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 편견 넘어 시장의 중심에 선 웹툰‧웹소설[김희경의 컬처 인사이트]

입력 2023. 1. 25. 09:46 수정 2023. 1. 25.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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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소스 멀티 유스로 활용…‘로어 올림푸스’ 등 해외 작품들도 유입 시작




하루가 멀다고 전 세계에서 K-콘텐츠가 인기를 얻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하지만 이 콘텐츠들을 담고 있는 플랫폼은 사정이 다르다. 플랫폼으로는 글로벌 시장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토종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는 아직 국내에 머물러 있고 내년 이후 점차 해외에 진출할 예정이다.

그런데 보기 드물게 이미 플랫폼으로 글로벌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분야가 있다. 네이버웹툰‧카카오페이지 등 웹툰‧웹소설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들은 한국을 넘어 북미·일본 등 해외 각지로 뻗어 나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웹툰‧웹소설은 과거 대중문화의 끝자락에 머물렀던 장르들이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춰 새롭게 재탄생하며 국내외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화제 작 다수는 웹툰‧웹소설이 원작

콘텐츠 시장엔 오랜 시간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했다. 주류와 비주류의 구분이었다. 드라마와 영화는 주류에 해당됐다. 반면 출판 만화나 웹소설의 전신인 ‘인터넷 소설’과 ‘사이버 소설’ 등은 비주류에 속했다. ‘비주류 문화’라는 뜻의 ‘서브컬처(subculture)’로도 불렸다.

해외에 비해서도 한국에선 유독 잘못된 인식과 고정관념이 만연했다. 만화는1980~1990년대 ‘공포의 외인구단’ 등 다수의 작품이 인기를 얻기도 했지만 인식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어린이들의 전유물 또는 일부 수준 낮은 성인들의 취미 정도로만 여겨졌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몰래 봐야 했다. 성인이 돼서도 만화를 좋아하면 오타쿠 취급을 받았다. 인터넷 소설도 마찬가지였다. 사춘기 학생들이 공부하기 싫어 몰래 돌려 보는, 어설프고 자극적인 소설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이젠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성별과 연령대를 막론하고 웹툰‧웹소설을 즐겨 본다. 콘텐츠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도 막강하다. ‘미생’부터 ‘유미의 세포들’, ‘여신강림’, ‘나 혼자만 레벨업’, ‘김 비서가 왜 그럴까’, ‘구르미 그린 달빛’, ‘재벌집 막내아들’까지 큰 인기를 얻은 작품 다수가 웹툰 또는 웹소설에 해당한다. 그중 대부분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젠 드라마와 영화를 보다가 참신하고 흥미로우면 작품 제목 뒤에 ‘원작’이란 단어를 더해 검색하는 사람들도 많다. 당연히 웹툰이나 웹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만큼 웹툰‧웹소설은 고착화돼 있던 드라마와 영화 등의 서사 문법까지 대대적으로 바꾸고 있다.

웹툰‧웹소설 작가들에 대한 처우도 점차 개선되고 있다. 과거엔 다른 분야의 창작자들에 비해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실제 현실도 그랬다. 하지만 최근엔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2년 웹툰 작가 실태 조사’에 따르면 웹툰 작가의 평균 연 수입은 1년 내내 연재할 경우 1억187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고 보완돼야 할 점도 많지만 이전에 비해선 안정적으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산업 규모로 따져봐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큰 산업이 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웹툰 시장 규모는 1조5660억원으로 전년 대비 48% 증가했다. 2013년 1500억원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0배 정도 커졌다. 웹소설 시장 규모도 2013년 100억원에서 2021년 6000억원 규모로 60배나 불어났다.

 

재즈·힙합도 과거엔 비주류였다

서브컬처로만 여겨졌던 웹툰과 웹소설의 반격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한국 사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빠르고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다. 사람들은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쉽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찾게 됐다. 공감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무겁지 않은 작품 말이다. 웹툰은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틀 속에서 종이 만화에 비해 훨씬 가벼워졌고 그 덕분에 누구나 일상에서 손쉽게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일과 공부로 지쳐 집에 돌아가던 중 스마트폰으로 쓱 내려보며 위로받을 수 있었다.

만화책과 차별화된 웹툰만의 장점도 큰 힘을 발휘했다. 극도의 긴장감과 몰입도의 힘이다. 만화책은 가로 방향으로 넘기면서 보도록 돼 있지만 웹툰은 세로로 컷이 이어진다. 사람들이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쉽게 위아래로 스크롤 하면서 읽을 수 있도록 바뀌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에 민감하고 빠르게 적용하는 한국인의 특성이 비주류 장르 만화로까지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방향의 변화에 그치지 않았다. 아래로 빠르게 내려가는 시선을 붙잡기 위해 이야기는 보다 극적으로 변했다.

웹소설도 마찬가지다. 과거 팬픽(아이돌 등 특정 아티스트의 팬들이 만드는 작품), 하이틴 로맨스에 머물렀던 것에서 나아가 무협·판타지·로맨스 등 장르의 작품들로 확장됐다. 웹소설은 순수 문학과 인터넷 소설 사이의 공백도 파고들었다. 웹소설에선 긴 문장과 어렵고 모호한 표현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 대신 짧으면서도 직관적이고 힘 있는 표현들로 이뤄져 있다. 그러면서도 탄탄하고 밀도 높게 스토리를 구성했다. 웹툰처럼 긴장감과 몰입도를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그 덕분에 웹툰‧웹소설은 하나의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다수의 장르에 활용되는 원 소스 멀티 유스(OSMU)의 가장 성공적인 모델이 됐다. 인기 작 대부분은 영상화가 이뤄지며 선순환이 일어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웹툰‧웹소설을 만들 때 처음부터 영상 촬영을 염두에 두고 구성하면서 영상 문법과 결합돼 시너지가 나고 있다.

웹툰‧웹소설 플랫폼의 개방성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포털 업체들이 2013년 이후 본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서며 웹툰‧웹소설 산업의 초고속 성장이 이뤄졌다. 이 업체들은 다양한 소재와 장르를 내세운 작가들을 플랫폼에 유입시켜 대중이 각자의 취향대로 작품을 골라 볼 수 있는 판을 깔았다.

나아가 플랫폼을 기성 작가만을 위한 공간으로 두지 않았다. 누구나 쉽게 자신의 이름을 건 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했다. 독자들 역시 신입 작가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고 숨겨진 원석을 발굴했다. 과거 종이 만화를 만들 때는 많은 작가들이 도제식 시스템에 갇혀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건 작품 하나 제대로 내는 것조차 쉽지 않은 구조였다. 하지만 온라인 플랫폼이 생겨나며 아이디어와 실력만 있으면 누구나 기회를 얻게 됐다.

글로벌 시장의 강자로 자리매김한 것엔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의 힘이 컸다. 네이버는 세계 최대 웹소설 플랫폼인 왓패드를 인수했다. 카카오는 북미 웹툰 플랫폼 타파스를 비롯해 웹소설 플랫폼인 래디쉬와 우시아월드를 잇달아 사들여 지난해 ‘타파스엔터테인먼트’로 합병했다.

이 과정에서 해외 작품들이 대거 유입됐다. 개방성과 능동성의 절묘한 조합 덕분에 북미 시장 1위 웹툰도 탄생했다. 뉴질랜드 출신 레이첼 스마이스 작가의 ‘로어 올림푸스’다. 그리스 신화를 재탄생시킨 웹툰으로, 글로벌 주요 만화 시상식인 링고‧아이스너‧하비상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이 작품은 네이버웹툰의 아마추어 창작 플랫폼인 ‘캔버스’를 통해 발굴됐다.

과거 일부 학자들은 ‘문화 그레셤의 법칙’을 주장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한다(쫓아낸다)’는 16세기 영국 재무관 토머스 그레셤의 법칙을 적용한 것으로, 타락한 문화가 훌륭한 문화를 몰아낼 수 있다는 의미를 맏고 있다. 그들의 시각에서 봤을 때는 지금 매우 부정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대중문화의 가장 아래에 있던 웹툰과 웹소설이 위로 부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고급문화로 여겨지는 재즈도, 전 세계 곳곳에 확산된 힙합도 처음엔 모두 비주류에 속했다. 결국 영원히 주류로 존재하기 힘들 듯이 영원한 비주류도 없다.

김희경 한국경제 문화부 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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