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앞둔 ‘초음속 여객기’…지구에는 미안한 일

이정호 기자 2023. 1. 24.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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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NASA, 상용화 목표로 시험 비행체 ‘X-59’ 개발 중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개발 중인 초음속기 ‘X-59’가 비행하는 상상도. X-59는 마하 1.4로 나는 게 목표이며, 향후 초음속 여객기 개발에 관련 기술이 활용된다. X-59는 올해 첫 비행에 나설 예정이다. 작은 사진은 마하 2로 날 수 있었던 과거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 NASA·위키피디아 제공
속도 마하 1.4, 여행 시간 절반 단축
소음도 차 문 닫는 수준으로 낮춰
소수 부유층만 감당할 ‘비싼 탑승권’

#2000년 7월25일 프랑스 파리의 샤를 드골 국제공항, 에어프랑스 소속의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질주한다. 그런데 하늘을 향해 기수를 들기 직전, 갑자기 왼쪽 날개의 엔진에서 화염이 치솟는다. 조종사는 일단 이륙한 뒤 긴급 회항을 시도했지만, 콩코드에는 그런 행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탑승한 109명 전원 그리고 콩코드가 내리꽂힌 지상의 호텔 직원 4명이 사망했다.

당시 화재와 추락 사고의 원인은 이륙을 위해 지상에서 속도를 붙이던 콩코드가 활주로에서 밟은 금속 이물질이었다. 이물질로 인해 터진 타이어의 파편이 연료탱크를 때리면서 불이 붙은 것이다. 이 사고로 인한 승객들의 불안감은 1976년 시작된 콩코드 시대가 마감되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2003년 콩코드의 마지막 비행 뒤 초음속 여행은 20년 동안 명맥이 끊겼다.

이런 가운데 초음속 여객기 부활 조짐이 일고 있다. 여행 시간 단축에 대한 대중적인 욕구와 기술 발전 때문이다. 선봉에 선 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시험 비행체 X-59이다. X-59의 목표 속도는 마하 1.4다. 군용 극초음속 항공기처럼 마하 5 이상의 극단적인 속도를 지향하지 않는다. 그만큼 X-59가 실현할 기술은 여객용으로 널리 상용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최근 환경단체에서 초음속 여객기의 대중화가 지구 탄소 감축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초음속 여객기의 좌석당 화석연료 소모량이 지금의 제트 여객기보다 최대 9배 많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은 것이다. 초음속 비행으로 인한 혜택은 비싼 탑승권을 감당할 수 있는 부유층에, 환경오염 피해는 공항 주변에 사는 저소득층에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 올해 초음속 시험기 첫 비행

NASA는 초음속 여객기 구현을 목표로 올해 첫 비행을 할 X-59라는 시험 비행체를 개발 중이다. 목표 속도는 마하 1.4이며, 승객 없이 조종사 1명이 탑승한다. 동체가 30m, 날개는 9m로 쐐기처럼 생겼다. X-59의 뾰족한 모양새는 음속을 돌파할 때 발생하는 굉음, 즉 ‘소닉붐’을 줄인다. 소닉붐을 발생시키는 소리의 장막을 송곳으로 구멍을 뚫듯 와해시키는 것이다. 소닉붐은 초음속 여객기의 대중화를 막는 대표적인 장애물이다. 사람과 가축의 청각을 자극하고, 건물에도 손상을 준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1973년부터 자국 대륙 위에서 초음속으로 비행하는 일을 막았다.

그런데 X-59의 등장으로 상황이 달라지게 됐다. NASA는 X-59의 소닉붐을 자동차 문을 세게 닫는 수준인 75dB(데시벨)까지 낮출 계획이다. 마하 2로 운항했던 콩코드가 천둥 수준인 105dB의 소음을 일으켰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조용하다. NASA는 2026년까지 X-59를 미국의 일부 도시 상공에 띄워 소음에 대한 반응을 주민들에게서 수집할 계획이다. 2027년에는 초음속 비행에 대한 새 규정을 만들 수 있도록 시험 비행에 대한 반응을 정리한다. X-59의 기술이 안정화하면 초음속 여객기 개발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좌석당 화석연료 소모량 최대 9배
환경오염 피해는 저소득층에게

■ ‘탄소 폭증·부자 전유물’ 우려

하지만 여행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이면에 중요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미국의 비영리 단체인 ‘PEER’은 최근 성명을 발표해 초음속 여객기가 연료를 많이 소모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PEER은 미국 정부에서 일하는 전·현직 공무원과 과학자들이 활동하는 환경단체다. 이 단체에 따르면 초음속 여객기는 마하 0.7~0.8 수준의 ‘아음속’으로 비행하는 현재의 제트 여객기보다 좌석 1개당 7~9배 많은 연료가 필요하다. 여기에 화석연료인 항공기용 등유를 쓰면 이산화탄소가 더 많이 배출된다. X-59의 마하 1.4 속도가 구현된 초음속 여객기에 타면 외국에 가는 비행 시간이 절반으로 줄지만 지구가 치러야 할 대가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폐식용유 등으로 만드는 ‘지속 가능한 항공연료’(SAF)를 초음속 여객기에 넣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종전 석유화학과 다른 제조 공정이 필요한 SAF는 아직 대중화되지 않았다. SAF가 널리 쓰이는 시대가 온다고 해도 초음속 비행기의 막대한 연료 소모량은 SAF 가격을 폭등시켜 수급 불안정을 불러올 수 있다고 PEER은 전망했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초음속 여객기의 혜택이 주로 부유층에 돌아갈 것이라는 예상이다. 과거 콩코드는 미국 뉴욕에서 영국 런던까지 가는 데 무려 1만2000달러(1480만원)를 받았다. 초음속 비행기는 빨리 날기 위해 좌석 개수가 적은 데다 연료 소모도 많기 때문에 탑승권이 비싸다. PEER은 “초음속 비행의 혜택은 주로 돈 많은 사람들이 누릴 것”이라며 “환경오염의 영향은 소음을 감수하며 공항 주변에 사는 저소득층에게 집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기후에너지국장은 “외국 출장의 경우 현재는 비대면 의사소통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져 있다”며 “여행 속도를 높이겠다고 탄소 배출을 늘린다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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