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에 드리운 클린턴 전 장관의 그림자[글로벌 이슈/하정민]
하정민 국제부 차장 2023. 1. 25. 03:03
2012년 리비아 벵가지에서 무장 세력이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리비아 주재 미국대사를 살해했다. 미 여론이 들끓었다. 곧 주무 장관인 힐러리 클린턴 당시 국무장관을 포함한 관련자의 의회 조사가 시작됐다. 그 과정에서 클린턴 전 장관이 관용 이메일이 아닌 보안에 취약한 사설 메일을 사용했음이 드러났다. 그는 “편의를 위한 개인 메일 사용은 관행이었고 보안 위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가 장관 재직 4년간 최소 6만 건의 개인 메일을 주고받았음이 밝혀졌다. 전체 메일의 제출을 요구받자 “사생활이라 안보와 무관하다”며 그중 3만 건을 자의로 삭제했다. 사설 서버도 한 대라고 했다. 모두 거짓이었다. 연방수사국(FBI)의 추가 조사 결과, 삭제 메일에 기밀 자료가 대거 포함됐고 서버도 여러 대였다.
2016년 7월 FBI와 법무부는 “부주의했지만 고의는 없었다”며 불기소했다. 법적 제재는 피했지만 ‘거짓말쟁이’ 이미지가 굳어졌다. “백악관 주인이던 남편이 ‘위증’으로 탄핵 직전까지 간 걸 보고도 거짓말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을 어찌 대통령으로 뽑느냐”는 여론이 형성됐다. ‘이메일 게이트’로 불린 이 사건은 그가 넉 달 후 대선에서 패한 주요 이유로 꼽힌다.
하지만 그가 장관 재직 4년간 최소 6만 건의 개인 메일을 주고받았음이 밝혀졌다. 전체 메일의 제출을 요구받자 “사생활이라 안보와 무관하다”며 그중 3만 건을 자의로 삭제했다. 사설 서버도 한 대라고 했다. 모두 거짓이었다. 연방수사국(FBI)의 추가 조사 결과, 삭제 메일에 기밀 자료가 대거 포함됐고 서버도 여러 대였다.
2016년 7월 FBI와 법무부는 “부주의했지만 고의는 없었다”며 불기소했다. 법적 제재는 피했지만 ‘거짓말쟁이’ 이미지가 굳어졌다. “백악관 주인이던 남편이 ‘위증’으로 탄핵 직전까지 간 걸 보고도 거짓말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을 어찌 대통령으로 뽑느냐”는 여론이 형성됐다. ‘이메일 게이트’로 불린 이 사건은 그가 넉 달 후 대선에서 패한 주요 이유로 꼽힌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상황도 비슷하다. 부통령 시절 소홀히 취급한 기밀 자료가 당시 개인 사무실과 사저에서 속속 발견됐는데도 석연치 않은 해명으로 비판받고 있다. 최초 유출을 지난해 11월 초 인지했음에도 이달 9일에야 공개했고, 이후 21일까지 채 2주가 안 되는 기간에만 총 네 차례의 유출이 발견됐으며, 상원의원 시절에도 유출이 있었다는 점 등이 특히 그렇다. 야당 공화당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퇴임 당시 사저로 기밀문서를 불법 반출했을 때 매섭게 비판한 바이든 대통령의 적반하장이라며 공세를 편다.
유출 문건 중 바이든 대통령이 미 정보당국으로부터 보고받은 우크라이나 관련 내용이 있다는 점도 문제다. 우크라이나는 물론이고 에너지 업계와도 무관한 그의 변호사 아들 헌터는 우크라이나에 친미 정권이 들어선 2014년 현지 가스사 ‘부리스마’의 이사로 뽑혔다. 이후 5년간 월 5만 달러(약 6000만 원)도 받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2016년 우크라이나에 압력을 행사해 부리스마에 대한 비리 수사를 중단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후 바이든 대통령이 헌터의 사적 이익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했다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바이든 부자(父子)의 수사를 압박했다. 이를 정적의 2020년 대선 출마를 저지하는 용도로 쓰려 했던 것이다. 그러자 민주당은 2019년 트럼프 당시 대통령을 외세 결탁 혐의로 하원에서 탄핵 소추했다. 상원 부결로 최종 탄핵은 불발됐지만 트럼프 지지층은 아직도 바이든 부자가 우크라이나에서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고 본다. 바이든 대통령은 부리스마를 감싼 건 아들 때문이 아니라 당시 친미 정권을 위한 정책적 판단이라고 맞선다.
양측 대치가 여전한 상황에서 만일 바이든 대통령 측이 헌터에 관한 부정적 내용을 감추려고 기밀문서를 부적절하게 취급했음이 드러난다면 어떻게 될까. 미국을 넘어 국제사회에도 큰 후폭풍이 예상된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이를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연대를 무너뜨리는 도구로 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관련 없음이 밝혀진다 해도 확정될 때까지의 정쟁과 혼란이 불가피하다. 어느 쪽이든 다음 달 7일 국정 연설을 전후로 재선 도전을 공식화하려는 바이든 대통령에겐 악재다.
많이 망가졌다지만 청교도 윤리가 지배하는 미국 사회는 정치인이 아닌 미성년자의 거짓말에도 엄격하다. 10대 학생의 표절과 베끼기 등도 중범죄로 취급한다. 즉, 현직 대통령의 정직과 도덕성이 위협받는 상황은 그 자체가 국가 위기로 여겨진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49년 전 ‘워터게이트’ 도청 때의 위증과 사법 방해로 하야했다.
유출 문건 중 바이든 대통령이 미 정보당국으로부터 보고받은 우크라이나 관련 내용이 있다는 점도 문제다. 우크라이나는 물론이고 에너지 업계와도 무관한 그의 변호사 아들 헌터는 우크라이나에 친미 정권이 들어선 2014년 현지 가스사 ‘부리스마’의 이사로 뽑혔다. 이후 5년간 월 5만 달러(약 6000만 원)도 받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2016년 우크라이나에 압력을 행사해 부리스마에 대한 비리 수사를 중단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후 바이든 대통령이 헌터의 사적 이익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했다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바이든 부자(父子)의 수사를 압박했다. 이를 정적의 2020년 대선 출마를 저지하는 용도로 쓰려 했던 것이다. 그러자 민주당은 2019년 트럼프 당시 대통령을 외세 결탁 혐의로 하원에서 탄핵 소추했다. 상원 부결로 최종 탄핵은 불발됐지만 트럼프 지지층은 아직도 바이든 부자가 우크라이나에서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고 본다. 바이든 대통령은 부리스마를 감싼 건 아들 때문이 아니라 당시 친미 정권을 위한 정책적 판단이라고 맞선다.
양측 대치가 여전한 상황에서 만일 바이든 대통령 측이 헌터에 관한 부정적 내용을 감추려고 기밀문서를 부적절하게 취급했음이 드러난다면 어떻게 될까. 미국을 넘어 국제사회에도 큰 후폭풍이 예상된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이를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연대를 무너뜨리는 도구로 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관련 없음이 밝혀진다 해도 확정될 때까지의 정쟁과 혼란이 불가피하다. 어느 쪽이든 다음 달 7일 국정 연설을 전후로 재선 도전을 공식화하려는 바이든 대통령에겐 악재다.
많이 망가졌다지만 청교도 윤리가 지배하는 미국 사회는 정치인이 아닌 미성년자의 거짓말에도 엄격하다. 10대 학생의 표절과 베끼기 등도 중범죄로 취급한다. 즉, 현직 대통령의 정직과 도덕성이 위협받는 상황은 그 자체가 국가 위기로 여겨진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49년 전 ‘워터게이트’ 도청 때의 위증과 사법 방해로 하야했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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