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씻고 무좀 가득한 남편과 잠자리 거부…제가 문제인가요?”

정채빈 기자 2023. 1. 2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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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비위생적인 생활을 하는 남편과의 잠자리를 3년간 거절한 아내가 혼인 파탄의 책임을 물어야 할까. 이에 대해 전문가는 “(부부관계 거부와 관련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단순히 부부관계를 맺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내를 유책 배우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봤다.

25일 YTN 라디오 ‘양소영 변호사의 상담소’는 남편의 부족한 위생관념과 경제적 문제 등으로 이혼을 고민하는 여성의 사연을 다뤘다.

결혼 3년 차. 세 살 된 자녀가 있다는 A씨는 “남편과 연애를 3개월 정도 한 뒤 아이가 생겨 결혼했다”며 “아이가 태어나고부터 쇼윈도 부부처럼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부부관계가 3년 동안 전혀 없었다”며 “결혼 초기엔 임신을 해서 자연스레 안 하게 됐고, 아이를 낳고는 제가 거부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사실 남편과 생활습관, 성격 등 모든 게 전혀 맞지 않는다”며 “남편은 집에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자신이 더럽게 쓰는 화장실에 물 한 번 뿌릴 줄 모르고, 늦게 들어와서 씻지도 않고 잠을 자 발에 무좀이 가득하다”고 했다. 이어 “제가 ‘이것 좀 해줘 저것 좀 해줘’ 말하면 (남편이) 지적질하지 말라면서 비꼰다”며 “매사에 자격지심, 비꼬기, 욱하기가 생활화돼 있는 사람”라고 했다.

또 A씨는 “(남편이) 생활비를 주지도 않았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그동안 모두 제가 벌어서 감당했고, 가끔 돈이 부족해서 달라고 하면 몇백 준 적있다”며 “모든 생활비를 제가 부담했다”고 말했다.

A씨는 “(남편에게) 이혼을 하겠다고 하니 남편이 돌연 아이를 걸고 넘어졌다”며 “성관계를 거부하고 아내로서 역할을 안 한 제 잘못이 크다더라. 아이를 자기가 키우겠다고 한다”고 했다.

A씨의 사연에 대해 김아영 변호사는 “설령 부부라고 하더라도, 일방이 요구한다고 해도 성관계를 반드시 맺어야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부부간의 동거·부양·협조의 의무를 규정한 민법 826조에 따라 부부간 동의 없이 한쪽이 일방적으로 각방을 쓴다면 동거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김 변호사는 “법원은 당사자가 치유할 의지가 없거나, 치유가 영구 불가능한 기능 불능 등으로 성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경우에는 이를 이혼 사유로도 보고 있다”며 “건강상의 이유 등 타당한 이유 없이 한쪽의 의사만으로 3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부부관계를 거부했다면 혼인 파탄의 단계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변호사는 “성관계는 지극히 내밀한 개인의 자유의 영역”라며 “(사연 속) 부부 사이에는 갈등 상황도 있었다. 모욕적인 발언은 없었는지, (성관계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는지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남편과 부부관계를 맺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내를 유책 배우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아울러 김 변호사는 민법에서 규정하는 공동생활 비용 부담의 의무를 언급하며 “남편이 경제적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아내가 경제적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생활비를 주지 않는 것은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의무를 저버린 거다. 오히려 남편에게 유책 사유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양육권에 대해서는 “아이의 복리가 최우선이 되도록 판단하고 있다”며 “(아내가) 주로 양육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양육권을 주장하는 데도 특별히 불리한 점은 없다고 보인다”고 했다.

앞서 2010년 대법원은 결혼 후 장기간 성관계가 없었던 것이 이혼 사유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당시 7년간 성관계가 없다가 별거를 하게 된 부부에 대해 대법원은 “부부관계가 회복 불능할 정도로 파탄됐다고 볼 수 있다”고 봤다.

1999년 결혼한 이 부부는 성관계를 몇 차례 시도했으나 실패한 뒤 ‘섹스리스’ 부부로 지내왔다. 결국 남편은 2007년 ‘아내가 정당한 설명 없이 관계를 거부했고 안일한 경제관념과 사치 때문에 고통받았다’며 이혼 소송을 냈다.

원심은 남편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성관계가 없었던 것이 아내의 책임이라고 볼 아무런 자료가 없고, 아내가 문제를 극복하려는 강한 의사가 밝힌 점 등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정상적인 성생활을 갖지 못한 데에 부부간 동등하거나 아내에게 더 큰 정도로 책임이 있을 수도 있다”며 원심을 깼다. 대법원은 “원심은 부부 양쪽에 성적 결함 등 정상적인 성생활을 방해하는 원인이 있는지, 당사자의 노력으로 극복될 수 있는지 등을 더 심리한 뒤 혼인관계의 파탄정도와 당사자의 책임 정도를 가렸어야 했다”며 사건을 가정법원 합의부로 돌려보냈다.

2년 가까이 성관계는 갖지 않은 부부에 대해 “부부간 성적인 접촉이 단기간 부존재하더라도 그 정도의 성적 결함만으로는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다고 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2009년 대법원 판례도 있다.

2005년 결혼한 이 부부는 신혼여행 기간은 물론 결혼생활 내내 성관계 없이 지내다가 결국 2007년 한쪽이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다만 상대방은 이혼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정당한 이유 없이 성교를 거부하거나 성적 기능의 불완전으로 정상적인 성생활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다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적인 치료와 조력을 받으면 정상적인 성생활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는 경우엔 일시적인 성기능의 장애가 있거나 부부간의 성적인 접촉이 단기간 부존재하더라도 그 정도의 성적 결함만으로는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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