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목人열전]① 수심 48m에 ‘세계 최장’ 침매터널을 짓다… 토목 역사 새로 쓴 주역 이동규 대우건설 부장

최온정 기자 2023. 1. 2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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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긴 침매함체를 세계에서 가장 깊은 수심 48m에 침설해야하는 난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과연 우리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국내 최초 해저 침매터널인 ‘거가대교 침매터널’ 공사에 참여했던 이동규 대우건설 부장(現 이라크 침매터널 공사 총괄)은 지난달 29일 진행된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두고 ‘순응과 극복의 사이에서 최선의 결정을 해나가는 과정이었다’고 회고했다. 침매터널은 육지에서 제작한 구조물(침매함체)을 물속에 가라앉힌 다음 이어 붙여 만든 터널이다.

이동규 대우건설 부장(現 이라크 침매터널 공사 총괄)./대우건설 제공

1998년 대우건설에 입사한 이동규 부장은 토목 전문가다. 국내에서는 하수관로·지하철·고속도로 사업에 참여했고, 2014년부터 해외로 파견돼 알제리 콘스탄틴 하천정비 프로젝트, 이라크 알포우방파제 프로젝트 등 현장을 거쳤다. 현재 이라크 침매터널 사업의 공사를 총괄하고 있다.

수많은 현장을 거친 그에게도 당시 침매터널 사업은 매 순간이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거가대교는 거제시 장목면 유호리에서 출발해 죽도·저도를 거쳐 부산광역시 강서구 천성동 가덕도에서 끝나는 총길이 8.2㎞ 다리다. 가덕도와 대죽도 사이 3.7㎞ 구간은 침매터널로 지어졌으며, 지난 2010년 완공됐다.

침매터널은 두께 1.4m, 길이 182m, 무게 4만7000톤(t)에 달하는 함체 18개를 이어 붙여 만들었다. 당시 기록으로는 함체의 길이(단일 함체 기준)와 수심 모두 세계 최대였다. 국내외 관심이 쏠렸던 침매터널 공사 현장의 실무자였던 이 부장에게 시공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침매 터널은 주로 어떤 곳에 짓나.

“침매터널은 지상 땅을 뚫어야 하는 굴착식 터널과 비교해 소요되는 토지가 적다는 장점이 있다. 땅값이 비싼 도심지에서 하천을 횡단해야 한다고 하면 주로 침매터널을 짓는다. 카타르의 샤크베이(Shark bay) 프로젝트나 인도네시아의 신수도 이전 사업, 브라질 산투스 등에서도 하천 횡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 곳은 침매를 선호한다.

이라크처럼 전쟁의 위험이 있는 나라에도 적합하다. 이런 곳에서는 교량이 폭격당하면 교량의 잔재들이 강을 뒤덮어 지장물이 된다. 교량 인근에 항구가 있다면 항구에서 배가 뜨지 못할 수 있다. 전시에 잠수함이나 군함이 나오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침매터널은 바닷속에 있어 파괴될 위험이 없다. 거가대교 침매터널 역시 안쪽에 진해 해군기지가 있어서 해저터널이 적합했다.

전 세계적으로 침매터널은 131개가 있다. 미국 31개, 네덜란드 25개, 그 외 서유럽 26개, 일본 28개 등이다. 주로 유럽회사와 일본회사가 지었고, 한국에선 대우건설이 공사했다. 대우건설은 거가대교 해저터널 완공 후 현재 두 번째 침매터널을 이라크에 짓고 있다. 향후 카타르나 인도네시아, 터키, 브라질 시장 진출도 타진하고 있다.”

―침매터널은 어떤 방식으로 짓는가.

“침매터널은 크게 터널의 수중부에 설치될 함체, 함체를 연결하기 위한 육상부 터널 및 도로, 터널의 유지관리에 필요한 각종 기계설비, 전기, 건축파트로 구성된다.

함체 제작과 육상부 터널 공사는 동시에 진행한다. 시간과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다. 해저에 설치될 함체를 제작하는 함체 제작장을 만들면 공사가 시작된다. 함께 진행되는 육상터널공사는 함체 제작이 완료될 때쯤 마무리가 된다.

함체 제작이 완료되면 함체를 바다 위에 띄우기 위한 작업이 함체 제작장 내부에서 진행된다. 동시에 함체가 놓일 해저에 준설작업을 실시한다. 함체의 이동과 침설을 위한 모든 준비작업이 완료되면 각종 침설장비들이 함체에 장착되고 침설작업을 수행한다.

침설 이후 터널 외부에서는 함체를 고정하기 위해 토사물로 함체를 덮는 되메우기 작업이 진행된다. 터널 내부에서는 일반 터널과 유사한 방재시설이 설치된다. 터널 유지관리를 위한 기계·전기·건축공사를 끝으로 침매터널을 완성한다.”

―거가대교 침매터널 사업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함체를 이동시켜야 했다. 무겁고 긴 터널을 들어 올리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부력을 이용했다. 함체가 다 제작되고 나면 바다 위에 띄워서 목표지점으로 이동시켜야 하는데 무게가 만만치 않아 불가피한 조치다. 침수지점은 음파나 센서 등을 이용해 조정했다. 먼저 침설한 함체의 위치를 확인하며 새롭게 침설할 함체는 어디에 있는지, 어떤 각도로 있는지 모니터에 뜬 데이터를 보고 확인한다. 숫자를 보면서 함체의 위치를 조절하는 게 핵심 기술이다.

목표 지점에 도달하면 함체 안에 있는 탱크에 물을 채워 함체를 가라앉힌다. 처음에는 앞서 침설된 함체와 한 50㎝ 간격을 두고 떨어뜨린다. 바로 부딪히면 사고가 나기 때문이다. 함체가 땅에 닿으면 두 개의 함체를 고정기기(jack·잭)로 연결해 당겨 딱 닿도록 한다. 이후에는 조인트를 사용해 함체를 연결시킨다.”

거가대교 침매터널에 사용된 함체. 공사 당시 길이 182m짜리 함체 18개를 이어붙여 해저터널을 만들었다./대우건설 제공
거가대교 침매터널 공사 현장에서 대우건설 직원들이 함체를 침설하고 있다./대우건설 제공

―함체는 어떤 방식으로 연결하나.

“거가대교 침매터널은 길이 182m짜리 함체 18개를 붙여 만들었다. 연결 과정에 함체 접합 부위에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하기 위한 시설이 필요했다. 도로를 주행하는 데 옆에서 물이 들어오면 불안하지 않나. 물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구조로 만들어야 했다.

함체를 붙이는 단계는 총 3단계로 진행됐다. 우선 지나(Gina) 조인트를 사용해 함체와 함체를 연결한다. 지나 조인트는 1950년대 후반 이름을 날렸던 여배우 ‘지나 롤로브리지다(Gina Lollobrigida)’의 몸매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때 함체는 물이 들어가 있는 상태로 유지한다.

다음으로 함체에 들어있는 물을 뺀다. 그러면 공기로 채워진 함체 내부보다 바닷물로 채워진 함체 외부에 받는 압력이 더 커진다. 대기압이 1기압이라면 수심 40m에서는 5기압이 된다. 기압의 차이가 발생하면서 접합 함체의 외부에서 내부로 압력이 작용하고, 접합 함체가 침설된 함체에 달라붙게 된다.

지나 조인트와 수압을 이용해 일차적으로 함체 내부에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막은 뒤에는 오메가(Ω) 모양으로 생긴 ‘오메가 조인트’를 함체 내부에 설치해 이중으로 물을 막는다. 혹시라도 물이 샐 가능성에 대비해 접합 부위를 조인트로 연결해 수밀성(물의 침입을 방지하는 성질)을 확보했다.”

―어려움은 없었나.

“5번 함체를 침설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 함체를 침설하고 지나 조인트를 확인하니 고무의 특성상 일부 변형이 있었다. 기능적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보기에 좋지 않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직원이 각자 대책을 제시했고, 이를 실행하는 과정을 13일간 24시간 내내 반복했다. 당시 침설 협력업체였던 네덜란드 업체는 두손 두발 들고 포기해 버렸다.

침설선의 키를 네덜란드 업체들로부터 인계받아 대(大) 사투를 벌인 끝에 문제를 해결했다. 당시 공사팀장이었던 채봉철 팀장이 낸 아이디어가 주효했다. 함체에서 물을 빼기 전에 압축공기를 넣어 함체 내부의 압력을 높이자는 게 채 팀장의 주장이었다. 그러면 물을 빼는 순간 압축된 공기가 팽창하면서 함체를 살짝 밀어준다. 이 방법으로 조인트가 꺾이지 않고 평평하게 연결되도록 했다.

하늘도 도왔다. 수정작업 전에 기상조건이 악화된다면 함체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13일간 임시설치된 함체에 영향을 줄 만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 직원들의 노력과 운이 따른 덕분에 조인트 변형 문제를 무사히 해결했다. 그전까지 콧대 높았던 네덜란드 친구들도 이 사건 이후로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유호리~부산광역시 강서구 천성동 가덕도를 잇는 거가대교 사진. 교량이 끝나는 대죽도에서 가덕도까지는 해저터널로 연결돼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대우건설 제공

―함체를 해저에 고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통상 침매터널은 내해나 강에 주로 설치하는데, 패드 두 개만 깔아놔도 함체가 고정된다. 패드에 함체를 얹은 후 함체바닥과 강바닥 사이를 모래로 채우고 토사를 덮어 함체가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한다. 그러나 거가대교 침매터널은 너울성 파도가 치는 외해에 지어야 했다. 강한 파도가 와서 함체를 때리면 회복 불가능한 사고가 생길 수 있다. 파도가 치더라도 함체가 틀어지지 않는 방법이 필요했다.

함체 밑에 80mm 크기의 자갈을 깔아 문제를 해결했다. 웬만큼 강한 파도가 쳐도 자갈과 함체 사이에 생기는 마찰력으로 견딜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과정이 쉽지 않았다. 자갈을 깐 뒤 함체를 연결해야 하는데, 지나 조인트는 위아래로 4cm까지만 늘어난다. 이 범위 안쪽으로 함체가 들어오려면 포설 정밀도의 오차범위가 ±2cm의 이내여야 했다. 길이 182m 규모의 함체의 높낮이를 조절하며 자갈을 까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이런 정밀한 오차범위의 장비를 가지고 있는 회사는 없었다. 결국 우리는 장비를 직접 개발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동료들과 바다에 떠 있는 포설선(바지선)에서 출퇴근을 포기한 채 근 한 달간을 숙식하며 고군분투했다. 결국 1번 함체 침설 직전에 음파를 쏴서 자갈이 깔린 형상을 보는 방식으로 포설 정밀도 검증에 성공했다. 가장 보람찬 순간이었다. 수심 50m에서 지구상에 가장 정밀한 함체베딩(Gravel Bedding)을 포설할 수 있는 장비를 우리의 기술로 개발하게 된 것이다.”

―지진이나 화재 등 재해대응 시스템은 어떻게 구축했나.

“침매터널은 사고에 의해 구조물이 피해를 입으면 교체할 방법이 없다는 단점이 있다. 일반적인 터널은 문제가 생긴 부분을 뜯어내면 되는데 침매터널은 뜯을 수가 없다. 그래서 터널 내부에 사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우선 터널 내부를 파이어 프로텍션 보드(fire protection board)로 감쌌다. 파이어 프로텍션 보드는 1300도의 열을 약 1시간 30분까지 견딜 수 있다. 이 보드로 터널 내부를 감싸면 불이 나더라도 소방차가 오기 전까지 버틸 수 있다. 대피 통로도 일반적인 터널과 다르게 만들었다. 일반 통로와 달리 공기압을 항상 높게 유지해 매연이나 유해가스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지진은 진도 8까지 견딜 수 있도록 설계했다. 지각변동에 대한 대응력이 비교적 높은 침매터널의 특징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침매터널은 여러 개의 함체로 연결돼 절지동물처럼 움직일 수 있다. 유연하게 움직이지 못하면 지진이 왔을 때 터널이 깨져버린다. 그러나 침매터널은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어 지진이 많은 지역에도 유리하다. 연약지반에도 지반의 강성보강 없이 가라앉힐 수 있다.”

―현재 짓고 있는 이라크 침매터널은 어떤 부분을 가장 신경 쓰고 있나.

이라크는 오랜 전쟁속에 사회적 인프라가 파괴되고 투자도 되지 않아 상황이 열악하다. 이런 조건에서 짓는 해저터널인 만큼, 침매터널을 안정적으로 유지·관리할 수 있도록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에 주안점으로 두고 있다.

이라크 침매터널 공사현장 사진./대우건설 제공

이라크 침매터널은 딥 웰(Deep Well·우물을 설치하고 펌프로 물을 빼내 지하수위를 낮추는 공법) 시공을 통해 함체 제작장의 지하수위를 안전한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해저트렌치 준설, 침설 정밀조절시스템 등을 통해 함체를 침설하고, 터널 내부 화재에 대응할 방재시스템과 인공지능형 터널운영시스템도 적용한다. 전반적으로 운전자가 불편함 없이 운전할 수 있으면서도 화재나 사고 등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라크 침매터널은 중동지역에서 최초로 건설되는 침매터널이다. 터널이 완공되면 이라크 신항만에서부터 이라크 전역과 유럽대륙으로 나아가는 물류라인을 잇는 역할을 할 것이다.

―국내외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해 쉽지 않았겠다.

2014년에 해외로 나왔는데 지금 만 9년째 해외 현장을 돌아다니고 있다. 아이들이 크는 모습을 보지 못해서 아쉽다. 애들이 초등학생일 때 출국했는데, 아이들 졸업식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지금 큰애는 대학교 3학년이고, 작은애는 대학교 2학년이다.

2016년부터 이라크 알포우 서방파제공사를 마무리한 후 2019년에 귀국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우연찮게 이라크에서 침매터널을 발주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귀국을 미루게 됐다. 본사 발령도 났었는데 인사명령이 취소됐고, 다시 이라크로 돌아갔다. 2025년 준공될 예정이다. 이제는 이라크가 집처럼 느껴진다. 문화적인 차이가 있지만, 장기간 생활하면서 차이에 적응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해외 현장에서 고생하는 후배 토목인들에게 조언 한마디 하자면.

“젊은 시기에 해외에서 일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고 기후적인 여건이나 주재국의 사회인프라 등 모든 것이 국내보다 열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흘리는 땀방울 하나하나가 회사의 경쟁력으로 결실을 맺을 것이고 나아가 국가적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전 세계 침매터널 시장에 강력한 경쟁력을 확보할 기회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라크 침매터널에 더욱 발전된 기술을 적용하면 향후 수주하게 될 침매터널 공사에서 국내 건설사의 기술력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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