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 너무 아픈 사랑은…

기자 2023. 1. 2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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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나비는 덩치만 큰 순둥이 백구입니다. 강아지 적부터 아무거나 입에 넣는 버릇이 있어, 산책할 땐 항상 입마개를 써야 합니다. 정작 나비는 불편해하지 않는데, 한강변에만 가면 항의가 빗발칩니다. ‘그런 걸 씌울 만큼 위험한 개를 데리고 나오면 어쩌냐’ 하는 분들도 있고, ‘불쌍하게 왜 씌웠냐, 동물학대 아니냐’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일일이 설명할 수 없어, 웃음으로 때우고 있자면, 속으로는 억울합니다. 동물을 싫어하는 분들은 사납다 오해한 것이고, 동물을 좋아하는 분들은 학대라 오해한 것이겠지요. 너무 싫어하고, 너무 좋아하고. 자신이 싫은 것은 남들도 싫어해야 마땅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은 남들도 사랑해 주길 강요합니다. “과잉의 시대”라는 표현이 있더군요. 우리 사회에 동물을 둘러싼 혐오의 과잉과 사랑의 과잉이 혼재합니다.

김재윤 수의사·우리동물병원생명 사회적협동조합 대표원장

먼 옛날엔 모두 야생동물이었습니다. 그들 중 일부가 사람과 함께 사냥했고, 농작물을 함께 키웠으며, 기꺼이 등을 내어주고 탈것이 되었습니다. 가축입니다. 인간의 욕망에 의해 가축 중 일부는 축산동물이 되었고, 일부는 애완동물이 되었습니다. 애완이라는 말속에는 ‘노리개’라는 뜻이 숨어 있기에, 동물은 가지고 노는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으로, 반려동물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우리와 함께 과잉의 시대를 거치고 나면, 그들은 어떤 이름을 새로 얻게 될까요?

동물병원에서는 과한 사랑이 질병의 형태로 나타난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비만이 대표적입니다. 살찐 야생동물은 존재하지 않는 데 반해, 인간과 함께 사는 죄로 비만을 겪습니다. 소위 영양제 고문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하루에 먹는 영양제만 예닐곱 가지. 아픈 곳도 없고, 원한 적도 없는데, 수시로, 억지로, 물도 없이 약을 삼켜야 합니다. 자신이 채식주의자란 이유로 육식동물인 고양이에게 비건 사료를 강요하는 보호자도 있습니다. 명백한 학대입니다. 동물을 향한 과한 사랑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혐오가 반려인의 자격으로 통용되는 시대입니다.

우리 곁에 산다는 이유로 불행한 동물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잘못입니다. 혐오가 넘치든, 사랑이 넘치든, 괴롭히기는 마찬가지인데, 양쪽이 편을 갈라 싸움에만 열심입니다. 한쪽에서 ‘사람도 굶어 죽는 판에’라고 시작하면, 반대쪽은 ‘미개하게, 동물만도 못하게’ 같은 혐오를 쏟아냅니다.

동물만 못한 것은 양쪽 모두입니다. 동물들은 서로를 인정하고, 생태계의 일부로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합니다. 호랑이는 사슴이 미워서 사냥하는 것이 아닙니다. 호랑이는 비만이 될 만큼 과잉의 사슴을 사냥하지 않고, 사슴도 호랑이를 혐오해서 도망치는 것이 아닙니다. 동물들 사이의 미움은 의인화를 거친 동화 속에만 존재합니다. 가축이었던 시절부터 그들은 이미 우리와 함께할 자격을 갖추었는데, 우리는 어떨까요? 사랑의 과잉, 혐오의 과잉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비로소 그들과 함께할 자격이 주어집니다. 우리 주변의 동물들은 약자입니다. 우리와 함께 사는 동물마저 행복한 사회라면 사람에게는 더 살기 좋은 사회일 것입니다. 멀지 않습니다. 서로를 인정하는 법, 함께 잘 사는 법 또한 동물들에게 배운다면, 금방입니다. 반려동물 다음, 그들의 새 이름은 너나없이 누구나 듣기만 해도 기분 좋은, 그런 이름이면 좋겠습니다.

김재윤 | 수의사·우리동물병원생명 사회적협동조합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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