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보다] 윤범모 관장은 죄가 없다
국고에 납입해야 할 수익금 3200만원을 직원들의 격려금으로 돌렸다. 공식 유튜브 계정이 해킹됐는데도 상급 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엔 보고도 안 했다. 일부 직원은 시간 외 근무수당을 부당 수령하고, 자의적 수의계약으로 일반경쟁 원칙을 위반하는 등 제멋대로 경영했다. 심지어 고용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아 예술가들이 받아야 할 고용보험법상 혜택(구직급여 등) 수혜를 차단한 사례도 있다.
위는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기관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지난 3년간 벌어진 일이다. 문체부는 9일 이 같은 내용의 ‘국립현대미술관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2022년 10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진행한 기관 운영과 주요 사업에 대한 감사에서 발견한 위법·부적절 업무처리는 모두 16건에 달한다. 회계질서 문란, 작품관리 소홀, ‘갑질’ 등 다양하게 망라되어 있다.
관장 임용 시마다 불거진 공정성 논란을 비롯해 전시를 둘러싼 학벌과 파벌 싸움, 채용비리, 부당 인사, 전문성 결여, 편중된 작품 구매 등 국립현대미술관의 역사 50여년간 별의별 이슈가 발생했지만 이처럼 짧은 기간 내 부정한 장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진 적은 없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직장 내 괴롭힘이다. 복수의 상급자는 회식 자리에서 부서 직원의 외모를 A는 10점, B는 90점, C는 50점식으로 품평하고, 다수의 직원들에겐 “화장 좀 해라” “수준이 초등학생이다” 등의 모욕적 언행을 일삼았다. “나가서 딴소리하면 죽여”라는 폭언도 했다. 문체부는 윤범모 관장이 이를 인지하고도 방관했다고 지적했다.
통상의 개념에서 자유로워도 너무 자유로운 이 전위적(?) 기관은 여러 기획 아래 예술의 역할을 강조하며 현실에 대한 대항을 노래해 왔으나 정작 조직 내 권력자들은 상식 밖의 일들을 양산하며 국립현대미술관을 절망적 현재로 이끌었다. 경영 부실에다 비인격적 행위마저 횡행했다는 점은 도덕적·윤리적 수준이 나락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럼에도 책임자인 윤 관장은 반성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10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선 사과 대신 “안타깝다”는 관찰자적 시점을 드러내며 남 일 대하듯 했다. ‘갑질’에 대해선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생긴 부작용”이라는 궤변까지 늘어놨다. 그의 이런 태도는 전에도 있었다. 지난해 1월 노동조합이 규탄성명을 통해 정파적 특수이익을 고려한 반민주적 행태와 관장 등 수뇌부의 ‘갑질’에 대해 고발했을 때에도 부인으로 일관했다. 같은 해 10월 노조의 고발성명을 따진 국정감사에서도 “저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렇다면 그는 염치도 부끄러움도 없는 것일까. 아니다. 위법이 발견되면 일벌백계해야 할 문체부는 사안의 엄중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주의·경고만 남발한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고, 내밀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미술계 지식인들조차 ‘침묵’하니 굳이 머릴 숙일 이유가 없었다는 게 맞다.
사실 문제의 핵심은 직원들에게 업무상 위력을 행사하든 미술관의 격을 떨어뜨리든, 내 일만 아니면 된다는 식으로 묵인해온 미술인들에게 있다. 여러 글과 말로 부조리와 불평등, 반민주적인 것에 함몰된 세태를 꾸짖던 진보 지식인이 어느 순간 역변(逆變)해도 기껏 한다는 게 ‘뒷담화’가 전부인 우리 탓이 크다.
그러니 국립현대미술관이 왜 그 모양 그 꼴이 되었냐며 윤 관장만 나무랄 순 없다. 그 숱한 불의에 입 다물었던 자신들을 보라.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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