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2023년 계묘년 설을 지나며

임경수 부산사회적경제 네트워크 이사장·경영학박사 2023. 1. 2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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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수 부산사회적경제 네트워크 이사장·경영학박사

2022년 12월 31일 자정에 부산 용두산공원 종각과 서울 종로 보신각 등 전국 각 시·도에서 그동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단됐던 ‘제야의 종’ 타종행사가 3년 만에 열리는 의미 있는 시간을 경험했다. 그리고 희망찬 새해 인사를 나누었는데, 벌써 25일이 되어 음력 1월 1일 설도 지났다. 설날은 ‘민족의 대이동’ ‘귀성 전쟁’이라 불리는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이다.

장년층인 필자도 낯선 ‘육십갑자’에 의하면 올해 2023년은 ‘계묘년’이다. 육십간지의 40번째로 계(癸)는 흑색, 묘(卯)는 토끼를 의미하는 ‘검은토끼의 해’다. 검은색은 인간의 지혜를 상징하고, 토끼는 다산 번창 풍요 안정 평화의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토끼와 다산, 번창의 관계성에 관해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일화가 하나 있다. 바다 멀리 호주에서 벌어진 이른바 ‘토끼 역병’이라는 이야기다.

때는 1859년, 토마스 오스틴이라는 호주 사업가는 사냥용으로 쓰일 24마리의 토끼를 야산에 풀어 놓았다. 원래 호주는 토끼가 없었다. 사람이 사냥을 즐기기 위해서다. 이는 후에 예상하지 못한 절망적인 상황을 불러 왔다. 사냥 과정에서 도망친 몇 마리의 토끼가 그야말로 경이로운 번식률로 생태계를 뒤흔들어 놓은 것이다. 60년 후에는 약 100억 마리의 토끼가 되었다.

또 기막힌 우연이 하나 있었다. 사실 토마스 오스틴은 사냥용으로 재빠른 야생토끼를 주문했는데, 물량이 부족해서 식용으로 기르는 번식이 빠르고 건강한 집토끼가 섞여서 오게 되었다. 이 두 마리의 토끼가 교배하여 탄생한 슈퍼 우량토끼들은 일반 대륙과 생태계가 전혀 다르고 천적이 적은 호주 대륙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풀을 먹어 치우고 지나간 초원은 초토화돼 토착종이 사라져 가고, 천적인 뱀 악어 맹금류들은 잡기 어려운 재빠른 토끼 외에도 먹을 것이 많다 보니 토끼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야말로 토끼들의 세상. 그들의 득세에 위기를 느낀 호주 정부는 믿기 어렵지만, 실제 군사작전에 돌입한다. 토끼굴을 폭파하고, 포위 섬멸 작전을 벌이는 등 군사행동을 실시했다. 당시 기록 영상을 보면, 죽은 토끼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을 정도로 수백만 마리를 말 그대로 학살했지만, 이미 토끼의 숫자는 억대에 돌입한 시점이라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잡아들인 토끼들은 경제 대공황과 1, 2차 세계대전에서 식량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그렇게 ‘토끼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호주는 결국 다른 카드를 꺼내 든다. 바로 생화학전이다. 남아메리카에서 수입한 바이러스는 토끼에게 99.8%라는 놀라운 치사율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호주의 넓은 면적에 따른 다양한 기후가 변수였다. 이 바이러스는 습한 지역에 사는 모기나 벼룩이 옮기는데, 건조한 지역에 사는 토끼들은 아무 영향 없이 잘 살아갔다. 또한 0.2%의 살아남은 ‘슈퍼울트라 토끼’들이 남긴 DNA에 토끼들은 집단 면역을 얻고 말았다. 토끼들은 코로나와 같은 역병도 번식력으로 이겨낸 셈이다.

호주 정부는 최후의 방법으로 수천 ㎞에 다다르는 장벽을 세워 막아보려 했지만 건립하는 동안, 반대쪽으로 넘어와 버린 토끼에게 호주 정부는 두손 두발 다 들 수밖에 없었다. 꽃 줄기 새싹, 심지어 매운 고추까지 가릴 것 없이 다 먹어 치우는 먹성과 번식력으로 호주를 ‘비폭력 점거’해 버린 것이다. 귀엽고 약한 토끼가 사람의 무차별 공격을 이겨 낸 것이다.

2023년 현재, 대한민국이 만약 12간지 동물 중 가장 힘을 빌리고 싶은 동물이 있다면 필자는 토끼가 아닐까 싶다. 전 국민이 피부로 느낄 정도의 경제·사회의 양극화와 불평등은 심각할 정도이고, 더군다나 서로를 믿지 못하고, 비난하는 불신은 미래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번영과 평화의 상징인 ‘토끼의 해’가 진정 시작되었다. 이참에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보자.


우리나라 전래동화에 언제나 토끼는 지혜롭게 등장한다. ‘토끼와 호랑이’ 편, ‘별주부전’에서도 토끼는 꾐에 빠져 위기를 맞이하지만 그때마다 재치와 기지를 발휘해 유유히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상황을 역전시킨다. 그런 지혜로움을 대한민국에 좀 나누어 주었으면 좋겠다. 검은토끼의 기(氣)를 받아 근심 걱정 훌훌 털어 버리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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