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백성을 위한다고 하지 마라” 토정 이지함의 교훈 [박종인의 징비]

박종인 선임기자 2023. 1. 24.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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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정비결' 저자로 알려진 토정 이지함 무덤. 충남 보령에 있다. 이지함은 성리학에 젖은 여타 선비들과 달리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정책을 실천한 지방관이었다./박종인 기자

* 유튜브 https://youtu.be/sQeS9qvqNLo 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율곡 이이, “나라 꼬라지가 나라가 아니다”

요즘은 매력이 많이 사라졌지만, 양력이든 음력이든 해마다 설 무렵이면 길거리에 나타나는 책이 있다. 바로 ‘토정비결’이다. 짧은 글로 한해 운세에 대해 미리 힌트를 얻고 위안을 삼거나 경계를 하라는 책이다. 이 토정비결 저자로 알려진 사람은 토정 이지함이라는 선비다. 사람들은 무명씨가 무명씨를 이어 써내려간 도참서적보다 ‘선비 이지함’이라는 저자가 있는 서적에 더 큰 신뢰를 준다. 하지만 각종 도참서가 그러하듯, 이지함이 토정비결 저자라는 확정적인 증거는 없다.

토정 이지함은 임진왜란 전인 명종과 선조 때 인물이다. 그리고 ‘토정비결’과 달리 냉정하고 실천적인 행정가였다. 절친한 벗 가운데 안명세라는 사관(史官)이 있었다. 그 안명세가 명종 때 당쟁에 휘말려 처형당하자 이지함은 세상을 등지고 초야에 묻혔다. 그러다 1573년 나이 쉰일곱에 포천현감으로 첫 관직을 얻었다. 이어서 1578년 아산현감을 두 번째 관직으로 일하다가 죽었다. 재직 기간은 불과 두 달이었다.

그때 친구인 율곡 이이가 선조에게 올린 상소 시리즈가 있었다. ‘나라가 마치 오래 손보지 않은 1만 칸 큰 집처럼 옆으로 기울고 위로 빗물이 새고 대들보와 서까래는 좀이 먹고 썩어서 구차하게 아침저녁을 넘기고 있는 것 같다.’(이이, ‘옥당진시폐소’, 1569) ‘200년 동안 저축해 온 나라가 지금 2년 먹을 양식도 없다. 나라가 나라가 아니다(國非其國·국비기국).’(이이, ‘진시폐소’, 1582) ‘지금 나라는 1년도 지탱하지 못한다(今之國儲 不支一年·금지국저 부지일년).’(1583년 2월 15일 ‘선조실록’)

1569년에 엉망진창이라고 했던 그 나라가 1583년에는 비축된 국고가 1년치도 안되는 황당한 나라로 변해 있었다. 그런 상소를 하는 친구 율곡에게 토정은 “나는 할 일이 많아서 성리학 공부를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자기는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방법으로 백성을 구하겠다는 것이다.

이지함은 ‘서울에 있는 창고는 한계가 있고 궁핍한 고을의 요청은 무궁하다’고 했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말은 틀렸고, 공무원이 백성이 스스로 가난을 탈출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고위공무원 이지함의 실천: 부패 척결과 현실적 복지

이를 위해 이지함은 두 가지를 실천했는데, 첫째는 부패 척결이다. 1578년 충청도 아산현감으로 부임한 이지함은 원망의 대상이던 양어장을 메꿔버렸다. 주민을 위해 주민이 만든 양어장이 관청 상납용 잉어 기르는 데 쓰인 것이다.

부패를 일소한 뒤 그가 벌인 작업이 ‘공짜 복지’ 철폐와 지속 가능한 복지였다. 마침 역병이 팔도에 돌아서 아산에도 거지들이 들끓었다. 그러자 이지함은 관아에 ‘걸인청(乞人廳)’을 만들었다. 단순하게 죽이나 쌀은 주는 기관이 아니었다. 능력에 따라 단순노동을 시키고 그 대가로 옷감을 지급하는 기관이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먹거나 입으려면 노동을 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에 따라 만든 기관이다. 훗날 정약용에 따르면 ‘두 달 만에 아산 주민 먹고 입을 것이 해결됐다.’ ‘임금이 덕을 쌓고 은혜를 베풀면 백성이 행복해진다’ 따위 탁상공론이나 공허한 윤리가 아니었다. 구체적이고 실효적이며 현실적인 행정을 통해 이지함은 지역사회 경제를 회복시켰다. 그가 썼다고 알려진 토정비결과는 전혀 상관없이 현실적 실천과 현실적 분석으로 공동체를 경영했다.

그게 500년 전인 16세기 봉건 조선에서 지방직 공무원 토정 이지함이 한 일이다. 21세기 공화국 대한민국은 어떤가. 국부(國富)는 대한민국 시민사회를 지탱시킬 만큼 튼튼한가. 혹시 500년 전 이율곡이 지적했듯 ‘나라 꼬라지가 나라가 아니게’ 나라가 굴러온 것은 아닐까. 혹시 그 국부를 시드머니로 삼지 않고 원금을 야금야금 갉아 지역 주민들에게 선심을 쓰는 지방관은 없는가. 말로 치국(治國)을 하고 나랏돈을 자기 돈인 양 써버리고 그걸 부패로 생각하지 않고 당연한 권한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공무원은 없을까. 계묘년 설에 떠오른 토정 이지함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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