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마르지 않는 연금 [데스크에서]
25일 노인 622만명의 통장에 찍힐 국민연금 수령액이 5.1% 늘어난다. 인상률로 보면 지난 1999년(7.5%) 이후 최고다. 최근 10년 치 평균(1.3%)도 크게 웃돈다.
국민연금 수령액은 전년도 물가에 따라 달라지는데, 작년 소비자물가 상승률(5.1%)이 반영돼 올해 크게 올랐다. 정부가 국민연금의 최대 장점이라고 홍보하는 ‘물가 연동’ 장치가 작동한 것이다. 물가 상승이 반영되지 않으면 연금의 실질 가치는 유지되지 않으니까 수급자에게 불리하다.
정부는 이번 연금액 인상으로 올해 내줘야 할 돈이 작년보다 1조6800억원가량 증가한다고 추정했다. 수급자로선 불어나는 연금이 반가운 일이지만, 연금 재정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작년 출생아는 25만명대로 사상 최소이고 총인구도 3년 연속 줄어들고 있는데, 이대로 가면 2057년이라고 예측했던 연금 고갈 시기는 앞당겨질 게 뻔하다.
고물가 시름이 깊어진 만큼, 공적 연금 인상은 불가피한 일이긴 하다. 이웃 나라 일본도 오는 6월부터 노인 4000만명이 받을 공적 연금 수령액을 늘려준다. 그런데 방식이 한국과 사뭇 다르다. 68세 이상 일본 노인들이 받을 연금액은 작년보다 1.9% 오르긴 하는데, 물가 상승률(2.5%)에는 못 미친다. 즉 실질 연금액은 삭감되는 셈이다.
일본 언론들은 올해 ‘거시 경제 슬라이드’가 발동되어 연금 인상률과 물가 상승률에 0.6%포인트 격차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거시 경제 슬라이드란, 일본 정부가 현역 세대의 노인 부양 부담을 억제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다. 저출산·고령화라는 거대한 사회 변화를 고려해 재원 범위 내에서 연금을 지급하도록 조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에선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마이너스 연금’이 일본에선 종종 발생하는데, 바로 이 제도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로 현역 세대의 소득이 줄어들자, 일본 노인들의 공적 연금은 최근 2년 연속 깎였다.
일본 공적 연금의 ‘거시 경제 슬라이드’는 원래부터 있던 제도는 아니다. 저출산·고령화로 연금 파탄 논란이 거세던 지난 2004년, 고이즈미 정권이 지지층 표가 떨어지는 소리에도 개혁 칼날을 휘둘러 도입했다. 기성세대는 이대로 가면 바닥날 것이 뻔한 어두운 미래에 한발 물러서며 결국 수긍했다.
연금은 우리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질 것이란 믿음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한국 청년들은 부모 세대 봉양하느라 내가 낸 원금조차 받지 못할 것이란 불신의 늪에 빠져 있다. ‘세대 착취’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정부는 앞으로 국민연금 재정 상황이 어떨지 살펴보는 5차 재정추계 결과를 곧 공개한다. 재정 추계는 5년마다 발표하는데, 그동안 출산율은 세계 최저로 급감했고 노인 인구는 급증했으니 보나 마나 5년 전보다 암울해졌을 것이다.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내년에 65세 이상 노인은 1000만명을 넘어선다. 연금 수급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세대 갈등은 더욱 첨예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국민을 설득해서 연금 개혁을 위한 사회 대타협에 힘써야 하고, 정치권도 각자의 이해를 떠나 적극 협조해야 한다. 돈 낼 사람은 줄어드는데 혜택받을 사람만 늘어나는 사회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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