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때마다 마음 아팠던 1월의 고향 가는 길 [삶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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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전이 아버지 기일이었다.
아버지 제사를 모시기 위해 고향 집에 다녀왔다.
그렇게 아버지는 고향 집으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셨다.
내년 아버지 기일에는 고향 가는 길이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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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전이 아버지 기일이었다. 벌써 4년이 흘렀다. 시간이 참 빠르게 흐른다는 걸 새삼 느낀다. 아버지 제사를 모시기 위해 고향 집에 다녀왔다. 고향 집에 가려면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강릉에서 삼척으로 가야 하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그 길에서 4년 전의 아픈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슬금슬금 떠올랐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식사도 제대로 못 하실 정도로 편찮으시다는 연락을 받고 차를 몰았다. 아버지는 심장 질환이 있는 데다 2015년 폐결핵으로 사경을 헤매신 적이 있다. 집 근처 의료원에 갔더니 폐결핵이었다. 폐결핵은 전염성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격리 치료가 필요한 데다, 치료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약 부작용도 매우 커서 80대 중반의 아버지에겐 큰 고통이라는 걸 2015년에 이미 겪었다. 강릉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치료받기로 하고 급히 차를 몰았다. 그렇게 아버지는 고향 집으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셨다. 나도 어머니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사인은 폐결핵이 아닌 심장마비였다. 아버지는 응급실에 머물다 격리치료실로 옮기는 과정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으셨다. 내가 사 간 추어탕도 잘 드시고 대화도 자유롭게 하셨는데, 가족이 동행할 수 없는 격리치료실로 옮기자마자 호흡이 가빠지고 곧바로 의식을 잃었다는 게 의료진의 설명이었다. 워낙 갑작스러워서 의료진도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응급조치가 늦어졌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곧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는데,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우리 가족의 뜻에 따라 인공호흡기 도움 없이 버티다가 다음 날 새벽 돌아가셨다.
응급실에서도 식사를 잘 하셨고 혼자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멀쩡하셨던 아버지는 왜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지셨을까? 그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 두려움, 공포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아버지는 입원 치료를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혼자 병실에 있는 걸 무서워하셨다. 2015년 폐결핵 치료를 받을 때 약 부작용으로 밥 한 술도 못 뜨고 섬망 현상을 겪으면서 사경을 헤매신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혼자 병실에 갇혀 그 고통스러운 치료를 또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앞이 캄캄했을 것이다.
격리치료실 입원을 기다리는 동안 아버지는 얼마나 무섭고 힘드셨을까? 그것도 모르고 나는 삼척 집에서 강릉 병원까지 가는 차 안에서도, 응급실에서 대기하는 동안에도 아버지께 "마음을 굳게 먹으시라", "어머니는 병실에 함께 못 계신다"는 말로 아버지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다면, 아버지께서 "난 좀 무섭다'고 엄살이라도 부릴 수 있게 해드렸다면, 아버지와 눈을 맞추고 손이라도 잡아드렸다면 그렇게 갑작스럽게 돌아가시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강릉 병원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버지와 나눴던 몇 마디 대화, 아버지의 표정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한바탕 눈물과 함께 뒤늦은 후회를 하곤 한다.
지난 설날 아침. 나는 차례를 지낸 뒤 어머니, 형님께 지난 4년간 감춰왔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마음 깊숙한 곳 어디에 똬리를 틀고 있었던 두려움, 죄스러움, 자책의 감정을 끄집어내 말하고 나니 꽉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어머니, 형님도 마찬가지였다. 내년 아버지 기일에는 고향 가는 길이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것 같다.
홍헌표 캔서앤서(CancerAnswer)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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