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1의 목소리] 나는 성매매 경험 당사자다

한겨레 2023. 1. 2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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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성구매자는 대가를 지급했다는 이유로 시키는 대로 하라며 성매매 여성에게 입에 담기 힘든 말과 변태 행위를 요구한다. 욕하고 때리는 경우도 있다. 성구매자들은 여성의 몸을 자신의 우월함을 표출하는 장소로 여기기 때문이다. 성구매자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성관계가 아니라 복종이다.
‘성매매문제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등 여성인권단체가 2018년 9월19일 ‘성착취 반대 여성 인권 공동행동’ 행사를 열고 성매매 방지 대책을 제대로 시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짤(가명) | 성매매경험당사자네트워크 뭉치 활동가

처음 지인으로부터 ‘6411의 목소리’ 코너에 성매매 현장에 관한 글을 써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고 고민했다. 각종 노동 현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야기가 실리는 곳인데, 성매매는 성착취일 뿐 노동이 될 수 없다고 외치는 우리의 목소리를 내보내는 게 합당한지 의구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나는 성차별·성착취 세상을 바꾸려는 성매매 유경험자들의 조직인 ‘성매매경험당사자네트워크 뭉치’에서 활동하고 있다. 2006년 지역 자조 모임에서 출발해 2023년 현재 6개 지역 50여명의 성매매 경험 당사자들이 성매매 현장에서 여성들이 어떤 방식으로 판매되고 착취당하는지, 성매매의 본질을 드러내고 알려 그 누구도 우리와 같은 폭력을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활동하고 있다.

성매매방지법이 만들어진 지 18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은 성매매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여전히 성매매 산업은 성황을 이룬다. 조건만남, 키스방, 성구매 후기사이트, 성구매 알선사이트…. 모양만 달라질 뿐 성매매 유형과 방식은 계속 다양화하고 늘어나고 있다. 온라인에서 여성에 대한 성 착취 구조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고 돌아가는지 보여준 일명 ‘엔(n)번방’ 사건을 보면서, ‘뭉치’가 오프라인에서 경험했던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여성에 대한 폭행과 불법 촬영, 동의를 가장한 포르노 촬영, 그루밍 사건 등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성매매는 과거도, 현재도 가장 취약한 상황에 놓인 여성들이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대, 저학력, 빈곤, 다양한 폭력 피해에 노출되고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사람들이 인터넷사이트 등에서 광고를 보고 연락해 성매매업소를 찾게 된다. 있을 곳이 못 된다고 생각해 그만두겠다고 하면, 업주는 소개비와 방 보증금 및 가전제품, 일할 때 입어야 하는 옷과 신발, 가방, 화장품 등등 ‘너한테 들어간 돈이 얼마인지 아느냐?’ ‘그 돈은 네가 갚고 나가야 할 빚’이라고 압박한다.

그러나 그 빚을 갚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성매매하기 위해서는 큰 비용이 든다. 알선비와 방값, 음료와 콘돔 구매비, 밥값 등 일상적 비용 지출은 물론 몸이 안 좋거나 일이 생길 땐 지각비, 결근비 등 각종 벌금을 물어야 한다. 또 매일 화장하고 살 빼는 약을 먹어야 한다. 성매매 남성을 끌어들이기 위해 몸에 들러붙는 ‘홀복’을 입어야 하고, 팽팽한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 보톡스 주사를 주기적으로 맞아야 한다. 이런 비용을 쓰지 않으면 성매매를 계속할 수 없다. 테이블에 들여보내 주지 않아 손님을 만날 수 없다.

반면 업소 사장은 자고 일어나면 하루에 수백만원씩 번다. 우선 성매매 비용의 절반이 사장 몫이다. 업소당 여성 6~10명이 있고, 하루에 오는 성구매자들은 수십명에서 많게는 백명이 넘는다. 그리고 사장들은 장사가 되지 않거나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욕하고, 때린다. 그만두겠다고 하면 집에 알리겠다고 협박한다. 폭력을 써서라도 여성들을 꼼짝 못 하게 만든다. 사채를 빌려주면서 여성들이 서로 보증을 서게 해, 도망가지 못하게 서로 감시하도록 하는 일도 있다.

알선자들은 여성을 모아 업소에 팔아넘기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들은 여러 방법으로 여성들을 성매매 산업에 유입시킨다. 가출 상태여서 갈 곳 없고 친구도 없는 소녀들이 가장 쉬운 대상이다. 연인인 척 다가와 그루밍하며,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 돈을 벌어오라고, 인터넷을 통해 성구매자를 찾은 뒤 이른바 ‘2차’를 하고 오라며 성매매를 알선하는 ‘남자친구’ 노릇을 한다. 장애가 있는 여성을 유인해 성매매시키는 사례도 있다.

성구매자는 대가를 지급했다는 이유로 시키는 대로 하라며 성매매 여성에게 입에 담기 힘든 말과 변태 행위를 요구한다. 욕하고 때리는 때도 있다. 성구매자들은 여성의 몸을 자신의 우월함을 표출하는 장소로 여기기 때문이다. 성구매자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성관계가 아니라 복종이다.

돈을 받았다는 이유로 성매매 여성이 일이나 노동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성매매 산업은 폭력이고 착취일 뿐이다. ‘뭉치’는 그런 성 산업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매매는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성매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돼서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쉬 빠져나올 수 없는 늪이다. 성매매 여성들의 꿈은 성매매를 하지 않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성매매하고 있지만 적어도 좋아서 성매매하는 것으로 보지는 않았으면 한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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