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경제 열렸지만 웃지 못하는 KAI…수주전서 줄줄이 낙마

이종현 기자 2023. 1. 2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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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S 항법위성 구조체 수주전서 대한항공이 KAI 눌러
누리호 고도화사업 기술이전도 한화가 가져가
경쟁 치열해지며 위상 낮아져… 과기부와 ‘소통 문제’ 원인 지적도

한국형 위성항법시스템(KPS)에 쓰일 인공위성 구조체 제작 사업에서 대한항공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눌렀다. 지난해 한국형발사체(누리호) 고도화사업 주관사 선정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밀린 것을 포함해 주요 우주산업 수주전에서 KAI가 벌써 2패를 기록한 셈이다.

윤석열 정부가 우주경제를 띄우며 우주업계가 들썩이고 있지만, 정작 몇 년 전까지 민간 우주산업의 주역이던 KAI는 이런 분위기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강구영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이 지난 11일 경남 사천 본사에서 열린 '글로벌 KAI 2050' 비전 선포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KAI

KPS는 위성항법시스템인 GPS를 국산화하는 사업이다. GPS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인프라지만 한국은 자체 GPS 없이 미국의 상용 GPS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상용 GPS는 오차가 10m에 달하고 도심과 산악 지형이 많은 한국 지형에선 신호품질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정부는 2035년까지 총 3조7234억원을 투입해 오차율을 5㎝ 수준으로 낮추는 KPS 개발에 나섰다.

KPS 구축을 위해선 고도 3만6000㎞ 정지궤도에 항법위성 8기를 쏘아올려야 한다. 이번에 대한항공과 KAI가 맞붙은 건 이중 1호기의 구조체를 제작하는 사업이었다.

뚜껑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KAI가 유리하다는 전망이 많았다. 대한항공은 위성 구조체 제작 사업에서 손을 뗀 지 10년이 지났다. 우주경제가 다시 부상하면서 관련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우주 분야에 투자를 꾸준히 이어온 KAI가 무난하게 수주하리라는 게 우주업계의 전망이었다.

하지만 막상 결과는 정반대였다. KPS 사업을 주관하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따르면 기술평가에서 오히려 대한항공이 앞서면서 대한항공이 수주에 성공했다. KAI는 평가 결과에 문제가 있다며 이의제기를 했지만, 항우연은 아무 문제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KAI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구조체 사업을 하지 않은 지 10년이 넘었는데 그런 업체가 우리보다 기술적으로 앞섰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항우연 관계자는 “위성 구조체는 기술 9, 가격 1의 비율로 기술에 대한 평가가 중요한데, 이 부분에서 두 회사의 차이가 컸다”고 설명했다. 대한항공도 과거 위성개발에 참여한 인력과 시설을 보유하고 있고, 보잉이나 에어버스와 꾸준히 공동 개발을 진행하며 복합재 설계와 제작 관련 기술을 고도화했다고 밝혔다.

KAI는 작년에도 누리호 고도화사업 발사체 총괄 주관 제작 사업에서 고배를 마신 적이 있다. 당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경쟁했지만 결국 탈락했다. 누리호 고도화사업은 2027년까지 누리호 3기를 제작하고 4회 반복 발사를 수행하며 발사체 설계와 제작, 조립, 발사운용 등 발사체 관련 기술 전반을 이전받는 사업이다. 항우연이 보유한 발사체 관련 기술을 고스란히 습득할 수 있는 사업으로 주목받았다. 사실상 한국판 스페이스X가 누가 될 지를 결정하는 사업이었다.

여전히 KAI가 국내 우주산업 곳곳에 참여하고 있지만, 원톱으로 불리던 몇 년 전에 비해 위상이 많이 떨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주업계에선 KAI가 항공 분야에 집중하면서 우주 관련 사업에 소홀한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8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JW메리어트 호텔 서울에서 열린 미래 우주 경제 로드맵 선포식에서 대한민국이 우주경제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2045년까지의 정책방향을 담은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우주업계 관계자는 “KPS 위성 구조체 사업 수주 결과는 KAI의 사업 역량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KAI는 10년 넘게 손을 떼고 있던 대한항공이 사업을 수주한 게 말이 안 된다고 하지만, 업계 입장에선 10년 넘게 손을 떼고 있던 대한항공에 KAI가 기술력에서 밀릴 정도로 허술하게 사업을 준비했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위성업체 관계자는 “최근에는 소형 위성이 트렌드가 됐는데 KAI는 대형 위성에 집중하면서 이런 트렌드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KAI가 우주산업을 총괄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밉보인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에서 KAI 사장을 지낸 안현호씨는 산업통상자원부 출신, 이번 정부에서 KAI 사장에 임명된 강구영 사장은 공군 출신이다. 다른 부처 출신 수장이 KAI를 맡으면서 과기정통부와는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 과기계 관계자는 “위성 규격 등을 비롯해 과기정통부나 항우연에서 KAI에 보완이나 수정 요구를 할 때 KAI가 다른 핑계를 대며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많다”며 “성의의 문제”라고 말했다.

우주경제가 본격화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설명도 있다. 우주경제가 본격화되지 않았던 과거에는 민간 기업의 참여가 없었기 때문에 KAI가 총대를 맸지만, 지금은 한화를 비롯해 LIG, 대한항공 등 대기업까지 우주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연스럽게 KAI의 역할도 줄어든 것이라는 설명이다.

민간 기업들도 KAI를 바싹 추격하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우주사업 부문에 대한 투자 확대를 계속해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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