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날 시계’ 자정까지 90초 전…지구 파멸에 최근접

곽노필 2023. 1. 25.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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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과학자회보, 3년만에 분침 10초 앞당겨
1947년 첫 발표 이후 자정에 가장 가까워
우크라이나전쟁· 기후위기·핵위협 등 꼽아
세계 지도자들의 리더십 실패 책임도 지적
2023년 운명의 날 시계 분침 조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핵과학자회보 관계자들. 핵과학자회보 제공

지구 파멸을 경고하는 ‘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 분침이 ‘자정 90초 전’으로 3년만에 10초 앞당겨졌다.

이로써 ‘운명의 날 시계’ 분침은 1947년 첫 설정 이후 자정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다. 자정은 과학자들이 경고하는 지구 파멸의 시점을 상징한다.

미국 핵과학자회보 과학안보위원회는 24일(현지시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핵확산 위험 증가를 주된 이유로 들어 시계 분침을 조정했다고 발표했다.

위원회는 또 기후위기와 함께 코로나19와 같은 생물학적 위협 및 첨단 기술과 관련한 위험을 완화하는 데 필요한 세계 규범과 제도의 와해, 국가의 뒷받침을 받는 가짜 정보와 파괴적 기술도 시계 분침 조정의 이유로 꼽았다.

앞서 핵과학자회는 2020년 전 세계적인 위협에 맞서 세계 각국 정부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한다는 점을 들어 시계 분침을 자정 100초전으로 당긴 이후 지난 3년 동안 이 상태를 유지해왔다.

핵과학자회보는 “미국과 러시아, 중국은 본격적인 핵무기 현대화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으며 위험한 새로운 ‘제3차 핵 시대’ 경쟁을 위한 테이블을 마련하고 있으며, 남아시아의 군비 경쟁과 동북아시아의 미사일 군비 경쟁이 암울한 그림을 완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핵과학자회보는 미국과 러시아의 마지막 핵무기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가 2026년 만료를 앞둔 점, 중국이 2035년까지 핵무기를 5배로 늘릴 가능성,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 실험 강화, 이란의 우라늄 농축 능력 증대, 인도의 핵무기 현대화 지속 등을 ‘제3의 핵 시대’를 여는 사례로 꼽았다.

레이첼 브론슨 핵과학자회보 회장은 “자정 90초 전은 역대 시간 조정 가운데 자정에 가장 가까운 시간으로 우리는 이번 결정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지도자들이 시계를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자신들의 모든 것을 쏟아부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3년 전 나는 운명의날 시계 바늘을 마지막으로 조정할 때 그 자리에 있었다”며 “지도자들은 2020년의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우리 모두는 계속해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차히아깅 엘벡도르지 전 몽골 대통령은 “오늘날 우리 세계가 직면한 여러 위기에는 러더십의 실패라는 공통점이 있다”며 “평화로운 공존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향한 길로 우리를 되돌릴 수 있는 유엔 헌장 정신과 가치에 뿌리를 둔 집단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6차 평가보고서 수석저자이자 핵과학자회보 과학안보위원회의 일원인 시반 카르타 박사는 “기후위기에 대처하려면 다자간 관리 및 협력 기구에 대한 신뢰가 필요한데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생겨한 지정학적 균열이 국가간 신뢰와 세계의 협력 의지를 약화시켰다”고 말했다.

1947년 이후 ‘운명의 날 시계’ 분침 조정 연혁

2000년대 들어 기후위기도 주된 위협으로

‘운명의 날’ 시계는 1947년 핵과학자회보가 당시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경쟁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만들었다. 첫해 ‘자정 7분 전’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17분 전’에서 ‘100초 전’ 사이를 오가며 지구의 위험 상태를 알리는 경고 신호 역할을 해왔다.

분침이 조정된 횟수는 이번까지 합쳐 모두 25번이며 앞으로 17번, 뒤로 8번 움직였다. 핵과학자회는 2007년 기후 변화를 인류 멸망의 새로운 위협 요인으로 추가했다.

‘운명의 날’ 시계를 운영하는 핵과학자회보는 미국의 핵폭탄 개발 프로그램인 맨해튼 프로젝트 참여자를 비롯한 핵과학자들이 1945년 결성한 단체다. ‘운명의 날 시계’는 이 단체의 과학안보위원회가 1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하는 후원위원회와 협의해 결정한다.

76년 전 ‘운명의 날 시계’가 자정 7분 전에서 시작한 것은 과학적 근거보다는 디자인상의 이유 때문이었다.

핵과학자회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1947년 6월호 표지에 등장한 첫 운명의 날 시계를 디자인한 마르틸 랑스도르프는 첫 분침을 ‘자정 7분 전’으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 “내 눈에 좋아 보였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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