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윤심·윤핵관’에 주저앉았다···“솔로몬의 재판 진짜 엄마 심정”
“제 출마가 ‘분열 프레임’으로 작동”
포용 강조···대통령실·당에 쓴소리도
나경원 전 의원이 25일 장고 끝에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대통령실과 친윤석열 의원들의 전방위적 압력과 지지율 하락을 이겨내지 못했다. 나 전 의원 불출마를 사실상 종용한 윤석열 대통령의 뜻대로 귀결된 모양새다. 나 전 의원의 정치적 앞날은 불투명해졌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김기현 의원과 안철수 의원 간 2파전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나 전 의원은 이날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 당의 분열과 혼란에 대한 국민적 우려를 막고 화합과 단결로 돌아올 수 있다면 저는 용감하게 내려놓겠다”며 당대표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나 전 의원은 “저의 출마가 ‘분열 프레임’으로 작동하고 있고, 극도로 혼란스럽고 국민들께 정말 안 좋은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며 “당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솔로몬 재판에서 ‘진짜 엄마’의 심정으로 이번에 그만두기로 결정했다”고 답했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한 아이를 두고 다툼을 벌인 두 여성에게 ‘아이를 반으로 잘라 절반씩 가지라’고 했다는 성경 속 일화를 인용한 발언이다. 이야기 속 가짜 엄마는 ‘절반이라도 좋다’고 말한 반면 진짜 엄마는 ‘저 이에게 주고, 죽이지 말라’고 답한다.
나 전 의원은 “이제 선당후사(先黨後私), 인중유화(忍中有和) 정신으로 국민 모두와 당원 동지들이 이루고자 하는 꿈과 비전을 찾아, 새로운 미래와 연대의 긴 여정을 떠나려고 한다”고 말했다.
나 전 의원은 “포용과 존중을 절대 포기하지 마라. 질서정연한 무기력함보다는 무질서한 생명력이 필요하다”며 대통령실과 당을 향한 쓴소리를 남겼다. 그는 “오늘 이 정치 현실은 무척 낯설다”고 했다.
나 전 의원의 불출마 결정은 대통령실과 친윤의 압박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자격으로 한 지난 5일 ‘출산 시 부채 탕감 검토’ 발언부터 대통령실의 공개 비판을 받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13일 나 전 의원을 부위원장직과 기후환경대사직에서 전격 해임했고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17일 “대통령이 나 전 의원의 그간 처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본인이 잘 알 것”이라고 면박을 줬다.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장제원 의원을 비롯한 친윤 의원들의 공격도 계속됐다. 국민의힘 초선의원 50명은 연판장을 돌려 “더 이상 당과 대통령을 분열시키는 잘못된 길로 가지 말라”고 압박했다.
지지율 하락도 나 전 의원의 발목을 잡았다. 부위원장직에서 해임된 직후인 지난 14일 나온 국민의힘 지지층 대상 여론조사에서 2위로 내려 앉았다는 결과가 처음 나왔다. 이후 반등은 없었고 지지율 하락 추세는 지속됐다. 이날 발표된 조사에서도 나 전 의원은 3위에 머물렀다. 나 전 의원은 이날 불출마 배경에 대해 “어떤 후보나 다른 세력의 요구나 압박에 의해 결정한 것은 아니다” “지지율이 높고 낮음은 중요치 않다”고 말했다.
나 전 의원은 사퇴의 이유로 화합을 들었지만 불출마 회견문에는 윤 대통령을 향한 불만도 녹아있었다. ‘솔로몬 재판의 엄마’ 비유에서는 왕이 윤 대통령, 아이가 당에 비유될 수 있다. ‘질서있는 무기력함보다 무질서한 생명력’이 필요하다는 표현도 친윤 일색의 당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된다. ‘정치 현실이 낯설다’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나 전 의원은 “저는 영원한 당원”이라고 강조했지만 정치적 미래는 불투명하다. 2019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를 지낸 후 2020년 총선,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경선, 2021년 전당대회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화려한 부활을 꿈꿨지만 정치의 명분과 실리 모두를 잃은 채 주저앉았다. 당내에서는 차기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할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나 전 의원의 불출마로 당대표 경선은 김 의원과 안 의원의 2파전 구도로 압축될 전망이다. 나 전 의원 지지세가 어느 후보에게 수렴하느냐에 따라 전당대회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의 출마 여부가 마지막 남은 변수다. 나 전 의원은 “앞으로 전당대회에 있어서 제가 어떤 역할을 할 공간은 없다”고 말했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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