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급변과 천연두 유행… 신라·당나라 멸망 원인됐다”
전염병 번져 인구 줄고 경제 쇠퇴
의학사 연구자 이현숙, 논문서 주장
서기 10세기 초 신라의 멸망에는 기후의 변화와 전염병이 큰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가 나왔다.
의학사(醫學史) 연구자인 이현숙 한국생태환경사연구소장은 최근 학술지 ‘신라사학보’ 56호에 실은 논문 ‘생태환경으로 본 신라멸망에 대한 시론’에서 서기 8~9세기 동아시아의 기후가 한랭 건조했으며, 이 같은 환경에서 두창(痘瘡·천연두) 같은 전염병이 유행한 결과 당(唐)과 신라의 왕조 붕괴로 이어졌을 수 있다고 했다.
논문에 따르면 통일신라시대(남북국시대)에 해당하는 8~9세기는 ‘삼국사기’에 815년과 823년 각각 여름과 가을인 음력 5·7월에 눈이 내렸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한랭기였다. 최근 제주 당처물동굴 석순의 탄소 동위원소 성분 변화 연구에서도 750년 이후 한반도 남부가 한랭 건조했음이 드러나는 등 고기후에 대한 자연과학적 연구가 축적되면서 이 시기가 동아시아의 한랭 건조기임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랭 건조한 기후는 바이러스가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중국 의학서 ‘외대비요’는 중국에서 653년 두창이 유행했다고 기록했는데, 이후 한국과 일본 기록을 비교하면 9세기까지 두창 등 역병이 당→신라→일본으로 전파됐고 다시 신라와 당으로 거꾸로 유입됐다는 분석이다.
이 소장은 “서기 8~9세기에 한랭하고 건조한 기후가 지속됨에 따라 농작물 생산이 원활하지 못하게 됐고, 기근이 자주 발생해 면역력이 없는 인구가 양산됐다”고 했다. 이때 두창 바이러스가 유입돼 역병이 대유행하는 결과를 낳게 됐다. 이 시기 동아시아 사회는 한랭 건조 기후→생산량 급감→영양 불량 인구 급증→역병 유행→인구 급감→불경기→사회·경제 쇠퇴라는 빈곤의 악순환에 빠지게 됐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신라와 당나라는 지배 계층의 기득권 유지에 급급했고 개혁에 실패한 나머지 10세기 초 몰락하게 됐다. 한국과 중국이 비슷한 시기에 왕조가 멸망하고 장기간 분열의 시대를 겪은 것에는 기후와 질병이 야기한 동아시아적 현상이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일본은 710년 나라(奈良), 794년 교토(京都)로 천도한 뒤 개혁 정책에 비교적 성공해 기존의 지배 계층이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논문은 “당시에 횡행했던 역병은 두창만이 아니었을 것이고, 인플루엔자나 다른 바이러스 등이 시간을 두고 함께 유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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