이 서사를 다루는 예술 작품일 것이다. 최근 큰 인기를 끌었던 두 작품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경향이 뚜렷하다.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재벌가의 막내아들로 환생한 남자의 이야기,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납치하고 죽이는 사이코패스 범죄자를 말 그대로 ‘때려잡는’ 형사에 관한 이야기.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두 이야기의 결말에 대해 사람들이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모두의 예상대로 많은 시련 끝에 주인공이 범인을 체포하는 데 성공했고 관객들은 사이다 같은 통쾌함에 박수를 쳤다. 그러나 전자의 작품에서, 사이다 같은 복수를 꿈꿨던 이야기가 암울한 현실로 돌아오는 결말을 보여주자 사람들은 비판을 쏟아냈다. 이러한 관객들의 반응에는 개연성이나 당위성 같은 작품 자체에 대한 지적들도 포함되어 있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시원한 사이다인 줄 알고 마셨는데 쓰디쓴 고삼차(苦蔘茶)였다는 배신감으로부터 비롯된 것 아니었을까.
아마도 이러한 현상들에는 우리가 갖고 있는 권선징악에 대한 갈망이나 그것들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탄식이 깔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탄산 음료에는 중독성이 있다. 마실수록 청량감에 대한 역치가 높아지고 나중에는 습관적으로 마시게 된다. 사이다만 마시고 살 수는 없다. 특별한 쾌감이나 자극을 주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삶 속에 없어서는 안 되는 물처럼 은은하게 스며드는, 그런 서사를 더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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