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동 인쇄소 골목 살려라…묘안 찾는 대구 중구

김현수 기자 2023. 1. 24.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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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 ‘활성화 방안’ 용역 발주
대구 중구 남산동 인쇄골목에서 40년째 인쇄업에 종사하고 있는 김재욱씨가 작업장에서 인쇄된 용지를 확대경으로 살펴보고 있다.
90년대 2000여곳…현재 96곳
운영자 고령화에 디지털 장벽
“언제 문 닫아도 안 이상해…”
골목별 기초조사·주민요구 등
상권 활성화 방안 마련키로

‘철커덕…. 철커덕…. 철커덕….’

지난 20일 오전 대구 중구 남산동 인쇄골목. 김재욱씨(54)의 인쇄기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종이를 뿜어냈다. 허름한 창고 같은 인쇄소 안에서는 후끈한 열기와 진한 잉크 냄새가 진동했다. 새하얀 종이에 알록달록한 색깔이 입혀지자 김씨는 확대경을 들고 인쇄된 종이를 유심히 들여다보기를 반복했다.

김씨는 인쇄업에 40년 종사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14살 때부터 기술을 배웠다. 자신의 인쇄소를 열기까지는 26년이 걸렸다. “그때는 이 골목 없이는 대구 관공서가 문 못 연다 캤지(그랬지). 그런데 인제는(이제는) 언제 문 닫아도 안 이상해.” 김씨가 1990년대 호황을 누렸던 인쇄골목을 추억했다.

대구 인쇄골목은 남문시장에서 계산오거리까지 500m 남짓한 거리다. 1990년대에는 2000여개의 인쇄소가 빽빽이 밀집해 있어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최대 규모의 인쇄단지로 명성을 떨쳤다. 대구시가 전문용역기관에 의뢰한 ‘대구 골목상권 실태조사 및 활성화 방안 수립(2021년 12월)’ 에 따르면 현재 이 골목에는 96개의 업체만 남았다.

종이에 금박을 입히는 인쇄소를 운영하는 김용수씨(73)의 인쇄기는 멈춰 있었다. 인쇄업은 9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가 가장 바쁘다. 연말에는 달력, 새해에는 입학과 각종 이벤트 홍보물 등 일감이 많아서다. 김씨는 “신년이면 인쇄기 돌아가는 소리와 종이 냄새가 골목에 가득했다”며 “이제 달력을 만드는 업체가 거의 없다. 증권사도 달력을 안 만들 정도로 일감이 과거보다 60~70%는 줄었다”고 말했다. 달력은 인쇄업체의 연말특수였다. 많은 기업이 홍보용 달력을 만들었지만 이제 은행 정도만 달력을 만든다.

인쇄업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발달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인쇄골목이 없으면 문을 못 연다던 관공서와 은행도 전자서명을 도입하면서 ‘종이’가 필요 없어졌다. 코로나 사태로 음식점 등의 홍보물도 크게 줄면서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이곳에서 37년간 인쇄소를 운영해온 박찬력씨(68)는 “인쇄업 운영자가 대부분 고령이라서 디지털 기기를 배우기도 쉽지 않다”며 “하나둘 문을 닫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예전만큼의 활기를 찾아볼 수는 없지만, 이 골목을 활성화하기 위해 중구청은 최근 용역을 발주했다. 동인동 찜갈비골목, 향촌동 수제화골목 등 각종 ‘명물 골목’을 살리기 위해서다. 인쇄골목은 골목 곳곳을 다니는 체험여행인 ‘대구 근대골목투어’ 제5코스에도 포함돼 있다.

중구청은 이번 연구 용역을 통해 골목별 기초현황을 조사하고 상인들의 실질적인 요구사항을 파악하기로 했다. 명물 골목별 경쟁력 확보를 위한 발전전략을 모색하고 골목 간 연계를 통한 상권 활성화 증대 방안 역시 찾아낼 방침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관광객들에겐 특색 있는 골목을 찾아가는 재미를 제공하고, 상인들에겐 활성화 방안을 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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