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독 주력전차, 우크라전 투입 임박…게임 체인저 되나
독일이 주력 전차인 레오파르트2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또 제3국이 이 탱크를 우크라이나에 넘기는 것도 승인하기로 했다. 그동안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제공을 머뭇거려왔던 가장 강력한 지상전 무기인 탱크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경우, 현재 교착상태인 전황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25일(현지시각) 성명을 내어 레오파르트2 전차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고, 제3국의 수출 계획도 승인하기로 했다며 “이 결정은 최선을 다해 우크라이나를 돕겠다는, 잘 알려진 우리의 방침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 목표는 다른 국가들과 함께 우크라이나를 위해 2개 대대 규모의 탱크 부대를 만드는 것이고, 이를 위한 첫걸음으로 1개 중대 규모인 레오파르트2 A6 14대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숄츠 총리는 또 우크라이나 병사들에 대한 훈련을 곧 시작하겠다는 방침도 공개했다. 미국 <에이비시>(ABC) 방송은 전날 우크라이나 당국자의 말을 따, 독일이 승인하면 이 탱크를 보유하고 있는 12개국이 우크라이나에 총 100여대를 주겠다고 합의했다고 전한 바 있다. 유럽에는 레오파르트 탱크 2천여대가 있는데, 보유국이 이를 제3국으로 보내려면 제조국 독일의 승인이 필요하다.
미국도 구체적인 움직임에 나섰다. <뉴욕 타임스>는 24일 미국 행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에이브럼스 30~50대를 제공하기로 했고, 이르면 25일 백악관이 이를 발표한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가 시급히 요청해온 무기 가운데 가장 공격적인 무기인 탱크를 제공한다는 것은, 러시아군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는 미국의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나아가 레오파르트2 제공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온 독일을 끌어당기려는 목적도 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 20일 독일 람슈타인 미군 기지에서 연 ‘우크라이나 방위 연락 그룹’ 회의에서 탱크 제공이 합의되지 않은 것은 러시아와 극한 충돌을 피하려는 독일이 ‘미국이 먼저 나서면 쫓아가겠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에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에이브럼스 탱크 제공을 결심해 독일의 이날 결단을 끌어냈다는 것이다.
애초 미국과 유럽은 우크라이나에 탱크나 전투기 등 강력한 무기를 제공하면, 러시아를 너무 자극할 수 있다고 우려해왔다. 특히 냉전 시절 빌리 브란트(재임기간 1969~1974년) 전 독일 총리 시절까지 거슬러 오를 수 있는, ‘동방정책’의 유산이 깊은 독일은 러시아와 관계를 최악으로 몰고 가지 않으려는 의지가 강하고,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으로서 국외 전쟁에 깊이 개입하는 것을 꺼리는 편이었다. 타국의 주력 전차라는 정교한 무기의 운용법을 우크라이나군이 짧은 시간에 배우기 쉽지 않아 실제 전쟁터에서 유용하게 써먹으려면 몇년이 걸릴 수 있다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방에서 격전이 이어지고, 연정 내부에서도 지원 요구가 이어지자 결국 숄츠 총리가 결단한 것으로 보인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25일 레오파르트2가 3개월 정도면 작전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역시 소련제 구형 탱크 T-72로는 화력과 병력이 우세한 러시아군에 뺏긴 영토를 되찾기 어렵다며 미·독의 주력 전차 제공을 요구해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달 21일에도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미국 탱크와 군용기들을 완벽하게 작동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며 지원을 호소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24일 독일 베를린에서 피스토리우스 장관을 만나 탱크 지원은 “러시아의 새로운 공세 격퇴는 물론 우크라이나가 빼앗긴 영토 재탈환, 독립된 주권국가의 승리를 위해 중요하다”고 말했다.
탱크는 평원 지대인 우크라이나 동부의 전황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무기로 지목돼왔다. 에이브럼스는 미국 육군과 해병대의 주력 탱크로 화력, 장갑 성능, 기동력 등 전반적 성능이 뛰어나다. 걸프전과 이라크전에서 실전 능력을 과시한 바 있다. 레오파르트2 탱크도 공격력과 방어력이 모두 뛰어나, 독일과 여러 유럽 국가들의 주력 전차로 쓰이고 있다.
미국이 에이브럼스 탱크까지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면 ‘탄약→중화기→곡사포→고속기동 포병 로켓시스템(HIMARS)→장갑차’로 이어진 미국의 지상전 무기 지원이 정점을 찍게 된다. 이제 남은 것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육군 전술지대지미사일(ATACMS·사거리 300㎞) 정도다.
레오파르트2 탱크 지원 움직임에 대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24일 대국민 연설에서 “많은 노력, 언어, 약속들이 있었다”며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5개, 10개, 15개 탱크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탱크가 필요하다”고 했다.
러시아는 반발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은 24일 독일의 레오파르트2 제공 소식에 “향후 양국 관계에 피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 대사도 “러시아에 전략적 패배를 가하려는 의도적 움직임이 분명하다”며 “미국 전차도 나토의 다른 무기와 같은 방식으로 파괴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베를린/ 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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