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돌고래의 죽음과 야생방사 실적주의

남종영 2023. 1. 25. 18:4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2005년 제주 비양도 근처에서 불법포획된 남방큰돌고래 비봉이는 지난해 야생방사됐지만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다. 해양수산부 제공

남종영 | 기후변화팀 기자

남방큰돌고래 ‘비봉이’가 석달 넘게 행방불명이다. 2005년 제주 비양도 앞바다에서 불법 포획돼 중문의 돌고래수족관 퍼시픽랜드에서 15년 넘게 쇼를 하다가 야생방사된 뒤다. 남방큰돌고래는 연안 1~2㎞ 안에서 바짝 붙어산다.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지난해 8월3일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이 직접 나서 비봉이를 제주 앞바다로 방류하겠다고 발표했다. 고래를 소재로 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한창 인기를 끌 때라 언론의 주목을 받고, 두달 뒤 모두가 기뻐하며 비봉이를 떠나보냈다.

방사 당시 우려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한겨레의 동물 전문매체 <애니멀피플>과 여러 동물단체는 15~20년 동안 장기간 수족관에서 살았던 비슷한 조건의 금등이, 대포도 야생방사에 실패했고, 야생방사를 한다고 해도 실패했을 때 회수 계획 등이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해양수산부를 중심으로 한 방류협의체는 성공을 장담했다. 떠들썩하게 비봉이를 내보냈지만, 지금 누구 하나 비봉이 운명에 책임지겠다며 나서지 않는다.

‘뉴포레스트 밍크 해방작전’이 생각난다. 25년 전, 급진 동물권단체 동물해방전선(ALF)이 영국 뉴포레스트국립공원 옆 밍크농장에 들어가 밍크 6천여마리를 풀어준 사건이다. 동물해방전선은 봉준호 감독의 <옥자>에서 유전자 변형 슈퍼돼지를 구출하는 것으로 나오는 단체다.

이 사건은 영국에서 논쟁으로 번졌다. 학자들은 밍크가 연고도 없는 지역에 방사됨으로써 대부분 굶어 죽을 거라고 비판했다. 대다수 동물단체도 동물해방전선에 등을 돌렸는데, ‘동물존중’의 마크 글러버는 “모피 반대운동에도 재앙, 밍크에게도 재앙”이라며 날을 세웠다. 이에 동물해방전선은 “우리도 밍크들이 죽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죽기 전에 조금이라도 자유를 맛볼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미 한달 반 전, 노동당 정부는 모피에 대한 반대 여론이 압도적이라면서 모피농장 폐지를 공언한 상태였다.

우리가 비봉이에게 뜻을 물어보고 야생방사를 결정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알다시피 그럴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동물의 운명을 책임져야 할 때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 그때 밍크들처럼 비봉이도 ‘세상 뒤집히는 경험’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물의 운명을 결정할 때에는 과학과 철학 그리고 경험을 통해 숙고해야 한다. 이번엔 어땠나. 첫째, 과학이 말해주는 바 비봉이는 방사는 부적합했다. 돌고래 야생방사는 수족관 감금기간이 길수록 실패 확률이 높아진다. 돌고래가 어릴 적 배웠던 제주 바닷속의 지리, 해류의 방향 등을 기억해야 하고, 음파로 지형지물을 인식하고 소통하는 법을 되살려야 한다. 사회적 동물인 돌고래는 두마리 이상을 방사하는 게 과학적 표준이다.

둘째, 철학에 관해선 ‘동물해방’ 같은 이데올로기만 앞섰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위해 누구 하나를 희생하라고 요구할 수 없듯이, 동물을 야생방사할 때도 전체의 파급효과를 따짐과 동시에 동물 개체의 삶의 질이 어떻게 변할지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셋째, 우리에겐 ‘금등이, 대포의 실패’ 경험이 있었지만, 하나도 배우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2017년 방사된 금등이와 대포는 폐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방사 주체였던 해양수산부는 흔한 백서 하나 내놓지 않고, 다시 비슷한 조건의 비봉이를 고민 없이 방사했다.

이번 사태의 최종 승자는 누구일까? 몇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비봉이, 금등이, 대포가 살았던 퍼시픽랜드는 1986년 설립된 한국 돌고래수족관의 산 역사다. 2010년대 제돌이를 필두로 한 ‘돌고래 해방운동’이 확산하며 돌고래쇼 산업이 쇠퇴하자, 재계 30위권의 호반그룹은 2017년 퍼시픽랜드를 800억원에 인수한다. 최고의 바다 전망을 살려 대규모 리조트 타운을 짓기 위해서였다. 자, 그럼 호반으로선 무엇이 필요할까? 돌고래들이 빨리 사라져줘야 한다. 하지만 멸종위기종인 돌고래는 반입과 반출이 까다롭다. 호반 계열사인 퍼시픽리솜은 지난해 5월 환경부에 신고도 없이 일본산 큰돌고래 두마리를 몰래 거제씨월드로 보냈다.

그리고 수족관에 마지막 남은 돌고래가 비봉이였다. 해양수산부와 제주시, 시민단체 등은 ‘비봉이를 방류하겠다’는 호반과 덜컥 합의한다. 호반엔 이제 수족관을 부수고 리조트를 짓는 일만 남았다. 비봉이는 바다로 돌아가 감감무소식이다 .

fandg@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