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철칼럼] 거짓말과 정치 권력

박정철 기자(parkjc@mk.co.kr) 2023. 1. 25.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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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대표 자신의 사법리스크에
현란한 말 뒤집기로 책임 회피
정치생명 걸고 진실로 맞서야

거짓말과 정치권력은 불가분의 관계다. 러시아 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이 쓴 '보리스 고두노프' 속 가짜 황태자처럼, 거짓말로 민심을 속여 세상을 뒤집거나 권력의 정점에 오를 수도 있다. 반면 거짓말은 파멸과 몰락을 부르는 치명적 유혹이기도 하다. 상습적인 거짓말로 권력에서 쫓겨난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과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등이 그런 경우다. 한때 세상을 쥐락펴락했던 이들의 추락은 지도자가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진실보다 거짓을 택할 때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장동·위례 개발 비리 의혹과 관련해 28일 검찰에 출두한다. 이 대표 측은 "망신 주기를 넘어 악마화" "사법살인" "정적 제거"라며 발끈하고 있다.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검찰 수사를 놓고 '표적·보복'이란 응답보다 '적법·정당'이라는 답변이 더 많다.

실제로 이 대표 발언을 보면 현란하게 말을 바꾸거나 뒤집은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대표는 대북 불법 송금·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받고 있는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에 대해 "모른다"고 했지만, 쌍방울 전 비서실장은 "두 사람이 가까운 사이"라고 증언했다. 그러자 이 대표는 KBS에서 "누군가 술 먹다가 (김 전 회장의) 전화를 바꿔줬을 수는 있다"고 말을 바꿨다. 대장동 수사 중 극단적 선택을 한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에 대해서도 "하위 직원이라 모른다"고 했으나 해외에서 김 전 처장과 함께 골프를 친 사진이 공개되면서 거짓말 논란이 일었다. 성남FC 후원금 의혹에 대해선 "무혐의로 처분된 사건을 다시 끄집어낸 사법 쿠데타"라고 했지만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린 적이 없다. 백현동 용지 용도변경 특혜 의혹과 관련해서도 경기지사 시절이던 2021년 국정감사에서 "국토부가 협박해 (할 수 없이) 했다"고 둘러댔다가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거짓말은 속일 의도를 가지고 자신이 믿는 진실에 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문제는 거짓말을 자주 할수록 불편한 감정을 유발하는 뇌신경 신호 수가 줄면서 죄책감 없이 더 쉽게 거짓말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라르스 스벤센 '거짓말의 철학'). 팬덤정치에 빠진 일부 지도자들이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고도 "뭐가 문제냐"며 되레 큰소리치는 이유다. 하지만 고난과 역경이 닥쳤다고 해서 진실을 덮거나 책임을 피한다면 지도자라 할 수 없다. 지도자에 대한 신뢰는 진정성과 도덕성에서 나온다. 거짓말은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신뢰와 법치를 허문다는 점에서 지도자가 경계해야 할 중대한 도덕적 흠결이다.

이 대표가 툭하면 말농간을 부리며 '약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 동정심을 자극하면서 윤석열 정부와의 대결 구도를 조장해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공천권 등 정파 이익까지 챙기려는 속셈 때문이다. 이 대표가 민주당을 방패막이로 삼은 것이나 "총구는 밖으로 향해야 한다"며 내부 결속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친명계와 '개딸' 지지 세력을 동원해 집단적 위력을 과시하거나 검사 좌표를 찍어 공개 선동하는 것은 다수당의 횡포다. 이 대표가 떳떳하다면 '자생당사(自生黨死)' 대신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고 양심과 진실로 오롯이 맞서야 한다. 그래야 국민도 이 대표의 진정성에 공감하고 그의 주장에 귀를 열게 될 것이다.

아무리 감정과 신념에 대한 호소가 객관적 사실보다 여론에 더 영향을 미치는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라고 해도 거짓은 결코 진실을 이길 수 없다. 몽테뉴는 "거짓말은 저주받을 악덕"이라고 했다. 지도자는 자신에 대한 진실을 국민에게 알릴 도덕적 의무가 있다. 이제라도 국회 제1당의 지도자다운, 이 대표의 당당한 모습을 보고 싶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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