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위해 자유 택해… 남편 배신자 비난에 울컥”
‘런던에서 온 평양 여자’ 회고록 내
“남편이 의정 활동을 시작하니 악플 세례가 쏟아지더라. ‘배신자’라는 비난에 울컥했다. 우리 가족이 어떤 심정으로 한국에 왔는지 알리기 위해 책을 썼다.”
‘런던에서 온 평양 여자’. 오혜선(55)씨가 최근 낸 회고록의 제목이다. 그의 남편은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자 전(前)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다. 오씨의 작은할아버지 오백룡은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로 노동당 군사부장을 지냈고, 부친은 고위 정치 장교를 양성하는 김일성정치대학 총장이었다. 오씨는 명문으로 손꼽히는 평양외국어학원(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과 평양외국어대학 영어과를 졸업하고 북한 무역성에서 일했다. 태 의원과는 친구 소개로 만나 결혼, 31·26세 두 아들을 뒀다. 지난 18일 서울 광화문에서 오씨를 인터뷰했다.
북한 최고 ‘금수저’인 항일 빨치산 가문 엘리트는 왜 탈북했을까. 그는 오히려 그 덕분에 어릴 때부터 권력이란 한순간의 춘몽(春夢) 같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평양외국어학원 친구들 중 많은 수가 졸업할 때 쯤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권세가의 자녀들이었는데 아버지가 숙청당한 거였다.”
탈북을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잘 알려졌다시피 아이들이다. 그는 “2015년 여름 해외 외교관의 대학생 자녀들을 북한으로 들여보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며 “영국서 9년 가까이 살아 자유의 맛을 이미 본 아이들이 북한으로 돌아가면 반항하거나 폐인이 돼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으리라는 걸 나는 알았다”고 했다. 그는 또 한 가지 고백을 했다. 아버지가 소련 유학 시절 만난 고려인 아내와 낳은 딸, 이복 언니 이야기다. 아버지는 아내가 고려인이라는 이유로 당의 불신을 사자 아내와 딸을 소련으로 돌려보냈다고 했다. “평생 후회하며 사셨다. 그런 아버지를 봐 왔기에 내 삶은 충성이 아니라 자유를 향했다. 아버지와 달리 내 아이들을 지키고 싶었다.”
두 아이 엄마답게 남북한 육아의 차이에 대해서도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아이들을 ‘오냐오냐’ 키우는 것 같다. 북한에선 부모가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게 많다. 아이가 말썽을 일으키면 가족이 화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부모들은 아이들 감정을 많이 돌보던데 북한 부모는 그럴 여력이 없다.” 오씨는 2021년 이화여대 북한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행복하자고 남한에 왔는데 시간이 지나니 자존감이 떨어졌기 때문. 남편과 아이들은 치열하게 사는데 자신만 건들건들 노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빵·바리스타 자격증도 따고, 대학원도 갔다는 것.
남편이 국회의원 나간다고 했을 때는 처음부터 지지했을까. “말렸다. 망신당한다고.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는데 남편이 통화하는 걸 들으니 정말 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남편을 ‘미스터 설루션(Mr. Solution)’이라 부른다. 원하는 걸 그에게 말하면 다 이루어졌으니까. 아픈 큰아이 살려야 하니 해외에 나가자고 한 것도, 북한을 떠난 것도. 그런 남편을 남들은 믿는데 내가 왜 못 믿어? 싶었다. 그래서 응원하게 됐다.”
출판사의 반대로 마지막에 바꿨지만, 오씨가 처음 생각했던 책 제목은 ‘고마운 대한민국’이었다. “우리 가족은 대한민국에서 받은 게 정말 많다. 열심히 살아서 한반도 평화에 기여해 보답하고 싶다. 미안하고, 죄스럽고, 안타깝기만 한 북한의 가족, 친척들에게도 꿈과 힘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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