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음력설

김태훈 논설위원 2023. 1. 25.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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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전 군 복무 때 미군에게서 영어로 된 새해 달력을 선물받은 적이 있다. 달력 겉장에 ‘Year of Horse(말띠 해)’라고 크게 적혀 있었다. “한국에선 새해가 두 번 시작하는데 음력으로는 아직 말의 해가 안 됐다”고 알려줬더니 신기해했다. 1997년 1월생으로, 설 전에 태어난 필자의 아들은 ‘소띠 해에 태어난 쥐띠’다. 이 또한 양력과 음력으로 새해를 두 번 시작하는 데서 비롯된 혼란이다.

/일러스트=박상훈

▶영국 박물관이 올 음력설을 앞두고 박물관에서 열리는 한국 공연단의 설맞이 축하 공연 소식을 트위터로 전했다. 그런데 ‘Korean Lunar New Year(한국 음력설)’ ‘Seollal(설날)’이라고 썼다가 중국 네티즌들의 비난이 폭주하자 게시물을 삭제했다고 한다. 대신 토끼를 품에 안은 중국 여성 그림을 올리며 ‘Chinese New Year(중국 새해)’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영국 박물관은 언론에 밝힌 입장문에서 ‘세계적으로 중국 새해를 기념한다’고 해명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화교가 많이 진출한 유럽과 미국 지역 사회 등에선 이날을 ‘중국 새해’라고 부르며 축하 행사를 연다. 역사적으로도 지금의 음력 새해 첫날 기준은 청나라 때인 1644년 반포된 시헌력(時憲曆)이다. 중국뿐 아니라 한국과 동남아 대부분 국가의 설날 날짜가 시헌력을 따라 정해진다.

▶중국 네티즌들이 영국 박물관 트위터에 올린 어느 댓글은 한국을 ‘달력도 없던 나라’라고 했다. 중국 황제가 정한 시간에 맞춰 살던 나라라는 비아냥이다. 그때는 맞았는지 몰라도 이젠 시대착오적인 인식일 뿐이다. 중국에서 비롯됐지만 오늘날 음력설은 나라마다 다르게 기념한다. 명칭만 해도 춘제(중국), 설(한국), 뗏(베트남)으로 다르다. 십이지(十二支)도 한국과 중국에선 올해가 토끼 해지만 베트남은 토끼 아닌 ‘고양이 해’라고 한다.

▶영국 박물관의 음력설 해프닝을 보면서 ‘우리가 언제까지 중국식 새해를 쇠어야 하나’ 묻게 된다. 일본은 19세기 말 메이지유신 이후 태양력을 도입하고 음력설을 없앴다. 우리도 1896년부터 태양력을 썼다. 그런데 1985년 음력설이 ‘민속의 날’이란 이름으로 부활하고 이후 사흘짜리 법정 공휴일로 정해지며 옛날로 돌아갔다. 기념일은 시대의 생활상을 반영하기 마련이고, 지금 모든 국가 운영과 개인의 삶은 태양력을 따라 돌아가고 있다. 설뿐 아니라 추석도 시대 변화에 맞추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언제까지 해마다 두 번씩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하며 어색해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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