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설 ‘냉동실 한파’

차준철 기자 2023. 1. 2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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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마지막날인 24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을 찾은 관람객들이 한파에 몸을 웅크린 채로 걷고 있다. 연합뉴스

집 밖으로 나서니, 거리가 바로 냉동실이었다. 냉장고 냉동실 온도가 대개 영하 18~20도인데 설 연휴 마지막 날인 24일 추위가 그 정도였다. 올겨울 최강의 한파가 몰아닥친 것이다. 전국에 한파 특보가 내려진 이날 서울의 아침 최저 기온은 영하 16.4도, 체감온도는 영하 25.5도였다. 수도권·경기 북부와 강원 등 중부 지방은 더 추웠다. 강원 철원군은 최저 영하 25.5도, 체감온도 영하 39.3도까지 떨어졌다. 남부 지방에도 영하 10~5도의 한파에 강풍과 폭설이 겹치며 시베리아급 추위가 엄습했다.

제주공항에서는 강풍과 폭설로 인해 이날 출발·도착 항공편 466편이 모두 결항하며 귀경객·관광객 4만여명의 발이 묶였다. 제주와 울산·인천·군산 등지의 여객선 운항도 상당 부분 통제됐다. 맹추위가 비행기도, 배도 멈춰세운 것이다. 갑작스레 수은주가 급락하자 서둘러 귀경길에 오른 시민들도 궂은 날씨와 그로 인한 도로 통제 탓에 고생을 겪어야 했다. 길이 막혀 발을 동동 구르고 강추위에 으르르 떨며 험난한 귀경길을 헤쳐나가야 했던 ‘엄동설한’이 2023년의 설 연휴였다.

큰 추위, 작은 추위라는 뜻의 ‘대한’(大寒)과 ‘소한’(小寒)은 24절기 중 24번째, 23번째 절기다. 대한은 지난 20일, 소한은 지난 6일이었다. 24절기가 중국 화북 지방에서 유래한 것이라 다소 시차가 있어, 예로부터 한국에서는 소한 무렵의 추위가 대한에 비해 강한 것으로 여겨졌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가서 얼어죽었다”거나 “소한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는 속담이 나온 연유다. 그런데 이제는 이런 속담들이 무색해졌다. 이례적인 기후 양상이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올해뿐 아니라 지난해와 2020년, 2016·2017년에도 대한 무렵이 소한 때보다 추웠다.

이번 한파는 영하 60도 이하인 북극의 찬 공기가 북서쪽에서 밀려 내려와 한반도를 덮치며 일어났다. 이 북극 한파는 중국·일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에선 이번 추위가 25일 아침에 절정을 이룬 뒤 차차 풀린다고 하는데 언제 또다시 불시에 최강 한파가 닥칠지 모를 일이다. 해가 갈수록 극한 폭염과 한파가 잦아지고 커지는 것은 기후위기에 대한 경고임에 틀림없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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