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배 폭등한 전기료 고지서 SNS에 올려 ‘아우성’ 프랑스 소상공인들의 동참 불러[시스루 피플]

박은하 기자 2023. 1. 25.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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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의 제빵사’ 프레데리크 루이


‘제빵업계의 십자군’ 별명
전통 방식 크루아상 인증제
2017년 대선 때 제안 눈길

지난 2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13구에 있는 재정경제부 건물 앞으로 요리사 모자를 쓰고 흰색 조리복을 입은 이들이 모여들었다. 손에는 “제빵사가 위기에 처했다”라고 쓰인 팻말이 들려 있었고, EDF(프랑스국영에너지기업)가 기요틴(단두대)에 매달려 있는 그림이 수놓인 앞치마도 눈에 띄었다. 서부 루아르아틀랑티크주 오동에서 온 제빵사 마리안(47)은 “이 사람은 정육업자이고, 이 사람은 레스토랑 요리사”라고 동료들을 소개하며 “에너지 문제에 항의하기 위해 동네 소상공인들과 함께 왔다”고 말했다. 이날 열린 전국 소상공인 시위 참석자들의 정치적 성향은 다양했다. 프랑스 국기를 흔드는 사람부터 체 게바라 얼굴이 그려진 가방을 메고 온 사람도 있었다.

좌·우파를 막론하고 프랑스 전역의 소상공인을 한자리에 모은 이는 ‘니스의 제빵사’ 프레데리크 루이(53·사진)다. 지난해 11월 동료 제빵사 2명과 함께 ‘빵집과 장인의 생존을 위한 모임’을 만든 그가 지난달 트위터에 올린 두 달치 전기요금 고지서는 ‘바게트 위기’를 알리는 기폭제가 됐다. 지난해 11월 780유로(약 100만원)이던 전기요금은 12월에 1만7514유로(약 2350만원)로 폭등했다. 이후 SNS에서는 전국의 제빵사들이 에너지 요금 고지서를 인증하는 운동이 펼쳐졌다.

재정경제부는 지난 6일 소상공인을 위한 에너지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사업자의 전기요금 인상 폭을 15%로 제한한 전기요금 상한제는 연매출액 200만유로 미만, 사용전력 36㎸A 미만, 직원 10명 미만 가게에만 적용된다. 루이는 “모든 소상공인들에게 전기요금 인상 상한제가 적용돼야 한다”며 이번 시위를 독려했다.

‘프랑스 제빵업계의 십자군’ 으로 불리는 루이는 니스에서 수십년 된 자동차로 빵을 배달하는 빵집 ‘르 사피톨’ 주인으로 유명했다. 지역언론 니스마탱에 따르면 오전 3시30분에 출근해 생지를 직접 반죽하는 등 전통 방식대로 만드는 크루아상과 팽 오 쇼콜라가 그의 주력 상품이다.

루이가 SNS를 통해 제빵업계 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때는 2016년 무렵이다. 식생활 변화로 바게트조차 급격한 판매량 감소 추세에 접어든 뒤였다. 연중무휴 운영되는 슈퍼마켓 체인이 늘면서 동네 소상공인들을 위협했다. 2014~2015년 유럽 낙농파동의 반작용으로 우유, 버터 가격이 크게 올라 빵집의 시름이 깊어졌다. 시골 빵집들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루이는 2017년 대선 때 후보들에게 “전통 방식으로 생산되는 크루아상에 인증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제언해 눈길을 끌었다. 첨가물 없는 밀가루와 생산지 명칭이 붙은 최고 품질의 버터만을 사용해 공장이 아닌 빵집에서 구운 크루아상에만 인증 마크를 붙여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과 같은 장인의 빵이 공장에서 생산된 빵에 밀려 사라지는 것은 ‘프랑스 요리 유산의 상실’이라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 크루아상의 85%가 공장에서 생산된 빵”이라고 해 프랑스제과제빵전국연합(CNBPF)으로부터 “동료들을 모욕하지 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 출범 후 브뤼노 르메르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크루아상 인증제 아이디어를 전했지만 “유럽연합(EU) 규정을 바꿔야 해 불가능하다”는 답을 받았다. 지난해 말부터 소상공인 에너지 문제에 관해 활발히 발언하고 있다.

이날 전국 소상공인 시위는 변화를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전국 최대 제빵업자 모임인 CNBPF는 불참했다. 제빵사들 사이에서도 정부와 협상하는 것이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소상공인의 죽음’을 외쳐온 그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주목을 받고 있다. 니스마탱은 “처음에는 우파 외에 공명하는 이들이 드물었지만 급격한 에너지 가격 상승 이후 그는 제빵사들의 싸움에 필수적인 존재가 됐다”고 평했다.

파리 | 박은하 유럽 순회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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