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집주인들 현금 6억 준비하라” 전세시장 폭탄 예고

정순우 기자 2023. 1. 25.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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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 구하기 어려워 ‘역전세난’ 불가피할 듯

이달 중순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입주 4년 차 아파트 ‘레미안블레스티지’ 84㎡(이하 전용면적) 전세 매물이 8억원에 거래됐다. 작년 6월 같은 면적이 16억원에 거래됐으니 반년 사이 전셋값이 절반으로 떨어진 것이다. 인근에서 영업 중인 한 공인중개사는 “전세 대출 금리가 치솟으면서 전셋집을 찾는 사람이 끊기자 전세 호가가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다”며 “당장 3월부터 근처 대단지 아파트들의 입주도 줄줄이 예정돼 있어 시장 분위기가 나아질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픽=백형선

주거 선호도가 가장 높은 지역으로 통하는 강남의 전셋값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작년 상반기만 해도 전셋집 부족으로 아우성을 쳤지만 지금은 보증금을 수억원씩 낮추고도 세입자를 못 구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전세 손님이 워낙 귀하다 보니 작년의 절반 수준 가격에 계약이 체결되기도 한다. 이런 와중에 올해 강남권에서 1만 가구 넘는 새 아파트 입주도 이뤄질 예정이어서 전셋값 하락이 더욱 가속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신규 세입자에게 받는 보증금으로 기존 세입자의 보증금을 다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가 확산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반 토막 난 전셋값...입주 폭탄까지

올해 들어 서울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 주요 아파트 단지에서는 작년 최고가에 비해 40~50%씩 떨어진 가격에 전세 계약이 체결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84㎡는 작년 5월 22억원에 거래됐지만, 이달엔 12억원에 계약서를 썼다.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도 같은 면적 전세 거래가가 작년 3월 15억8000만원에서 이달 8억원으로 49% 떨어졌다.

이처럼 전셋값이 단기간에 급락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는 지난 2020년 7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후 기존 세입자들이 계약을 갱신하면서 2년간 묶였던 전세 매물이 작년 가을부터 시장에 쏟아진 영향이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24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5만2279건으로 6개월 전(3만1740건)에 비해 65% 늘었다.

두 번째 요인은 금리 인상에 따른 ‘전세의 월세화’다. 2021년 7월 0.5%였던 기준금리가 3.5%까지 오르면서 2~3%대였던 전세 대출 금리는 6%대를 넘어섰다. 전세 보증금을 월세로 낼 때 적용하는 전·월세 전환율(서울 4.9%)보다 금리가 높다 보니 세입자 입장에서 대출 이자를 내며 전세로 사는 것보다 월세살이를 더 선호하게 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역대급 입주 물량도 대기하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강남 4구 아파트 입주 물량은 1만2402가구로 작년(3592가구)의 4배에 달한다. 당장 3월 강남구 개포동에서 3375가구 규모 ‘개포자이프레지던스’가 입주하고, 8월에는 2990가구 규모 ‘래미안원베일리’가 서초구 반포동에서 입주를 시작할 예정이다. 신규 아파트 입주가 몰리면 전세 매물이 늘면서 전셋값은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역전세 대비해 현금 마련해야”

전세 수요가 급감한 상황에 입주 폭탄까지 더해지면서 앞으로 강남권 집주인들은 역전세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올해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 집주인 대부분 전셋값에 거품이 끼었던 2년 전 세입자를 들였기 때문에 신규 세입자에게 받는 보증금으로 기존 세입자에게 돌려줄 보증금을 마련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도곡동에서 영업 중인 한 공인중개사는 “2년 전 시세대로 전세 계약을 맺은 집주인이라면 기존 세입자와 계약 갱신을 위해 최소 2억~3억원에서 많게는 5억~6억원 정도의 현금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집주인이라면 가급적 역전세에 대비해 여유 현금을 확보해두는 게 좋다”며 “정부도 역전세로 인한 세입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임대인에게 보증금 반환 목적 대출은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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