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98] 따뜻한 나라에 사는 스파이
그 정보는 완벽하고 정확했습니다. 나는 물론 그것을 문트에게 보여주었지요. 내 상관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문트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어떤 조사에 착수하려는 참인데 방해가 되면 안 되니까 아무 조치도 취하지 말라는 겁니다. 첩자로 의심받을 가능성이 가장 적은 사람은 방첩과장입니다. 그런 사람에 대해 의심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놀라서, 입 밖에 내기는커녕 마음에 품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 존 르 카레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중에서
국정원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해온 민노총 본부를 이적 행위 혐의로 압수 수색했다. 이런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은 내년 1월 경찰로 이관된다. 2020년 12월, 민주당이 ‘국정원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한 탓이다. 지난 정권 당시 국정원장은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준다며 간첩단 수사 요청을 거부하기도 했다.
스파이 소설의 명작으로 알려진 작품 속 문트는 냉전 시절, 동독 정보부의 책임자다. 그는 과거 첩보 활동 중 런던에서 체포된 적 있지만 무사히 귀환, 정보부 최고 자리에 올랐다. 문트가 영국의 스파이라고 확신한 2인자 피들러는 그를 고발한다. 하지만 영국 정보부의 치밀한 각본에 따라 문트는 더 큰 신뢰와 힘을 얻고 오히려 피들러가 반역자로 처형된다.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디 있습니까?”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다. 이후 ‘간첩’은 시대에 뒤떨어진 말, 멸종된 존재라는 인식이 퍼졌다.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 박탈과 국가보안법 폐기 주장에도 힘을 실었다. 북한에 대한 지원과 그들의 도발에도 대응할 수 없는 군사 합의도 이루어졌다. 내용을 알 수 없는 USB가 북한에 버젓이 건네지기도 했다.
스파이는 소설과 ‘007′ 영화에만 있을까. 냉전 시대가 끝나고 철의 장막이 무너지고 공산 진영과 자유 진영의 대립이 없어졌다 한들, 우리나라는 체제가 다른 북한과 휴전선을 사이에 둔 세계 유일 분단국가다. 우리 주변에 북한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없을까. 그들을 경찰이 잡을 수 있을까. 간첩이 없다며 두 손을 놓는 것과 간첩이 없길 바라며 두 눈을 부릅뜨는 것,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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