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위대한 알코올중독자’<77>] 플리바기닝

데스크 입력 2023. 1. 25.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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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주> 우리나라는 음주공화국이라 할 만큼 음주에 관대한 사회입니다. 반면, 술로 인한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주취자의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알코올중독자가 양산됩니다.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가 풍비박산나기도 합니다. 술 때문에 고통 받는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의 치유를 위해 국가의 음주·금주정책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항상 경계해야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들려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77화 플리바기닝


“괴벨스라고 아시죠? 나치 선전부장관. 그 사람이 말하기를, 자신에게 한 문장만 주면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고 했어요. 물론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괴벨스 말처럼 돌아가겠어요? 하지만 여전히 그 말의 본질은 살아있어요. 세상 모든 범죄자가 평등하게 단죄 되지도 않고, 또한 구치소에 있는 사람들이 다들 죄가 중하다고 볼 수도 없지요. 심지어 죄 짓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죄가 없는 사람을 구속하고 기소하고 단죄를 해도 결국 검사인 내가 손해 볼 것은 없다는 거예요. 손해란 건 고스란히 김석규 씨의 몫이에요. 그러니까 여기서 혐의를 일부 인정하고 조금 덜 고생하느냐 무조건 부인하다가 왕창 뒤집어쓰느냐는 김석규 씨의 판단에 달려있습니다.”


강동욱이 장황하게 설명했다. 사실 인혁당 사건이나 간첩사건처럼 먼저 국가에 의해 고통 받고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아도 국가는 돈 몇 푼 쥐어주는 걸로 끝나고 검사나 판사나 수사관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김석규는 몇 해 전 보았던 영화 변호인을 떠올렸다. 영화의 실제 모델인 부림사건의 피해자들은 고문으로 허위진술을 하고 투옥되어 청춘을 날려버렸지만 그들을 고문하고 투옥시켰던 경찰과 검사, 판사는 출세가도를 달렸고 이후 아무런 법의 심판을 받지 않았다. 김석규가 훗날 무죄를 받게 된다 해도 강동욱 역시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을 것이었다.


“어떡하시겠어요. 모조리 기소해 드릴까요? 아마 빠져나오기 힘들 겁니다.”


강동욱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김석규를 종용했다. 김석규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며 일단 검찰청사를 나와 구치소로 향했다. 그리고 이튿날 접견실에서 변호사를 만나고 면회실에서 이철백을 연이어 만났다. 변호사는 김석규에게 조언하기를 일단 검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혐의를 하나라도 줄이는 게 낫다고 했다. 정국 자체가 비정상적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정상적인 판단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물론 혐의를 시인하면 후일을 도모하기가 어렵다는 것도 있지만 혐의를 부인하면 왕창 뒤집어쓰는 것을 우선 감수해야 했다.


박미옥과 함께 면회 온 이철백 역시 변호사의 의견과 대체로 비슷하게 말했다. 나중을 도모하기 위해 끝까지 버티기에는 현재의 고통이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김석규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현재의 고통을 빨리 벗어나느냐, 힘겹지만 후일을 위해 결백을 지켜나가느냐의 기로에서 김석규는 힘겨워했다. 이제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은 자신밖에 없었다. 모두 떠나가고 남은 빈자리에 김석규는 홀로앉아 있었다.


강동욱은 구치소에 있는 김석규의 근황을 전해 듣고는 쾌재를 불렀다. 면회와 접견에서 김석규는 플리바기닝을 권유받고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고 했다. 강동욱은 이제 김석규의 기를 완전히 꺾었다고 생각하고 부장검사실로 올라갔다.


“국보법 위반은 이제 인정할 것 같습니다.”


강동욱의 보고에 배석인이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제대로 혼쭐을 내서 두 번 다시 금주운동은 못하게 만들었으면 합니다.”


“음.”


“김석규가 국보법 위반을 인정하면 내란선동과 간첩 혐의는 저절로 적용되고 법원에서도 인용해 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리라 보나?”


배석인이 안경테를 만지작거리며 강동욱을 응시했다. 강동욱은 무슨 뜻인지 얼른 이해되지 않아 내심 움찔했다.


“아니 강 검사가 보기에 김석규의 혐의가 제대로 된 것 같냐고.”


배석인은 아까와는 생판 다른 얼굴로 강동욱을 바라보았다. 강동욱은 어떻게 답변을 해야 할지 몰라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닫고 있었다. 배석인이 손가락으로 건너편 소파를 가리켰다. 강동욱은 자리에 앉아 배석인이 권하는 담배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이제까지 수고했어. 김석규를 국보법, 내란선동, 간첩죄 등으로 엮어 넣을 수도 있어. 하지만 잘 생각해 보라고. 우격다짐으로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뒷감당을 어떻게 할 거냐 말이야. 김석규 하나 집어넣는 게 문제 아니라 사법처리가 잘못됐다고 야당에서 기회만 있으면 물고 늘어질 거란 말이야.”


“그렇다고 사법처리를 안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어떤 문제?”


“혐의 입증에 자신을 보인 것이 모조리 언론 플레이 아니냐. 무리하게 구속한 거 아니냐. 이런 말들 말입니다.”


“그럼 강 검사 생각은 어때?”


“저는 국보법 위반 하나 정도는 기소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래야 우리도 나중에 할 말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국보법은 잘 적용됐다고 보나?”


“피의자 진술을 받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좋아. 그럼 하나 물어보지. 금주운동, 아니 금주투쟁이 국보법까지 들이댈 사안인가?”


강동욱이 머뭇거리자 배석인이 질문을 바꿨다.


“아니, 김석규를 잡아들인 게 왜지? 국보법을 위반해서 잡아들였나?”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긴급 체포했죠. 그리고 국보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서 구속시켰고요.”


“잘 들어. 김석규를 잡아들인 건 바로 금주투쟁을 저지하기 위해서였어. 목적은 그거야. 지금 금주투쟁은 완전히 물 건너갔지? 그럼 목적 달성된 거 아냐. 그런데 국보법을 무리하게 적용시킬 필요가 있을까.”


“법원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한 건 국보법 위반을 인정해 준 거 아닙니까?”


“법원이 재판에서까지 우리 손을 들어줄까? 만약 들어준다고 해도 두고두고 원망은 우리가 듣게 돼.”


“그럼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강동욱이 공손하게 조언을 요청했다.


“매장시켜.”


“예?”


“두 번 다시 금주운동은 물론 사회활동 자체를 못하게 매장시켜 버리라고.”


배석인이 손가락을 까닥거려 강동욱을 부르더니 한참동안 귓속말로 뭔가를 지시했다.


“자네가 내 대학 후배라서 이렇게 상세하게 길을 열어주는 거야.”


“감사합니다, 선배님. 충심을 다하겠습니다.”


강동욱이 허리를 90도로 접어 깍듯하게 맹세하자 배석인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박태갑 소설가greato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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