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복수와 응징은 어떻게

박병진 2023. 1. 25.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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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확장억제력에 대한 불신으로
남한 내 독자 핵무장 필요성 대두
섣부른 낙관론이자 기대이지만
핵무장 준비 및 계획은 세워둬야

지난해 북한의 미사일 개발과 도발은 유례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언제든 남한을 겨냥해 핵 선제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며 핵무력 법제화를 선언했다. 세밑에는 무인기 도발까지 재개했다. ‘불안한 안보’로 남남갈등을 부추겨 정쟁화하는 데 성공했다. 7차 핵실험은 진행형이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기대는 잦아들고, 대신 남한 내 독자 핵무장 필요성이 대두됐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섰다. 70년간 이어진 미국의 확장억제력에 대한 불신이 고개를 쳐든다. 미국이 유럽에 전술핵을 배치하고, 호주에는 핵 잠수함도 내주면서 북핵 위협만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부터 전략무기 전개를 통한 보여주기 ‘쇼’는 이제 약발이 다했다고 툴툴거린다.

과거 미국 조야에선 남한 내 핵개발이나 전술핵 재배치가 언급되면 한·미동맹에 대한 심대한 도전으로 인식했다. 미군 확장억제(핵우산) 전략으로 충분하다고 봤다. 변화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신냉전’의 도래에서 비롯됐다. 덩달아 북핵 위협에 따른 불안 심리가 커지며, 자강론에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는 주장이 난무한다.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지난해 말 미국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한국인 18세 이상 1500명 대상)에 따르면 자체 핵무기 개발을 찬성한 한국인이 71%에 달했다. 미국 전술핵을 한국에 배치하는 것에는 56%가 지지 의사를 표시했다.
박병진 논설위원
미국 내 기류도 달라졌다. 미국 3대 싱크탱크 중 하나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 18일 “향후 한국에 전술핵을 재배치할 가능성에 대비해 관련 준비 작업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시점에서 재배치를 반대한다는 전제를 달긴 했어도 미국 주요 싱크탱크가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이례적이다. 그렇더라도 예단(豫斷)은 금물이다. 미 백악관이나 미군 고위층의 원론적 답변은 여전하다. 미 조야에서도 핵무기 비확산 기조를 철회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셨다’는 비판에 휩싸일 수 있다.

남한 내 핵무장 가능성은 오히려 미국과 일본의 밀착에서 점칠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은 지난 11일 중국을 ‘최대 전략적 도전’으로 규정하고, 중국과의 군사적 충돌에 대비해 기존 일본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를 증강, 전진 배치하기로 했다. 내친김에 미국은 일본의 반격능력 확보를 지원하는 동시에, 육·해·공은 물론이고 우주와 사이버 등 전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겠다고도 했다. 중국을 상대하는 미국은 제 코가 석 자다. 이러한 관계 설정에는 일본이 미국의 조력자로 언제든 중국과의 일전불사를 감당할 것이란 믿음이 자리한다. 우리는 어떤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하고 중국에 대한 입장도 모호하지 않았던가. 핵무장에 대한 답은 뻔하다. 미국이 간이며 쓸개며 다 빼주는 일본에도 주지 않는 핵무장 선물을 우리에게 주겠는가. 핵무장이 섣부른 낙관론이자 희망고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학교폭력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화제다. 고교 시절 친구들의 잔인한 폭력에 시달리던 주인공은 극단적 선택 대신 살아서 복수하는 길을 택한다. 그렇게 복수를 결심하고는 18년을 치밀하게 준비한다. 주인공이 늘 어두운 색깔의 옷을 입고 김밥을 먹는 장면은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장치다. 폭력의 상처가 워낙 크다 보니 대중은 현행법상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사적 복수에 공감했다. 복수와 응징이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 것에도 고개를 끄덕인다. 개인이 이럴진대 국가라면 오죽하겠나.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북핵 위협에 맞서 핵무장을 떠벌리며 복수와 응징의 안전판을 깐다고 여기는 것은 착각이다. 미국의 확장억제에 신뢰를 보내면서도 신형 전략무기의 한반도 전진 배치에 공을 들여야 한다. 핵우산의 실행 과정에 한국군 참여를 명시한 연합작전계획도 뺄 수 없다. 핵확산금지조약(NPT) 내에서 실현 가능한 핵 관련 연구 및 개발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사전 대비는 지속적인 한·미 군사훈련을 통해 싸워 이길 수 있는 군대를 양성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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