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126] 서천 벌벌이묵
설 명절 연휴 기간에 기온이 뚝 떨어졌다. 그래도 남쪽에서는 매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 무렵 서천이나 군산 사람들이 찾는 귀한 음식이 있다.
언뜻 볼 때는 도토리묵이나 우무를 생각할 수 있겠다. 겨울이 제철인 박대묵이다. 주민들은 묵의 탄력이 좋아 ‘벌벌이묵’이라 부른다. 박대는 갯벌이나 모래가 발달한 금강이나 한강 하구에 서식한다. 바다의 저층에 서식하는 박대를 잡기 위해서 안강망이나 끌그물을 이용한다.
박대는 구이나 조림이나 탕이나 어느 쪽으로도 어울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껍질을 벗겨 어묵을 만든다. 이렇게 알뜰하게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물고기가 있던가. 서천이나 홍원 수산시장 건어물 가게에서 마른 박대나 껍질을 만날 수 있다.
오일시장이나 수산시장에서 겨울에 박대묵을 만들어 팔기도 한다. 벌벌이묵을 상온에서 보관하면 녹아서 물로 바뀐다. 냉장고 안에도 오래 넣어둘 수 없다. 겨울에 필요할 때 만들어 바로 먹어야 한다. 설 명절을 앞두고 가족들이 모일 때 만들어 먹었던 음식이다. 박대 외에도 콜라겐이 많이 포함된 꼼장어나 홍어 껍질로도 어묵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박대 껍질은 두껍고 비늘이 많다. 비늘을 제거하고 껍질을 벗겨서 말리면 그 모양이 영락없는 뱀이 허물을 벗어놓은 것 같다. 박대를 잡은 배가 들어오면 손질을 해주고 껍질을 얻어와 묵을 만들어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다.
묵을 만들려면 말린 박대 껍질을 여러 번 씻은 후 솥에 넣고 푹 삶는다. 이때 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양파나 생강을 넣는다. 그리고 계속 주걱으로 저어 눌어붙지 않도록 한다. 한 시간 정도 지나면 껍질은 녹아서 물이 된다. 이 물을 걸러서 틀에 넣고 기다리면 박대묵이 만들어진다. 우무는 남해나 제주에서 여름에 시원하게 콩물과 함께 먹지만 금강이나 한강 하구에서는 겨울에 벌벌이묵에 양념을 올려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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