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남극점 단독 무보급 도달 김영미 “지금은 그냥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
“엄청난 고통이 매일 괴롭혔다. 지금은 그냥 제자리로 돌아와 나를 기다리는 좋은 사람들과 만난 게 감사할 뿐이다.”
한국인 최초로 무보급, 단독으로 남극점에 도달한 뒤 귀국한 산악인 김영미 대장(42·노스페이스 애슬리트팀)이 밝힌 소감이다.
김 대장은 25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인터뷰에서 “첫날부터 51일 동안 100㎏이 넘는 썰매 무게가 전혀 줄어들지 않은 느낌이었다”며 “고립과 고통 속에서도 온몸으로 대자연을 누리는 특권을 갖는다고 생각하고 끝까지 달렸다”고 말했다.
김 대장은 지난해 11월 27일 남극 대륙 서쪽 허큘리스 인렛에서 출발해 51일 동안 1186.5㎞를 100㎏가 넘는 썰매를 끌고 홀로 이동했다. 그동안 남극점을 밟은 여성은 영국인 9명을 비롯해 17명이다. 그중 중간에 식량이나 물자를 지원받지 않은 채 남극점에 도달한 여성은 10명에 불과하다. 김대장은 세계에서 여성 11번째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무보급으로 남극점에 도달한 철인이 됐다. 김 대장은 “도전에 처음으로 나설 때부터 포기는 생각하지도 않았다”며 “본전치기만 하자는 생각으로 하루도 안 쉬고 걸었을 뿐”이라고 회고했다.
김 대장은 51일 중 마지막 날 아침을 기억했다. 김 대장은 “오늘만 걸으면 남은 거리는 0㎞가 된다는 생각에 감정이 북받쳤다”며 “막상 남극점에 도달했을 때는 ‘끝났다’는 생각 이외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대장은 “색깔이 없는 곳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게 남극”이라며 “한국에서 녹음해간 기계음, 자동차 소리, 지인들 목소리를 들으면서 힘을 냈다”고 덧붙였다. 김 대장은 “내가 히말라야를 가기 위해 서울에 왔을 때 선배가 해준 말을 자주 떠올렸다”며 “100번을 해도 안 되는 마지막 한 번을 단 번에 이룰 수 있다는 말이었다”고 소개했다.
김 대장은 향후 목표를 묻는 질문에 손사래를 쳤다. 김 대장은 “남극이 워낙 크고 버거운 곳이라서 출발할 때부터 지금까지 다음 목표는 생각하지도 못했다”며 “집에서 충분히 쉬면서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아버지 김형순씨(76)와 어머니 박춘화씨(71)가 딸을 마중나왔다. 김씨는 “자다 깨다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며 “연락할 곳도, 물어볼 곳도 없어 걱정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다음에는 어디도 가지 못하게 하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박 씨는 “출국 전 아버지가 췌장이 좋지 않아 한 달간 입원했다가 퇴원했다”며 “아버지가 건강한 모습으로 마중나온 게 딸에게 큰 선물”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딸이 추운 데 있다고 생각하니까 부모로서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잘 수 없었다”며 “손발 얼지 않고 건강하게 돌아와 기쁘다”고 덧붙였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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