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지하철 이용자는 전장연 시위 지지하기 어렵다" 사실일까?

배여운 기자 입력 2023. 1. 25. 14:03 수정 2023. 1. 26.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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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X언더스코어] ① 정치적 신념과 실제 경험, 어느 쪽이 더 영향력 있나


2001년 1월 22일 서울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휠체어를 탑승한 노부부가 장애인용 리프트에서 추락해 사망했습니다. 지난 22일은 사망 22주기였습니다. 22년이 흘렀지만 '장애인 이동권 보장' 문제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하철 탑승 시위를 이어가고 있고 서울시는 전장연 시위에 시민 56%가 반대한다는 여론조사를 내세우며 강경 대응 의지를 천명합니다. 시민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이제까지 알려진 '여론'은 제대로 된 것일까요?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과 지식콘텐츠 스타트업 언더스코어가 함께 전장연 시위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여론을 진단해 봤습니다.(글: 강태영 언더스코어 대표)

전장연의 이동권 보장 시위와 관련해 그동안 많은 기사가 나왔습니다. 대부분 개별적인 사건·사고 사례들, 정치권 공방, 주최 측인 전장연의 요구 및 관련한 협상 등을 보도하는 데에 주력해 왔습니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장연 시위 여론을 심도 있게 분석하는 건 많지 않았죠.

언더스코어는 전문 조사업체인 데이터스프링코리아에 의뢰해 만 18세 이상 70세 미만의 전국 1,500명 시민들을 대상으로 지난 5월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여러 문항들을 통해 연령, 성별, 거주지, 소득 수준과 같은 기초적인 정보들은 물론 "우리 사회는 장애인 지원 정책 및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 "장애인 단체의 출근길 지하철 시위는 정당한 권리 행사보다는 사회적 민폐에 가까웠다" 등의 질문들을 바탕으로 전장연 시위에 관한 의견을 측정해 봤습니다.
 

서울 안 살고 지하철 안 타는 시민들, 더 우호적이었을까?

이번 시위와 관련해 온라인에서 접하는 대표적인 의견 중 하나는 "평소에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만 지지하지, 지하철 타고 다니는 수도권 사람들이라면 솔직히 이번 시위 지지하기 어렵다"입니다.

과연 사실일까요? 저희는 설문 문항에 평소 이용하는 교통수단을 묻는 문항을 포함시켰습니다. 설문 응답자들이 전장연 시위 문항을 의식해 답변을 왜곡하지 않게끔, 시위 지지도를 측정하는 문항은 설문의 앞부분에, 교통수단을 답하는 문항은 뒷부분에, 최대한 먼 거리를 두고 배치했죠.


우선 주요 교통수단이 지하철이라고 답한 사람들은 여타 유형의 응답자들에 대비해 전장연 시위 지지도가 5점 만점에 0.21점 더 낮게 나타났습니다. 지하철 이용 여부는 시위 지지도와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였습니다.(p<.01) 여기까지만 보면 꽤 직관적인 결과이고, 우리의 통념이 사실인 것도 같습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과연 '실제 불편함'을 겪고 있는 수도권의 지하철 이용객들이 부정적인 응답을 한 것일까요, 아니면 전장연 시위를 직접 경험하지 않는 비수도권의 지하철 이용객들 역시 '심리적인 공감'을 이유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일까요?

이를 알아보기 위해 저희는 데이터를 지역별로 나누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분석 결과, 서울시민들에게는 평소 지하철 이용 여부가 시위 여론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고(p-value 0.452), 경기도민들과 비수도권 응답자들에게만 약한 수준의 영향이 나타났습니다.(p<.1)


경기도민은 서울까지 긴 통근·통학 시간을 겪는 경우가 많기에 그 피해가 응답에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직접 시위에 영향을 받는 서울시민에게는 정작 그러한 경향이 전혀 없었다는 점, 또 반대로 시위 영향권에 전혀 포함되지 않는 비수도권 시민들에게 오히려 약하게나마 상관관계가 관찰된 점을 고려하면, 분명 직접적인 불편함 이외의 심리적인 무언가가 전장연 시위 여론에 영향을 주었을 것도 같습니다.

즉, 우리의 통념은 절반만 사실이었던 것이죠.
 

실제 경험보다는 '정치적 신념'

데이터를 분석하며 발견한 흥미로운 심리적 요소는 바로 '정치적 신념'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떤 사건을 경험함으로써 정치적 신념이 형성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1980년대 대학생들이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을 알게 된 후 진보적인 성향을 갖게 될 수도 있고, 2002년 6월 연평해전,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을 겪으며 90년대생들이 보수적인 안보관을 형성할 수도 있습니다. 모두 충분히 개연성 있는 상황들이죠. 그러나 반대로 특정 경험이 오히려 본인의 기존 정치 성향을 강화하게 되는 상황 역시 충분히 가능합니다.

다음 막대그래프는 제20대 대선에서 투표한 후보와 평소 지하철 이용 여부, 그리고 전장연 시위 지지도 간의 관계를 시각화한 겁니다.


각 후보 지지자마다 지하철 이용 여부에 따라 서로 다른 패턴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재명 후보에 투표한 응답자들은 평소 지하철 이용 여부와 전장연 시위에 대한 의견이 무관했지만, 윤석열 후보에 투표한 응답자들은 평소 지하철을 이용할수록 시위에 대한 비판 여론이 더 심했습니다. (p<.0 5)


이런 경향은 위 그래프처럼 본인의 정치 성향을 '매우 진보(1점)'부터 '매우 보수(5점)' 사이에서 응답하게 했을 때에도 일관되게 나타났습니다. (p<.01) 스스로가 매우 진보적이라고 응답한 사람들은 지하철을 이용할수록 시위에 우호적이었지만, 그래프의 오른쪽 막대들로 이동할수록, 즉 정치 성향이 보수적일수록 지하철 이용 경험이 시위 여론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죠.

즉, 사람들은 이미 지니고 있는 각자의 정치 성향에 따라 이미 장애인 이동권이나 시위에 관한 의견을 사전에 정립해 둔 후, 지하철을 대상으로 하는 전장연 시위를 사후에 접하게 되면서 기존 신념을 각자의 방식으로 강화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소득, 학력, 직업... 영향 없음, 통계적 유의미는 오직 '성별'

지금까지 심리적인 요소들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좀 더 직관적인 인구 통계적 요소들을 살펴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연령, 성별, 소득, 학력, 직업, 결혼 여부 중 전장연 시위 지지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관계가 있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놀랍게도 연령과 성별 간의 교차효과(interaction effect)를 제외하면, 그 어떤 요인들도 전장연에 관한 의견에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고등학교까지만 교육을 받았든, 서울 4년제 대학교를 졸업했든, 월평균 소득이 높든 낮든,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전장연의 시위에 우호적인지, 아니면 비판적인지와는 전혀 관련이 없었죠.


연령과 성별 간의 교차 효과가 의미하는 바는 위의 그래프에서 직접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고연령층에서는 성별에 따른 의견 차이가 없었으나,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남녀 간의 여론에 급격한 차이가 나타났죠. 20대와 30대의 청년들의 경우, 남성들 중 51.7%가 이번 시위를 정당한 권리 행사가 아닌 사회적 민폐라고 평가했지만 여성들은 그보다 훨씬 적은 38.1%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또, 위 그래프에서 확인할 수 있듯, 전장연 시위가 아니라 더 광범위한 장애인 지원 정책과 예산을 소재로 질문했을 때에도 동일한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참고로 지난해 6월에 서울신문·공공의창·우리리서치가 진행한 유사한 설문조사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가 나타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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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여운 기자woons@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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