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빛을 드러낸 … 오늘의 단색화를 만난다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3. 1. 25.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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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까지 학고재 '의금상경'展
최명영 장승택 등 15인 한자리
중국화가 왕쉬예까지 망라해
다채로운 재료로 색의 향연
장승택 '겹회화 150-23'.

한 색깔 그림이란 뜻의 '단색화(單色畵)'는 외국에서도 동일한 단어인 'Dansaekhwa'로 쓰인다. 서구 사조에 흡수되지 않은 우리만의 장르를 일구었지만, 단색화의 위상이 커질수록 이후의 한국 미술의 고민도 깊어졌다. 과거를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학고재에서 새해 첫 전시로 포스트 단색화 시대의 계보를 새롭게 쓰는 야심 찬 기획전을 연다. 2월 25일까지 열리는 '의금상경(衣錦尙絅)'전이다. '의금상경'은 '비단옷 위에 삼(麻)옷을 걸쳤다'라는 뜻으로 '중용'과 '시경'에 쓰인 고어다. 춘추시대 위(衛)나라 임금에게 시집가는 제(齊)나라 귀족 여성 장강(莊姜)의 덕성을 칭찬하며 위나라 백성들이 지은 말이다. 전시를 기획한 이진명 미술평론가는 "의금상경은 이후 청대까지 이어지고 조선에도 전해진 사상이다. 화려한 형식을 감추고 내면의 빛을 드러내는 것은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미의식에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단색화가 최명영, 이동엽 2인과 후기 단색화가 12인 및 중국 작가 1인 등 총 15인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다. 1940년대생 작가부터 1970년대생 작가까지 아우른다. 이 평론가는 "단색화의 정의부터 다시 생각했다. 서구의 미니멀리즘은 태도였고 일본의 모노하(物派)는 세계와 사물의 관계를 말한다면, 이에 대비되는 단색화는 우리의 고유한 정신성을 드러내는 작업이라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최명영 '평면조건 22-710'. 【사진 제공=학고재】

최고참인 최명영의 '평면조건 22-710'은 손가락으로 눌러그린 회화다. 지난한 정신적 수행의 과정이 드러난다. 나란히 걸린 이동엽의 '사이-여백 908'은 백색 화폭의 하단에 사라지는 것처럼 검은 그림자가 비친다. 검은 붓터치를 여러 겹으로 덧칠해 입체감이 느껴진다. '여백의 작가'답게 백색의 화폭에 더 몰입하게 만든다. 박영하는 부친 박두진 시인이 제시한 '내일의 너'를 주제로 작업했다. 내일의 나는 영원히 새롭다는 의미를 담아 나무, 그림자, 달빛 같은 자연을 담았다. 옛 토담을 연상시키는 질감도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김현식의 '비욘드 더 컬러' 연작은 본관에서 가장 화려한 색채의 향연을 보여준다. 에폭시를 칼로 그어 물감을 바르고 다시 에폭시를 붓는 작업을 통해 단색 회화에 시각적 깊이를 만드는 후기 단색화의 대표적 작가다. 무채색부터 적, 녹, 청색까지 10점의 연작은 색채의 변주도 보여준다. 해외 작가로 유일하게 초청된 중국 작가 왕쉬예는 이우환의 추천으로 이번 전시에 참여했다. 사물에 대한 무차별적 바라보기를 통해 새로운 회화론을 제시한다. 초점이 맞지 않는 렌즈로 본 풍경처럼 보인다. 천광엽의 '옴니 웨이브' 연작은 캔버스에 도포된 플라스틱 구슬이 리듬감을 발산하고, 장승택의 '겹회화' 연작은 수십 번 덧칠한 푸른색이 만드는 색의 스펙트럼으로 초월성의 은유를 표현했다. 신관에 걸린 이인현의 '회화의 지층'은 눈앞에 수평선을 불러온다. 붓을 사용하지 않고도 코발트 블루색을 염색한 캔버스를 통해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바다의 색을 만날 수 있다.

신관의 지하 2층에 걸려 전시를 마무리하는 김영헌은 혁필화 기법으로 전기 자기장을 표현한 회화를 보여준다. 우정우 학고재 실장은 "은은한 무채색으로 시작한 전시가 가장 화려한 색채감을 표현한 작품으로 마무리되도록 구성했다"라고 설명했다. 다채로운 작업들은 한지와 캔버스, 염색, 전통안료, 아크릴, 유화까지 다양한 재료가 사용되어 단색화의 지평을 넓힌다.

이 평론가는 "단색화 이후를 딱 잘라 후기 단색화 작가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그 영향을 받은 작가들이 수양이나 과정을 통해 우리만의 정신을 새로운 물질 재료로 구현하는 걸 보여주려 했다. 공통적으로 겸손과 겸허, 스며든 회화적 정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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