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정치의 핵심 '이준석의 시간'이 남긴 것은?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그때 그 청년정치는 무엇을 남겼을까?'
작년 1월,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청년'이란 기호가 대두됐다.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는 무당층 청년들을 대상으로 공정과 상식이라는 키워드를 적극 소구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비롯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반여성주의 전략이 그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부터 보수진영 내 세대교체의 아이콘이었던 이 전 대표는 자연스럽게 '청년정치의 얼굴'로 떠올랐다.
한발 늦은 더불어민주당은 이준석을 따라 할지, 그에 적극적으로 맞설지 담론적인 내홍을 겪기도 했다. 1월 이재명 캠프가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을 영입하며 분위기가 정리됐다. 이어 3월엔 그를 여성층 막판결집의 기수로 활용했다. 여성주의, 능력주의 등 청년세대 내 이슈가 '이준석 대 박지현'이라는 인물론적 대결 구도로 수렴한 순간이었다. 그 구도가 이후 6월 지선까지 이어졌다.
윤석열 캠프 청년전략의 1호로 작용한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이후 1년이 지났다. 돌아보면 그때 그 청년정치는 무엇을 남겼을까. 내용의 당위를 떠나 형식적으로나마 청년 당사자성을 강조했던 양당의 지난 기조는 현재 무색하다. 자당 대선 후보의 손을 쥐었던 두 청년 정치인은 어느새 당의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노동·여성계 등을 향한 윤 정부의 맹공 속에서 이 전 대표가 구가한 혐오전략의 상흔만 겨우 엿보일 뿐이다.
선거는 다음 해 이맘때쯤 돌아온다. 무당층 청년들은 다시 캐스팅보트로 떠오를 것이고 양당도 새로운 청년의 얼굴을 찾아 헤맬 것이다. 그 과정 끝에 2022년의 결과도 어쩌면 반복될 것이다. 그 반복을 피하고자, 지난 20일 <프레시안>이 '그때 그 청년정치'를 복기해봤다. 청년 정치인, 활동가, 청년정책 실무자 등으로 이력을 이어온 청년정치의 당사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좌담회를 진행했다.
차해영 더불어민주당 마포구의원, 김혜미 마포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이주형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대표가 참석하고 <프레시안>이 사회를 맡았다.
오랜 시간 지역 기반 청년 활동가로 살아온 차 의원은 지난해 지선 당시 제도권 내 청년정치의 창구로 민주당을 택했다. 2020년부터 원외 정치를 지속해온 김 위원장은 현재 초당적 청년정치인들의 모임 정치개혁2050에 참여 중이다. 활동가이자 실무자로서 청년기본법 등 제도 형성과정에 참여해온 이 대표는 여전히 청년시민사회에 남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지난 시기의 청년정치가 "새로운 정치를 호명하는 시민적 열망의 결과물"이며 "지난 10년 동안 이어진 청년 당사자 운동의 성과"인 동시에 "인물론 및 적대정치로 수렴해버린 양당의 마케팅 수단"이기도 했다고 진단했다. 근 몇 년 언론 등이 청년정치의 핵심으로 꼽아온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두고는 청년정치 담론에서 "배제해야 할 존재"(김혜미)라는 평과 "과제로서 다뤄야 할 존재"(이주형)라는 평이 엇갈렸다.
<프레시안>은 좌담회의 내용을 두 편에 걸쳐 옮긴다. 아래는 그 첫 번째.
시민적 열망으로 탄생한 '청년정치'의 장, 그러나 '인물론'에 그쳤다
프레시안 : 지난해 선거 시즌이 지나자마자 '청년정치', 혹은 '청년'과 관련한 정치적 담론이 뚝하고 끊긴 느낌이다. 당시 뜨거운 화두였던 청년정치를 복기하는 동시에, 2024년 총선에서의 청년정치를 준비하자는 의미에서 이 자리를 마련했다. 여러분은 원내, 원외, 그리고 시민사회를 넘나들며 청년담론을 구축해온 분들이다. 먼저 각자의 영역에서 느낀 지난 청년정치에 대한 총평이 듣고 싶다.
이주형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대표 : 2019년부터 2022년까지 크고 작은 선거들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오랜만에 '청년'이 주요한 정치적 의제로 다뤄진 게 사실이다. 그 꼭짓점이었던 지난해 대선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하나 있다. 청년문제와 관련한 토론회였는데, 주요 3당의 대선 후보 모두가 이견 없이 동의한 부분이 있었다. 바로 '다음 정부에선 청년 당사자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그들에게 권한을 주겠다'는 이야기였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에도 청년은 중요한 정치적 문제로 다뤄졌었다. 그러나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달랐다. 박근혜 후보도 문재인 후보도 '내가 청년의 문제를 경청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다시 말하면, 10년 만에 청년문제를 다루는 방식이 적어도 형식적으로나마 '청년 스스로에게 권한과 자격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바뀐 셈이다. 이제 청년이 정치를 할 수 있냐, 없냐 자체는 논쟁거리가 아니다. 그게 당연한 얘기가 됐다.
대선 당시 청년정치의 가치 평가를 떠나서, 이러한 변화 자체가 지난 10년간 이어져온 각 지역 청년 활동가들의 다양한 활동과 경험들의 성취가 아니었나 싶었다. 가령 지역청년들의 요구로부터 시작된 청년기본법의 제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쌓인 청년들 스스로의 역량과 경험을 공유하는 등의 활동들 말이다. 그런 점에선 굉장히 뜻 깊은 풍경이었다.
김혜미 마포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 이어서 생각해 보면, 이러한 폭발적인 청년의 정치화는 탄핵 국면 이후로 이어져온 새로운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적 열망의 결과물이라고도 평할 수 있을 것 같다. 탄핵 이후 정권이 교체되며 많은 시민이 더 나은 민주주의를 열망했지만, 촛불연정 문재인 정부가 그러한 열망들에 크게 호응하지 못한 점이 있다. 때문에 새로운 정치에 대한 시민의 갈망이 보수, 진보, 중도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높아졌다.
나는 그 갈망이 2022년에 이르러 도착한 종착지가 바로 청년정치였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이준석 전 대표가 국민의힘 당 대표로 선출되기까지의 과정은 단순히 당내에서 '사람 좀 바꿔보자' 하는 흐름이 아니었다. 당시 이미 국회 구성원의 50%는 초선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일반 유권자들이든 정당 관계자들이든, 인물교체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물교체를 통해서라도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싶었던 셈이다. 청년정치의 활성화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그러한 갈망이 배경으로 깔리기 때문에, 당대표가 된 이 전 대표가 갈라치기나 적대정치 등을 통해 정치를 오히려 협소하게 만든 점에서 그 책임이 굉장히 클 수밖에 없다. 또한 이준석이든 박지현이든, 지난 선거에서 청년의 얼굴로 호명된 이들이 자신들 뒤의 시민적 열망을 얼마나 정치에 잘 녹여냈는지도 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2024년 총선까지 남은 기간은, 사실상 그 열망을 정치 공간 안에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 고민하고 준비하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차해영 더불어민주당 마포구의원 : 두 분 말씀에 모두 공감한다. 특히 이주형 대표의 이야기처럼, 지난 시간 전국적으로 청년기본조례·청년기본법 등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청년에 대한 정책적 보장이 이행되기 시작했고, 참여기구를 통해 청년들은 직접 정책영역에 대한 경험을 쌓아오기도 했다. 그런 시간들이 축적되면서, 청년 스스로도 유권자 층에서도 더는 '청년을 대상화하지 말자'는 지점까지 도달했다는 생각이다.
다만 개인적으론 '그럼 정당은?' 이라는 질문이 남는다. 사회 전방에서 청년정치를 호명하고 있지만, 그에 호응할 정당 내부에는 청년정치인을 효과적으로 육성하는 과정이 잘 설계돼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청년정치의 무대 자체가 펼쳐지기 보다는, 이준석이나 박지현 등의 특정 인물론으로 청년정치 자체가 수렴해 버린 경향이 있다. 사회 전반의 열망이나 욕구가 한 인물에만 포커싱된 셈이다.
그러다보니 결국 단일한 계층을 대변하는 방식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다소 복합적인 형태의 청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정치'는 탄생하지 못했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정치인들, 청년 정치인들을 더 많이 만들어내고 그들을 통해 새로운 욕구를 정치적으로 수행해 나가는 시스템을 만들어나가야 할 때다. 한 선거만을 준비하기 보다는, 그런 시스템을 일상적으로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 : 어떤 '정치적 요구'가 한 명의 인물에게 수렴될 경우, 정치에도 해당 인물에도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나.
차해영 : 저를 예시로 들면, 마포구의회 안에서도 청년정치인으로서 가지는 정치적 역할이 있다. "일자리만 주어진다고 청년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청년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선 복합적인 관점이 필요하다"는 등의 시민사회 내부의 합의를 끊임없이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합의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 마포구뿐만 아니라 모든 지역구의 청년 의원들이 비슷한 상황이다. 이는 우리의 역할이면서 동시에 부담이기도 하다.
이주형 : 결국 마포구 의회에 청년 정치인 차해영 한 명을 넣어놓고, 그에게 너무 많은 청년정치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 지금의 상황인 셈이다. 성평등이나 젠더 문제에 대한 여성 국회의원들의 상황과도 비슷하다고 본다. 이건 정치인 한 명에게는 분명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나는 다양한 아젠다를 다룰 수 있고 또 다뤄야 하는데, 내게 허락된 영역이 '청년'이나 '여성' 하나로 규정지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니까 말이다.
김혜미 : 청년문제 안에서만 해도 기후, 젠더, 주거, 노동 등 수많은 의제가 복합적으로 엮여있다. 단일 의제만으로 접근하기엔 한계가 있는 상황인데, 청년정치인이 '청년'이라는 딱 하나의 기호나 기표로만 정치를 하게 되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개인적으론 결국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당이 분명한 정치 비전 없이 인물과 공천 위주의 선거를 치르다보니 정치인에게는 특별한 '주특기'가 요구된다. 다당제나 연정의 활성화 등 다양한 목소리가 유연하게 반영되는 정치구조를 만드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청년정치인 이준석? "공론장에서 퇴출해야" vs "이준석의 시간이 남긴 것"
프레시안 : 적절성을 떠나 2022년 정치권 청년이슈의 핵심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였다. 그가 능력주의·반여성주의 등을 적극적으로 호명하면서 2022년의 청년정치는 여성과 남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명문대생과 지방대생 등을 갈라 '누가 진짜 청년인가' 다투는 싸움이 되기도 했다. 혹자는 결국 토사구팽 당한 이준석과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을 가리켜 '청년정치의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라 평하기도 한다. 세 분은 '이준석의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김혜미 : 먼저 분명히 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윤석열 정부 취임 이후 이어진 이준석의 몰락을 '청년정치의 몰락'이라고 말하는 것은 청년정치를 더 어렵게 만드는 일이다. 개인적으로 박지현 전 위원장에게는 청년정치인으로서 기대한 바도 있고, 한편으론 타당 사람으로서, 그리고 소수 정치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름의 불만도 있다. 하지만 이 전 대표는 다르다.
특히 그가 정치권 바깥으로 튕겨져 나간 결정적인 계기는 본인의 성접대 의혹 건 때문이었다. 정당 내에서 성폭력에 대한 강한 문제제기는 분명히 필요한 일이다. 해당 사건을 고려했을 때 이준석은 청년정치를 주제로 한 평가나 복기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차해영 : 사실, 앞서 언급한 청년문제의 복합성을 생각할 때도 그런 면이 있다. 그가 당대표로서 구사한 여러 전략들을 생각해 보면 청년정치인 이준석은 청년정치의 복합성을 다 담을 수가 없는 사람이다. 언론이나 정치권 등지에선 이준석에게 청년정치의 대표성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자체가 문제적인 현상이라는 데엔 동의하는 편이다. 궁극적으론 청년정치의 공론장에서 소멸, 탈락시켜야 하는 게 맞다.
이주형 : 이준석의 몰락에 대한 원론적인 평가는 김혜미 위원장에게 동의한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정치의 틀 안에서 '이준석의 시간'을 ('박지현의 시간'과 더불어) 평가할 부분은 실존한다고 생각한다.
청년정치의 목표가 뭐냐, 라고 한다면 장기적으로 세계관의 교체다. 더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87년 체제 세계관을 바꿔내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청년의 삶을 (정치의) 중심에 두기 위한 정치적 토론과 구체적인 내용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준석은, 그 내용에 대해선 절대 동의하지 못할지라도 '청년정치'라고 구분되는 어떤 시도를 한 사람이긴 하다. 본인이 의도했든 안 했든 적어도 한국사회는 그를 그렇게 소비했다.
이준석과 박지현이 정치적으로 몰락한 과정은 특히 유심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둘의 가장 공통적인 부분은 각 당 내에서 많은 갈등을 일으킨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즉 기존의 견고한 질서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인 동시에, 악의적인 관점으로는 소위 '분탕질'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 당 내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려고 했을 때, 당이 그에 대해 어떤 식으로 반응했는가? 나는 그 과정을 좀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양당이 보인 대응 과정 속에선 분명 청년정치인의 정치적 취약성이 드러났다. 당내에서 누가 누구랑 친하고, 누가 어떤 입지와 배경을 지녔는지에 따라 유력 인물의 정치적 생명이 갈리는 과정이 다시 드러났다. 이 '줄 세우기' 정치 속에서 청년정치인이 가진 취약성도 드러났다.
차해영 : 맞는 말이다. 다만 이준석을 계속 청년정치인으로 호명해야 하느냐는 의문은 이준석의 정치, 그 내용에서 온다. 사실 그의 정치는 청년이라는 정체성 보단 기존의 것을 답습한 부분이 크지 않나 싶다. '능력주의'와 같은 기존의 (보수적) 전략을 답습하되 그것을 새롭게 업그레이드한 셈이다.
가령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출발선상의 차별을 인정하고 이를 조정하자는 논의는 기존 사회에서 거의 논의가 끝난 부분이었다. 여기서 이준석의 정치는 '같은 선상에서의 시험이 결국은 가장 공평한 것'이라는 식으로 논의를 되돌려 버렸다. 그리고 기성세대가 '논의를 되돌리는' 그의 스킬을 인정하고 활용하면서 이준석의 시간이 도래했다.
김혜미 : 결국 그의 완전한 몰락은 그의 정치에 '답습'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원래도 반노동적이고 반여성적이었던 기성정치를 고려해보면, 그가 남긴 것이 무엇이 있나. 이준석 이후 국민의힘은 2030 남성들을 잘 대변하고 있나? 내용의 정당성을 떠나 그의 '필살기'였던 여성가족부 폐지조차 사실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지 않나. 정치권은 이준석에 대해 '말도 안 되는 혐오를 동력으로 삼아서 잠깐 빛났다가, 자신이 초래한 여러 가지 문제로 퇴장했고, 결국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사람'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주형 : 이준석의 정치에 대한 전반적 평가에 동의한다. 다만 '이준석이 남긴 것이 무엇이냐'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다시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이준석의 시간 이후 사회적으로 남겨진 것을 떠나,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본다.
청년세대 내부의 다양한 적대와 갈등은 이준석 이전에도 있어왔다. 그런데 이 갈등을 두고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우리는 충분한 토의를 해오지 못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이슈, 여성가족부 폐지, 이대남 현상의 정치화 등 '이준석의 시간'은 그 논의의 부재 속에서 맞이한 비극과 같다. 이준석이 짜놓은 정치적 프레이밍 안에서 청년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 건 분명 비극이었지만, 그 비극은 역설적으로 국내 청년담론이 얼마나 빈약했는지를 반증한다.
장기적으론, 이준석 개인의 퇴장 여부에 관계없이 이준석이 시도했던 정치적 프레이밍은 앞으로도 한국사회에 강렬하게 남게 될 거라 생각한다. 아마 다음 선거 때도 반드시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 프레이밍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새롭게 재구성 할까 고민해야 한다.
프레시안 : 결국 이준석의 시간이 남긴 것, 혹은 이준석의 시간으로 가시화된 것은 청년을 둘러싼 노골적인 '적대정치'라는 셈이다. 그 적대정치의 돌파구는 무엇일까.
김혜미 : 적대의 정치는 양당 입장에서 '가장 쉬운' 정치방식이다. 민주세력이냐 반민주세력이냐, 남자 편이냐 여자 편이냐, 양당이 나뉘어서 싸우고 유권자를 줄 세우다 보면 모든 표는 다시 양당이 나눠가지니 그렇다. 결국 적대적 공생체제가 유지된다. 결국 이 적대의 정치가 해소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다원주의와 결합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된다는, 굉장히 원론적인 이야기를 드릴 수밖에 없다. 이후로는 선거제 개혁 등 구체적인 방법의 얘기가 남는다.
차해영 : 내가 구의회라는 제도권 정치 영역에 들어온 이유는 어떤 의제에 대해 '어떤 식으로라도 논의를 진행하고 합의안을 내놓는' 공론 영역이 내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론장을 더 많고 다양하게 열어야 한다는 늘상의 주장에 더해, 나는 공론장에 들어가기까지의 '근육'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지도 설계해야 한다고 본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한다면, 결국 더 많은 예산과 시간을 투여하는 게 답이다. 시민들 스스로 논의하고, 그에 대한 입장을 세우고, 합의의 지점으로 조금이라도 이동하는 과정에 더 많은 예산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지금 정당들은 이를 두려워한다는 점에서 아쉽다.
이주형 : 이준석의 시간에 한국사회가 가장 놀란 지점은 '청년세대 내에 저렇게 많은 이견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지점이었다고 본다. 그 이견들을 공론장에 올리지 못한 채 적대정치의 시간이 도래한 것이 지난 시대의 과제였다면, 이제는 적대정치에 기반한 '조롱의 문화' 자체가 앞으로의 과제로 남았다. 지역의 활동가들은 이미 '이견'을 토론할 수 없게 된 분위기를 체감하고 있다.
논의의 가능성이 부재한 사회에서 정치가 수렴할 곳은 분명하다. 결국 다수결, 여론조사 정치다. 논의와 설득이라는 정치의 역할을 여론조사에 맡겨놓고 '여론조사 결과가 곧 진짜 청년의 목소리'라고 우기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정당과 정치는 소통의 역할을 너무 오랫동안 방기해왔다. 결국 앞서 이야기 나왔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정당, '비전이 부재하고 줄 세우기에만 전념하는' 정당의 문제와 같은 얘기다. 소통과 합의라는 역할의 회복이 가장 시급하다. (계속)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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