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아파도 받기 힘든 ‘상병수당’… 예산의 25%만 지급

김경은 기자 2023. 1. 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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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까다로워… 시범사업 6개월간 23억원에 그쳐

코로나 오미크론 변이 유행으로 하루 30만명씩 확진자가 쏟아지던 지난해 3월. 배달원 권중훈(33·가명)씨도 코로나에 걸렸다. 가족들 생계 때문에 일을 쉬기 어려웠던 그는 7일간 격리해야 하는 방역 수칙을 어기고 얼굴을 마스크와 스카프로 가린 채 배달 일을 계속했다. 일용직 노동자들에겐 코로나보다 해고나 소득 감소 등이 더 두려운 피해였기 때문이다.

이런 근로자들 고충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지난해 서울 종로구, 경기 부천시, 충남 천안시, 경북 포항시, 경남 창원시, 전남 순천시 등 6개 지역에서 상병수당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업무와 관계 없는 상병(傷病·질병과 부상)을 당해도 ‘일 걱정 없이 쉴 수 있도록’ 국가가 최소한 소득을 보장해주는 내용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8국 중 우리나라와 미국(뉴욕·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는 도입)을 빼곤 다 운용하고 있다.

상병수당 시범 사업 신청 및 지급 현황

그런데 6개월 동안 시행해 본 성적표는 형편없었다. 보건복지부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등이 취합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7~12월 6개월간 정부가 상병수당으로 지급한 규모는 23억7100만원으로, 당초 확보한 예산(92억원)의 4분의 1에 그쳤다. 신청 건수는 3856건이고 지급 완료된 경우는 2928건이었다. 신청에서 지급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30.4일, 지급 금액은 1인당 평균 81만원이었다.

너무 많이 신청해 예산이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와는 전혀 딴판인 결과가 나왔다. 애초 상병수당 홍보도 잘 안 돼 제도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많았고, 지급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울 종로구에 사는 자영업자 고종희(59·가명)씨는 암 판정 후 항암 치료를 받느라 보름가량 일을 쉬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상병수당을 신청해 겨우 받기는 했지만 신청 과정에서 보호자가 없어 아픈 몸을 이끌고 직접 서류를 준비해야 했다.

더구나 상병수당 도입의 계기가 된 코로나 감염 근로자들이 거의 혜택을 못 받는 모순이 일어났다. ‘대기 기간’이라는 조건 때문이었다. 상병수당 악용을 막기 위해 질병 유형에 따라 3~14일까지 대기 기간을 설정했는데 그 날짜 이상으로 아파야 수당을 지급한다. 예를 들어 대기 기간이 7일인 상병이면 8일 이상 아파서 쉬어야 수당을 받을 수 있는 방식이다. 코로나의 경우, 격리 기간(7일)이 지나면 대부분 일하러 나가는데 코로나의 대기 기간은 7일이라 8일 이상 코로나로 계속 아파 일을 쉬지 않는 이상, 지급받지 못한 것이다.

복지부가 조사한 바로는 상병수당을 신청했으나 받지 못한 경우는 대기 기간을 못 채운 경우 외에도 △(상병수당용) 진단서를 발급받은 후 14일 이내 신청해야 하는데 이를 넘기거나 △상병수당 대상이 아닌 자동차 사고나 산업재해로 아프게 된 경우 등이 많았다.

일을 못 하는 기간 동안 하루 4만3960원을 지급하는 금액도 지난해 최저임금의 60% 수준이라 이걸로는 생계 유지가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최대 120일까지만 주는 것도 질병 성격을 무시하고 너무 획일적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정부는 현재 1단계 시범 사업에 이어 7월에 3개 지역을 추가할 예정이다. 2025년 6월까지 3년간 시범 사업 결과를 점검해 전반적인 제도 정착이 될 수 있게 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2단계 예산은 지난해보다 2배 늘어난 180억9200만원. 하지만 2단계에서는 대상자를 ‘취약계층’으로 축소한다는 계획이어서 실효성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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