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뮤지컬 ‘베토벤’…풍부한 볼거리 ‘강점’, 단순한 이야기 ‘약점’

허진무 기자 2023. 1. 25.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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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토벤>에서 베토벤 역을 맡은 카이가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주요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1812년 7월 체코 프라하에서 ‘불멸의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 세 통을 썼다. 베토벤이 끝내 부치지 못한 이 편지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비밀 서랍에서 발견됐다. 베토벤이 사랑한 이 사람이 누구인지는 현재까지도 명백히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이다.

뮤지컬 <베토벤>은 ‘불멸의 연인’이 실제 인물인 안토니 브렌타노라는 설에서 출발한다. 베토벤은 클래식 음악사에 불멸의 업적을 남긴 ‘악성(樂聖)’이지만 타인에게 마음을 닫고 황폐한 삶을 산 인물로 묘사된다. 베토벤은 점점 귀가 멀어가는 절망 속에서 안토니를 만나 사랑과 행복을 알게 된다.

<베토벤>은 강점과 약점이 뚜렷한 작품이다. 극작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가 7년 동안 준비한 신작으로 지난 12일부터 한국에서 초연했다. 이 작품에 쓰인 52곡의 뮤지컬 넘버들은 교향곡 3번 ‘영웅’과 9번 ‘합창’,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과 14번 ‘월광’, 소곡 ‘엘리제를 위하여’ 등 모두 베토벤의 명곡들을 재편곡해 한국어 가사를 붙인 것이다.

주연 배우들의 노래 실력은 <베토벤>의 최대 강점이다. 기자가 관람한 24일 오후 2시30분 공연에서는 베토벤 역으로 카이가, 안토니 역으로 윤공주가 열연했다. 특히 1·2부 엔딩곡인 ‘너의 운명’ 무대에선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의 장대한 선율 속에서 카이의 비통한 곡조가 폭발했다. 무대 전체가 열리며 배경 화면에 벼락이 치는 연출은 관객을 압도했다. 고도의 가창력과 풍부한 성량이 필요한 장면이지만, 카이는 성악 베이스의 단단한 발성을 동력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카이는 지난 19일 프레스콜에서 “베토벤의 음악 그대로를 가만히 앉아 지켜보는 심정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며 “음악 자체로 완벽하기 때문에 ‘내가 연기하는 감정이 대사와 어우러져 전체 흐름이 끊기지 않게 하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윤공주가 부르는 ‘매직 문’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을 재편곡해 베토벤을 향한 안토니의 그리움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이어 귀에 익숙한 베토벤의 멜로디 위에 ‘잘 가, 절망이여’ ‘불꽃놀이’ ‘사랑은 잔인해’ 등 노래가 펼쳐졌다. 베토벤의 원곡에 기반했지만 일부 넘버는 원곡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선율이 많이 바뀌었다. 관객이 원곡에 얼마나 고집스러운 태도를 갖고 있는지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실베스터 르베이는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를 통해 “캐릭터에 관객이 더 감정이입할 수 있는 지점을 찾기 위해선 원곡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베토벤의 음악을 공부하고, 사용하고 싶은 곡을 선별했으며, 필요하면 멜로디를 작곡해 자연스럽게 연결되게 작업했다”고 말했다.

뮤지컬 <베토벤>의 한 장면.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거대한 스케일의 연출은 관객의 입이 벌어지게 만든다. 무대장치가 빠르게 움직이며 오스트리아 빈의 연회장부터 비르켄슈톡 궁전의 장미 정원까지 대규모 공간을 순식간에 재현하고 해체한다. 체코 프라하의 실제 명소인 카를교가 천장에서 내려와 설치되기도 한다. 베토벤의 고통스러운 내면은 악곡 요소를 의인화한 혼령 역할 배우 여섯 명의 리드미컬한 안무로 표현했다. 커튼콜 때 베토벤이 무대 아래로 내려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마지막 모습은 팬을 만족시킬 만하다.

단선적인 플롯과 일차원적 캐릭터는 <베토벤>의 약점이다. 노래와 음악에 상대적으로 무게를 실었다고 감안해도 관객을 감정적으로 설득하기 부족해 보인다. 베토벤은 안토니와 감정을 쌓아올리는 과정 없이 갑자기 사랑에 빠지고, 안토니는 누구나 예상 가능한 역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이별을 통보한다. 베토벤의 동생인 카스파와 그의 부인 요한나의 사랑은 반전을 위한 복선을 의심케 하지만 ‘반전이 없는 것이 반전’이었다. 특히 요한나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다 2부에선 실종돼 왜 배역을 선정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베토벤 역에 박효신·박은태·카이가 출연한다. 세 주연배우 각각의 매력에 대해 김문정 음악감독은 “박효신은 호소력 짙은 목소리를 가져 절절함을 표현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박은태는 섬세한 감정 연기와 미성, 카이는 가장 클래식한 목소리를 가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토니 역에 조정은·옥주현·윤공주, 베토벤의 동생 카스파 역에 이해준·윤소호·김진욱, 안토니의 남편 프란츠 역에 박시원·김성민이 출연한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3월26일까지 공연한다. 최고가인 R석은 17만원, 이어 S석 14만원, A석 11만원, B석은 8만원이다.

뮤지컬 <베토벤>의 한 장면.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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