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완 “여의도·목동 이어 강남·용산까지 부동산 규제 푸는 건 성급”

김기훈 경제전문기자 2023. 1. 25.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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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훈의 경제TalkTalk]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 ①/②
정부가 대대적인 부동산 규제완화 대책을 내놓으면서 서울 강남의 토지거래허가 지역도 규제 대상에서 풀릴지 관심거리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에서 바라본 압구정동 아파트 단지./뉴스1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어 거래가 거의 끊기면서 추경호 경제팀이 대대적인 부동산 규제완화책을 발표했다. 그 이후 서울 강남의 일부 지역에서는 아파트 매매 호가가 다시 소폭 반등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3년 전 제로 금리의 여파로 부동산 시장에 잔뜩 낀 거품이 아직 다 빠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쏟아낸 초대형 규제완화책은 시의적절한 것인가? 아니면 성급한 것인가?

정부의 정책에 대해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전문가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찬반이 갈린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정치 성향보다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이 문제를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더니, 여러 사람이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을 추천했다. 그는 수많은 신문과 방송에 부동산 전문가로 등장하는 유명인이다.

지난 1월 10일 오후 3시 40분 서울 강남구 선릉로 90길 10 샹제리제센터 B동 316호에 있는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연구실에서 고 원장과 마주 앉았다. 연구실은 지하철 2호선 선릉역 근처 빌딩 숲 속에 위치해 있었다. 창 밖을 내다보니 옆 빌딩의 회색 빛 건물 벽과 성냥갑 같은 창문들만 보이고 하늘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양한 부동산 관련 책들과 학위 수여식 사진이 놓여 있는 연구실 테이블에 앉아, 한 방송사의 전화인터뷰를 끝낸 고 원장과 대화를 시작했다.

—부동산과 인연을 맺은 지 얼마나 됐나?

“1981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군 제대 후 1983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해 삼성물산, 삼성생명, 에스원 등에서 일했다. 이후 회사를 옮겨 LG정보통신, 한국통신(KT)에서 1998년까지 10여년간 근무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진 직후에 한국통신 인사부장이었는데, 구조조정 일을 담당하게 됐다. 그런데 구조조정을 끝낸 뒤 명퇴금을 받고 새로운 독립을 결정했다.”

임창열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앞줄 왼쪽)과 미셸 캉드쉬 IMF 총재(오른쪽)가 1997년12월 3일 오후 정부 세종로청사에서 내외신 보도진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국제통화기금(IMF) 긴급자금지원 최종 협상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조선일보DB

—그 후에 어떻게 됐나?

“새로운 일을 찾던 중 우연히 신문에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 신입생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그래서 1999년 입학해 석사 과정을 마치게 됐다. 대학원 입학부터 따지면 부동산과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은지 벌써 23년이나 된다.

이후 EBS·고려대·건국대에서 공인중개사와 경매 강의를 하다가 RE멤버스라는 부동산 투자자문 회사를 만들어서 운영했다. 2013년에 개인들의 자산관리 중요성을 깨닫고, 개인의 자산관리, 은퇴 후 주택과 경제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국자산관리연구원을 만들었다. 한국 최초의 자산관리연구원이었다.”

부동산 연구·강의 23년

—지금 하고 있는 일은?

“크게 3가지이다. 먼저 부동산 관련 연구, 강의, 자문을 하고 있다. 씨티은행 PB(프라이빗뱅킹) 고객과 기업인을 대상으로 부동산 상담과 자문 역할을 해주고, 대학원에서 부동산경제학, 경영론, 자산관리론, 정책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현재 일간지 3곳에 부동산 칼럼도 쓰고, 방송에도 출연한다.

둘째, 프로테크(첨단기술을 활용한 부동산 투자) 웹과 앱을 개발했고, 현재도 개발중이다. 개별 아파트 가격이 오를지 내릴지 미래 가격을 예측해주는 앱 ‘살집팔집’을 10년 개발 작업 끝에 2021년에 냈다. 빌딩과 상가의 적정시세를 예측해 주는 앱 ‘리얼티 고’는 올해 출시 예정이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과학적 알고리즘을 사용해 투자가치를 분석하고 미래가격 변화를 예측하는 모델이다.”

고 원장이 이 대목에서 ‘살집팔집’의 활용 사례를 보여주겠다며 잠시 다른 곳으로 가더니 A4 용지 20장 정도 되는 프린트 출력물을 들고 금방 돌아왔다. 한 아파트 이름을 키워드로 넣어 뽑았는데, 투자가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각종 통계와 그래픽이 잔뜩 들어 있었다. 맨 앞 장의 종합표에는 투자가치, 미래가치, 주거가치 지수가 미슐랭처럼 각각 별 개수로 표시되어 있었다.

개별 아파트 가격이 오를지 내릴지 미래가치를 예측해 알려주는 '살집팔집' 홈페이지.

—세번째 하는 일은?

“부동산 관련 캠페인을 많이 한다. 얼마 전에 29~39세로 구성된 청춘포럼과 MOU(양해각서)를 맺었다. ‘집 한 채로 노후준비 하기’ 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나는 사람들이 공적 연금 3세트, 즉 국민연금, 주택연금, 농지연금으로 은퇴 후에도 월 300만원 이상씩 생활비를 벌 수 있는 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월삼중사', 즉 월 300만원 받는 중간 사람이 되자는 것이 목표이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려면 주택 소유는 필수이고, 농지 투자도 실행해야 한다.”

침체 초기 국면

고 원장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충분히 들었다. 인터뷰의 주제인 부동산 시장 동향으로 화제를 돌렸다.

—현재 부동산 시장의 특징을 들면?

“부동산 시장을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먼저 주거용, 빌딩과 상가 등 상업용, 아파트형 공장 등 산업용, 골프장과 납골당 등 특수부동산, 토지 시장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지금 주거용 시장은 얼어붙었으며, 거래 중단에다 가격도 급락하고 있다. 상업용 시장은 광화문, 용산, 강남권을 빼고는 하향 추세이다. 토지는 보합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역별로는 서울, 수도권, 지방으로 분류할 수 있다. 세 지역 모두 침체 초기 국면을 겪고 있다. 예전에는 가격 상승세가 지방-수도권-서울 순으로 확산되었는데, 이번에는 전국이 모두 동반 하락하면서 부동산 경기가 순식간에 침몰하는 모양새다. 예사롭지가 않다.”

전문가들은 현재 부동산 경기를 침체 초기 국면이라고 평가한다. 지난 1월 12일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 모습./연합뉴스

—다른 분류가 있다면?

“주거용 시장은 매매 시장과 전세 시장, 월세 시장으로 구분된다. 매매와 전월세 모두 동반급락하고 있다. 작년 3월에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한 이후 다음달부터 우리나라 주거용 시장이 전국적으로 급락하며 경착륙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부동산 침체가 2년 이상 지속되면 경기 불황으로, 3~4년 지속되면 장기폭락, 복합위기 내지 경착륙이 올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시장이 경착륙 하면?

—부동산 시장 경착륙이 일어난 사례를 들면?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이다. 이 때는 정부가 전방위적인 부동산 규제완화 대책을 내놓았다. 특히 미분양 아파트를 사면 양도소득세를 감면해주는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을 썼다.”

—좀 더 자세히 말해달라.

“작년부터 하락하기 시작한 부동산 가격이 올해 말까지 이어지면 내년에는 경기 불황이 찾아올 수도 있다. 2024년까지 계속 하락하면 부동산 위기가 금융으로 번지는 복합불황 위기가 올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2025년 이후 장기복합불황에 빠지게 되는데, 이 때에는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이 폭락하는 등 부동산 가격은 고점 대비 30~50% 가량 빠질 수도 있다.”

현재의 부동산 시장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경착륙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파산한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 건물 앞에서 미국인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조선일보DB

—서울 강남과 같은 인기 지역도 그렇게 되나?

“복합불황에 들어가면 서울 강남도 예외가 없다. 예를 들어 서울 잠실의 엘스 아파트 84㎡의 가격이 최고가 약 27억원에서 최근 약 19억원까지 빠졌다. 26%나 하락했다. 만약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복합불황 상태에 빠지면 가격이 지금보다 10~20% 정도 더 빠질 수 있다. 외환위기 때처럼 여러가지 경제위기가 동시에 발생하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온다면 그렇게 된다는 뜻이다.”

강남 집값도 추가하락 가능성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는 어땠나?

“서울 잠실 주공아파트 76㎡의 가격이 2007년 고점일 때 13억원이었다. 이 가격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하락해 2013년에 8억원까지 떨어졌다.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31평형도 같은 기간 12억원에서 6억3000만원까지 빠졌다.

장기복합불황이 오면 철옹성으로 여겨지는 강남 집값도 고점 대비 반토막이 날 수 있다. 추측컨대 강남 집값은 2021년 10월쯤이 고점으로 짐작된다. 강남의 주요 단지는 20~30% 정도 가격이 빠졌는데, 아직 추가하락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본다.”

서울 잠실의 아파트 가격은 지난해 매우 큰 낙폭을 보였다. 작년 11월 2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 엘스(왼쪽)와 잠실 리센츠 아파트./김송이 기자

—서울 강남 외에 다른 지역은 상황이 어떤가?

“마포를 비롯, 노도강(서울 노원구·도봉구·강북구)에서도 현재 고점 대비 30~40% 정도 빠진 곳이 수두룩하다. 198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초까지 출생한 MZ세대들이 2021년에 빚내서 산 대표적인 패닉바잉(공포매수) 지역인데, 단기간에 급등한 만큼 단기 급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기도 안양·인덕원·과천 등 GTX(광역철도망) 개통 호재로 가격이 오른 곳도 급락위험이 크다. 호황기에 개발 호재로 급등한 지역이 거품이 빠지면서 하락을 주도하고 있는 분위기다.”

금리와 경기침체가 원인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나?

“가장 큰 요인은 금리이고, 두번째는 경기침체 우려이다. 미국이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잡기 위해 금리를 급격히 끌어 올리면서 전세계 금리가 도미노처럼 일제히 오르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문제는 금리가 오르니까 패닉 바잉을 했던 사람들이 패닉 셀(공포매도)로 돌아서는 바람에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전세를 끼고 샀던 사람들이 집값 하락으로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깡통전세, 역전세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 인상을 주도하고 있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지난 9월 23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연준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로이터 연합뉴스

—MZ세대의 주택 빚 문제는 어느 정도 심각한가?

“MZ 세대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이 일부 지역에서는 60%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자기 소득의 60%를 빚의 원리금 상환에 쓰고 있다는 뜻이다. 금리 상승으로 원리금 상환액이 불어난 탓이다.

빚 상환 원리금은 집값의 50% 이내, 자기소득의 35%가 적정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주택담보대출 뿐 아니라 개인 신용대출과 부모님 대출까지 끌어들여 집을 사다 보니 가처분소득이 줄어 생활고를 겪고 있다.”

고 원장이 말을 이어갔다.

“예를 들면 연봉 1억원인 사람의 경우 DSR이 60%라면 연간 6000만원을 빚갚는데 써야한다. 이렇게 되면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안된다.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 더 나아가 내수 경기가 위축되고 있다.

그래서 정부가 연 금리 4%짜리 특례보금자리론을 만들었다. 무주택자가 집을 갖거나 1주택자가 갈아 탈 때 요긴하게 쓰일 전망이다. 앞으로 젊은 층, 주거취약 계층, 저소득층의 내집 마련을 지원하는 전향적 대책은 더 필요하다고 본다.”

더 어려워지는 무주택 서민

—부동산 경기가 침체할 경우 나타나는 다른 문제는?

“현재 가장 어려운 사람은 무주택 서민들이다. 전세가 월세로 바뀌는 월세 가속화 현상으로 인해 월세 부담이 늘어나 가처분소득이 줄고 경제생활이 어렵다. 동시에 소형아파트, 소형빌라, 오피스텔 중심으로 깡통 전세, 전세 사기의 위험도 커지고 있다.

이 바람에 전세금 보증을 서주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재정도 고갈되어가고 있다. 전세보증 잔액이 현재 약 90조원인데, 자꾸 늘어나고 있다. 이것도 경제위기의 새로운 뇌관이 될 수 있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를 넘어 불황이 오면, 그 불똥이 금융 분야에도 튀면서 복합불황으로 번져 경제시스템이 마비되는 최악 상황(worst case)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는 최악 상황, 경착륙을 예방하고자 ‘대못’을 뽑기 위해 전방위적인 규제완화 정책의 속도를 내고 있다.”

부동산 시장 경착륙을 막기 위해 초대형 규제완화 대책을 내놓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지난 1월 19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2023년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에서 특별연설을 하는 모습./세계경제포럼

—복합불황으로 번지는 과정을 좀 더 설명해 달라.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 정부가 국가재정을 너무 많이 썼다. 가계부채가 약 1900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로 높아졌고, 국가채무도 GDP(국내총생산)를 넘어섰다. 빚이 많아 영업이익으로 부채를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도 40%에 이른다. 한마디로 한국경제는 ‘부채공화국’으로, 경기침체와 위기에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 주택 미분양-미계약-미입주 증가로 이어지면서 2~3년 후에는 저축은행과 시행사가 부도난다. 과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후 2011년에 부산저축은행, 동양건설, 삼부토건 등이 부도난 사태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2013년부터 전세값이, 2014년부터 집값이 각각 급등한 점은 좋은 사례에 해당한다.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지금도 3~4년 후에는 다시 공급 부족으로 집값과 전세값이 다시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도 있는 위험한 시점이다.”

부동산 정책을 잘못 써 집값 폭등을 불러온 문재인 대통령. 지난 1월 2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사저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들과 환담을 나누는 모습./더불어민주당

—집값 상승과 하락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수요 측면도 있지만 주택 공급의 장기 시차성 때문이다. 주택 공급은 장기사업으로 대략 5~10년이 필요하다. 특히 재건축은 10~15년 이상 걸리는 초장기 사업이다. 주택 시장에서 주기적으로 롤러코스터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1986년 이후 데이터를 보면 주택 가격은 5~7년 정도 오르면 4~6년 정도 하락하는 사이클이 9~12년마다 반복된다. 이를 ‘10년 주기설’이라고 한다. 이번에도 2014년부터 상승한 집값이 2021년에 고점을 찍고 2022년부터 하락세로 전환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내가 2021년에 책 ‘살집팔집'을 쓰면서 2022년은 고점을 찍고 변곡점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 것도 이 10년 주기 이론에 근거한 것이었다. 통계적 사실이 이번에도 입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신속통합기획’으로 인허가 기간을 5년에서 2년으로 단축한 일은 참 잘한 조치라고 본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비교하면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현재의 상황을 평가하면?

“한국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국내 요인보다는 대외 요인이 위기의 근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이 기침하면 한국은 감기에 걸린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두번 위기 모두 미국발 금리인상에서 촉발됐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불린 비우량주택모기지에서 발생했다. 빚을 갚지 못한 채무자들의 주택 가격이 급락한 만큼 미국 부동산과 한국 부동산의 하락충격으로 이어졌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금리 급등으로 인해 주식시장과 주택시장이 동시에 붕괴됐다.

그 때와 같이 이번 코로나 사태도 장기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공통점이다. 주식, 채권, 부동산 시장의 자산거품이 한꺼번에 꺼지고, 결국 금리인하와 양적완화로 시장이 기사회생했다. 작금의 상황은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위기 초기 국면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금리인상 정책은 미국 주택시장을 냉각시키고 있다. 지난해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매물로 나온 한 주택의 모습./AP 연합뉴스

—다른 점은?

“외환위기 때보다는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충분하고 국가신용등급이 높다는 점이다. 또 두번의 위기극복 경험과 정책적 노하우의 축적, 디지털 전환과 산업구조의 첨단화, 수요자의 부동산 대응 방식도 개선됐다고 판단한다.”

부동산 시장의 현황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를 들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야기 주제를 부동산 시장 향후 전망에 맞췄다.

부동산 시장 3대 요인

①금리

—향후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칠 세가지 주요 요인을 든다면?

“첫째, 금리이다. 금리가 오르는 한 부동산 가격은 오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금리와 부동산의 관계는 역의 관계이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특징이 있다. 또한 금리인상 효과는 주택 가격에 단기적으로 바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3~6개월 후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과거 경험을 보면 장기간의 금리급등이 발생한 뒤 후과가 1~3년 가량 지속된다는 사실이다.

이번에도 금리인상의 파급경로가 1단계로 실물경기 침체로 이어지고, 만일 글로벌 경기침체가 길어질 경우 금리 인상의 후폭풍이 부동산 시장에서 적어도 올해 말 내지 내년 상반기까지 계속 간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부동산 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금리이다. 사진은 한국 금리정책을 결정하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월 18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언론회관에서 열린 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모습./뉴스1

—내년까지는 집값이 안오른다는 뜻인가?

“3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해 볼 수 있다. 첫번째는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로 올해 말까지 집값이 내리고 내년 상반기 중 반등하는 시나리오다.

두번째는 내년까지 하락하는 시나리오로 가장 확률이 높아 보인다.

세번째는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로 3~4년 이상 집값이 계속 떨어진다는 장기하락론을 들 수 있다.”

변수 많아 예측 어려워

—예측이 과연 맞을까?

“변수가 워낙 많다 보니, 예측 자체가 무의미하거나 힘든 것이 사실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글로벌 경기침체, 전세계 공급망 교란 등 대내외 요인을 고려하면 예측불허, 오리무중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로선 미국이 내년부터 금리를 내린다고 하더라도 부동산 시장이 짧은 기간에 정상화되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볼 때 분명한 사실은 문재인 정부에서 집값이 장기급등함에 따라 이미 축적된 20~40%의 집값 거품은 언제든지 빠질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가격하락폭은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향후 부동산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는 불확실성 가운데 하나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월 11일(현지시간) 서부 르비우에 있는 전사자 추모비에서 참배하고 있다./AP 연합뉴스

고 원장이 이 대목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체험을 털어놨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오면서 글로벌 부동산 가격이 2008년부터 2013년까지 6년간 내렸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2011년에 부산저축은행, 삼부토건, 동양건설 등 금융회사나 건설회사들이 부도가 났다.

2013년에 서울 강남 아파트가 가장 먼저 바닥을 찍고 거래량이 80% 이상 급증한 이후에 다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 때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서울 강남의 재건축 시장이었다. 재건축은 오를 때 가장 먼저 오르고 내릴 땐 가장 뒤에 내린다.”

부동산 시장 3대 요인

②실물경기 침체

—두번째 요인은?

“실물경기의 침체이다. 우리나라는 무역의존도가 GDP(국내총생산)의 70%에 달할 정도로 무역수지가 경제성장률을 좌우한다. 그래서 무역 수지와 경상수지가 어떻게 되는지가 경제 전반과 부동산 가격 변화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참고로 작년도 한국의 무역수지는 572억달러(약 64조원) 적자를 기록했다. 경제성장률도 잠재성장률인 2%를 밑돈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1.5% 정도 저성장과, 3.6% 수준의 물가상승이 예견된다. 따라서 거시경제지표는 전반적으로 부동산 가격에 하방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참고로 소득 수준은 고가 내구재인 주택 구매력을 결정하는 주요 지표이다.”

실물경기가 침체되면서 부동산 가격의 하방압력을 높이고 있다. 사진은 2022년 12월 19일 경기도 평택항 수출 야적장에 쌓여 있는 컨테이너들./뉴스1

부동산 시장 3대 요인

③거품붕괴 가능성

—세번째 요인은?

“부동산 시장의 ‘거품붕괴 가능성’이다. 국내외 부동산 연구기관의 보고서를 종합하면 서울은 30~50%, 수도권은 30~40%, 지방은 20~30% 가량의 거품이 끼어 있다는 시각이 다수이다. 실제로 지난 5~6년간 강남 집값은 3배, 서울은 2.5배, 경기·인천은 2배, 지방은 1.5배 이상 오른 것으로 추측된다.

부동산 교과서는 경제성장률 내지 소득증가율, 글로벌 평균 집값상승률을 초과하는 가격은 거품으로 추정한다. 3년전 코로나 사태 이후 금리인하와 양적완화로, 즉 내재가치가 아닌 유동성(자금) 증가로 인해 집값과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는데, 상당 부분 거품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시장가격도 내재가치와 비슷해지면서 시장 정상화 과정을 겪을 것으로 관측된다.”

경제성장 없이 시중에 자금이 늘면서 오른 부동산 가격은 거품으로 간주된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에 있는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위조지폐를 걸러내기 위해 달러를 검수하고 있는 모습./뉴시스

고 원장이 잠시 숨을 멈춘 뒤 말을 이어 나갔다.

“여기서 정부의 정책이 두가지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하나는 거품을 적정하게 제거하는 일이고, 또 하나는 거품이 붕괴될 때 성급하거나 급격한 규제완화 정책을 사용해 거품이 충분히 빠지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거품이 쌓이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거품이 쌓이면 언젠가는 빠지기 마련이다. 인위적인 규제완화 정책이 거품제거를 방해하는 역작용을 경계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윤석열 정부는 거품붕괴와 시장안정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시험대를 통과중이다.”

미흡한 점 많은 정부 대책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대규모 규제 완화는 적절한가?

“정부 정책의 방향과 기조는 공감한다. 가격 급락, 거래 위축, 미분양 증가를 방지하고 시장안정과 서민 주거수준의 개선이라는 주택정책 목표에 부합하다고 본다.

다만 공공임대주택 공급, 주거취약 계층에 대한 주거 지원, 실수요자에 대한 정책적 금융지원 등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는 이야기다.”

정부가 부동산 경착륙을 막기 위해 고강도 대책을 내놓았으나 세밀한 부분에서는 부족함이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동산 대책의 실무 책임을 맡고 있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월 12일 부산의 한 초등학교 건립 현장을 방문한 모습./국토교통부

—예를 들면?

“재건축 재개발 활성화 대책을 내놓을 때 세입자의 주거대책, 이주대란, 인근 지역 전월세 가격 급등 가능성 등에 관한 보완조치가 필요하다. 규제완화 정책도 선후, 경중, 완급을 따진 후 시장 충격이 최소화되고 서민들의 주거생활이 위협 받지 않도록 장기로드맵과 마스터 플랜 수립이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최대 피해자는 무주택 서민이고 20~30대 젊은 층이라는 점은 배려해야 한다. 은퇴 후 무주택 빈곤노년층에 대한 주거복지 정책도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

토지거래허가 폐지는 시기상조

—부동산 시장에서는 남은 유일한 규제인 서울 강남과 용산의 토지거래허가 제도까지 없앨지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서울 강남의 토지거래허가 규제를 당장 풀어주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서울 강남과 용산의 아파트는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인기 지역인데다, 언제든지 투기수요가 개입할 여지가 많고, 재건축 본격화로 집값 불안 요인이 많기 때문이다. 집값 상승의 진원지 역할과 주거사다리의 정점을 차지하는 이들 특수 지역에 대해서는 집값과 전세값이 안정된 이후 토지거래 허가지역을 해제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다.”

서울 강남구 송파구 용산구의 토지거래허가 규제를 해제하는 것은 아직 성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사진은 1월 18일 오전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뉴시스

—정부가 부동산과 관련된 세금 규제를 거의 모두 풀었다.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현재 우리나라의 다주택자는 126만명 이상이다. 평균 2채를 갖고 있다. 최고 상위층 100명이 2만채 이상을 보유해 1인당 200채를 넘게 소유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문재인 정부 때 다주택자 규제 조치로 인해 다주택자 수가 다소 줄었는데, 윤석열 정부의 다주택자에 대한 취득세, 보유세, 양도세 중과조치 폐지 혹은 연장 발표로 시장흐름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의 대대적인 부동산 세제 완화 덕택에 다주택자들은 집을 급히 팔 이유가 없어졌다. 사진은 세금 징수를 담당하는 정부 세종청사의 국세청 본청 건물./국세청

고 원장이 말을 이어갔다.

“부동산 정책 중 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수단은 세부담 경감과 대출규제 완화 조치이다. 3주택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 세금 중과가 사라지고 대출 규제마저 완화되면 다주택자는 사실상 서둘러 집을 팔 이유가 없어진다. 반대로 무주택자는 서둘러 집을 사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불안하고 초조해질 수 밖에 없다.

지금은 집값이 내리니까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앞으로 서울 집값이 다시 오를 경우 부익부 빈익빈,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해지고 계층간의 갈등은 더욱 커질 것이 틀림 없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가져오는 결과에 대해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분석력을 갖고 있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대화를 좀 더 끌고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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