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첫 우승 사령탑’ 김영덕 전 감독 별세

안승호 기자 2023. 1. 24.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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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체 한국 야구를 강팀 반열에 올린 ‘1세대 지도자’
지난 21일 별세한 김영덕 전 OB 베어스 감독(왼쪽)이 2012년 7월21일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시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OB 첫 부임 후 삼성·빙그레 거쳐
프로감독 ‘통산 707승’ 이력 남겨
“강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신 분”
김성근·김광수 등 야구인들 애도

‘한국 프로야구 첫 우승 사령탑’ 김영덕 전 감독의 별세에 야구인들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김영덕 전 감독은 지난 21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

1936년 일본에서 태어난 김 전 감독은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다 1964년 한국에 와 실업리그를 평정했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에는 OB 초대 사령탑에 올랐다. 그해 OB의 우승으로 KBO 첫 우승 사령탑으로 기록돼 있다.

프로야구의 역사, 그 이전까지 함께했던 야구인들은 김 전 감독의 열정과 성품을 추억하고 있다.

OB 원년 멤버인 김광수 일구회장은 “농협 야구단에서 뛰던 시절, 감독님이 직접 전화를 주셨다. 프로야구가 생기니 함께하자는 말씀에 고민 끝에 OB 유니폼을 입었다”고 떠올렸다. OB 2루수로 합류해 원년 우승 샴페인을 마신 김 회장은 “감독님이 선수단 내 신구 조화에 섬세할 정도로 신경을 쓰셨다. 고참이던 김우열·윤동균 선배들을 움직이면서 팀을 하나로 묶으셨다”며 “OB가 우승할 수 있던 배경이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설날이던 지난 22일, 김성근 전 감독과 함께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다녀왔다. 김성근 전 감독은 일본 교토 가쓰라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59년 김영덕 전 감독을 처음 만났다. 당시 일본 프로야구 난카이 호크스에서 뛰던 김영덕 전 감독은 같은 재일교포 선수인 김성근 전 감독에게 용품 지원을 비롯해 많은 도움을 건넸다.

김영덕 전 감독은 1964년 대한해운공사에 합류하면서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김성근 전 감독은 고인에 대해 “당시 흔치 않은 사이드암 투수로 슬라이더와 싱커를 우리나라에서 처음 던졌다. 투수의 길을 새롭게 만들었다”며 “우리나라가 아무래도 처져 있을 때다. 그것을 일본하고 대등하게 싸울 수 있도록 만드신 분”이라고 말했다.

1969년 한일은행 감독대행으로 사령탑 이력을 시작한 김영덕 전 감독은 프로 출범 이후 OB(1982~1983), 삼성(1984~1986), 빙그레(1988~1993) 감독을 지냈다. 김성근 전 감독은 “내가 해태 2군 감독(1995)을 할 때 김응용 감독(당시 해태)과 김영덕 감독, 사령탑으로서 두 가지 스타일을 봤다. 김응용 감독이 전체적으로 강한 느낌이라면 김영덕 감독은 강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차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상군 천안북일고 감독은 고인의 리더십을 직접 체험했다. 서울권 학교를 마다하고 1978년 천안북일고를 선택한 것도 그해 북일고 야구부를 맡은 김영덕 전 감독의 권유 때문이었다. 훗날 프로야구 빙그레에서 뛰며 김 전 감독과 재회한 이 감독은 “내게는 아버지 같으신 분이다. 훈련에서는 굉장히 엄하셨지만, 정도 엄청 많으셨다”고 말했다. 이 감독을 비롯해 이정훈, 송진우, 한용덕, 김상국, 정민철 등 당시 빙그레 주축 선수들은 해마다 스승의날이면 김 전 감독에게 어김없이 선물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도 “늘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다.

김 전 감독은 프로감독 통산 승률 0.596(707승20무480패)의 빛나는 이력을 남겼다. 프로 원년 우승에 이어 1985년에는 삼성 사령탑으로 전·후기 통합 우승 역사도 썼다. 그러나 삼성에서 2차례, 빙그레에서는 4차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고도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다. 빙그레 전성기 우완 에이스였던 이상군 감독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안겨드리지 못한 죄송스러움이 늘 먼저 떠오른다”고 말했다.

‘야구인 김영덕’에 대한 기억은 여러 갈래로 이어진다. 고인이 남긴 족적이 그만큼 깊고 넓다.

안승호 선임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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