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목 칼럼] 한국판 인·태전략은 선린·실용외교 시험대

2023. 1. 2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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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향후 수십년간 한국 외교의 근간이 될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인·태전략)이 발표됐다. 자유, 평화, 번영의 3대 비전을 위해 포용, 신뢰, 호혜의 3대 원칙을 수립한 것이다. 가치를 공유하는 주변국들과의 전방위적인 협력을 강화하고, 호혜적 실용주의에 입각해 중국을 배제시키지 않겠다는 '포용' 노선을 수립한 것이 핵심이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신뢰' 형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규범 질서, 법치와 인권, 비확산·대테러 협력, 포괄안보 협력, 경제안보 네트워크, 첨단과학기술 협력, 기후변화·에너지안보 협력, 개발협력, 문화·인적 교류 등 9개 중점 추진 과제를 시행한다.

그동안 우리 대외전략은 제대로 수립되지 못했다. 지난 정부는 '국제협력을 주도하는 당당한 외교'를 핵심목표로 설정했었다. 신남방정책과 신북방정책을 밀어붙여 동북아 플러스 책임공동체를 형성하고, 한반도 주변 4강에서 벗어난 자주외교의 길을 가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었다.

이 세상의 어느 나라가 할 수만 있다면 '당당'하고 '자주'적인 외교를 마다하겠는가. 정말로 이런 외교를 공공연히 설정하고 수단개념으로까지 밀어붙이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당장 미일동맹 축으로부터 멀어지는 계기가 됨은 물론, 중국과 북한으로 하여금 이용만 당할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을 위해서는 핵심 이해관계를 가진 국가들과 더욱 친밀한 협조 및 동맹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기본이다. 미국과 보조를 맞춰 북한을 압박하여 협상의 레버리지를 높여야 할 때, 거꾸로 친북 행보로 일관했었다. 공공연한 한-미 엇박자는 미국이 방위비 분담, 무기 구매, 통상보복 압력을 가중시키는 빌미도 제공했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도 한반도 평화체제 형성에 필수적 요소인데도 일본 때리기 정책들을 쏟아내 대일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전개시키고 의도적으로 미국과 멀어지는 길을 택했다.

그 결과 미국 정가에서는 공공연히 당시 한국정부를 반미정권이라 규정했고, 미 국방부가 2019년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는 한국의 외교적 역할을 철저하게 한반도에 국한시켰다. 미국의 동맹국 가운데 일본, 호주는 명확하게 인·태전략의 협력자로 역할 규정이 되어 있었는데도 말이다.

신북방정책 또한 성과를 거두려면 서방으로부터의 막대한 인프라 건설 투자와 안보협력이 필요했다. 미국·일본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상황에서 신북방 번영공동체를 실제로 구축해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동북아 플러스 책임공동체', '한반도 신경제지도' 등의 장밋빛 용어들만 난무하는 당시 외교정책이 간과하고 있던 것은 선린·실용외교였던 것이다.

이제라도 무너진 선린·실용외교가 '포용, 신뢰, 호혜'의 원칙으로 재탄생한 것은 다행이다. 2022년 5월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인도태평양경제협력체(IPEF)에의 한국의 참여가 공식화됐다. 이제 한국 외교의 역할 범위가 한반도를 넘어 인·태지역에서 평화, 자유, 개방 및 번영을 추진하는 작업으로 확장된 셈이다. 이 범위에서의 우리의 역할을 스스로 정의 내리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우리 스스로 설정한 비전과 원칙이 오히려 외교의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강조하는 포용 비전은 남중국해에서의 항행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중국을 포위하려는 미국의 노선과 언제라도 충돌될 수 있다. 공급망, 디지털, 광물자원 분야에서 중국을 포용하여 공동체를 형성해나가려는 우리의 시도는 미국의 중국봉쇄 목표와 배치될 수 있다.

대중 포용정책을 추진해나가자니 IPEF 원칙을 위반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게 되고, IPEF 원칙을 따르자니 포용 비전을 위반한다는 중국측으로부터 항의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앞으로 한국판 인·태전략의 추상적 원칙들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구현해내는 과정은 진정한 의미의 선린·실용 외교가 발휘되는 시험대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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