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대통령과 영업사원 사이

기자 2023. 1. 2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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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쓰는 언어는 잠꼬대와 귓속말 빼고는 공적언어다. 레토릭이라 불리는 수사학은 공적언어를 사용하여 정치무대에 서는 사람이라면 배워야 하는 언어의 기술, 설득의 기법이다. 외교적 수사는 특히 국가의 이익과 운명이 걸린 주요사안이므로 직설화법보다는 완곡한 표현이 주로 사용된다. 적, 보복, 침략, 전쟁 등의 단어는 대표적 금기어다.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바이든/날리면’ 듣기평가에 이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적은 이란’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말은 양국이 대사를 초치하는 등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했다. 외교부는 부랴부랴 불필요한 확대 해석이 없기를 바란다고 해명했지만, 여당은 아무 문제가 없다며 엇박자를 내고 있다. 이전 북한의 드론 침범에 대해 윤 대통령은 응징, 보복, 전쟁이라는 금기어를 사용했다. 차라리 군 수뇌부의 대응이었다면 모양새가 나았을지도.

정치적 수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색시 외교론’에 잘 드러나 있다. 4대국 사이에 낀 한국이 자칫 찢기고 당할 수도 있지만, 4대국이 협력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는 마치 색시 하나를 두고 신랑감 넷이 프러포즈하게 만들 수 있는 것과 같다. 위기를 구애로 만드는 웅변술, 이것이 외교다.

UAE의 한국 투자 300억달러 선물 보따리를 든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며 세계 경제 포럼 연례 회의가 열리는 스위스 다보스로 날아갔다. 그의 특별연설이 있었고, 이어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의 질문이 이어졌다. 첫 번째는 공급망의 역할과 재편에 있어서 한국의 역할을 위한 실질적 대책은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이었다. 윤 대통령은 우리가 지닌 반도체 기술을 세계 곳곳에서 생산할 수 있게 하고, 우리의 앞선 기술을 협력사업을 통해 공유할 것이라 답했다. 누가 들으면 대한민국이 국영 반도체 기업을 가진 줄 알겠다. 반도체 공장 건립은 인건비, 노동력, 부지, 용수 및 전력 등의 인프라와 세제 혜택 등 각국 정부의 지원 등을 고려해 기업이 결정하는 것이지 정부가 관여할 사안은 아니다. 또한 나라마다 반도체 등 자국의 핵심 산업 기술 보호 체계를 강화하는 마당에 1호 영업사원의 답변에 적잖이 당황했다.

두 번째 질문은 에너지 전환에 있어서, 한국의 원전과 넷 제로로 가기 위한 전략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대통령의 답변과는 달리 현재 한국의 원자력 발전 비중은 20%가 아닌 30%대에 근접한다. 대통령은 원전 추가 건설 및 신재생에너지 기술 강화도 덧붙였다. 그러나 정부의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보면 2030년까지 원자력 발전 비율을 33%대로 확대하고, 신재생에너지는 30.2%에서 21.5%로 대폭 축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신재생에너지는 이제 기업의 사활과 연관된다. 민간 주도의 RE100은 세계적 기업들의 자발적인 탄소중립 프로젝트로, 기업이 쓰는 전력 100%를 2050년까지 태양광, 풍력 등 재생 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약속이다. 원자력은 RE100에 포함되지 않는다. 2022년 7월 말 기준으로 RE100에 가입한 세계적 기업은 376곳이고, 우리나라의 경우 2022년 9월 가입한 삼성전자를 포함해도 30개 미만이다. 우리나라의 재생 에너지 발전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애플사는 이미 RE100을 달성한 기업이다. 영업사원의 영업전략이 어째 어눌하다.

눈길을 끄는 건 ‘글로벌 위험보고서 2023’이다. ‘생활비’가 앞으로 2년 동안 글로벌 위험 요소 1위라는 사실이다. 사회 취약층은 더 심각하게 타격받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번 세계경제포럼의 주제는 ‘조각난 세계에서의 협력’이었다. 브렌데 총재는 폐회 연설에서 “공평한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함께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조각난 지금 대한민국에서의 답은 야당, 노조, 장애인, 이태원 참사 가족과 함께하는 것임을.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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