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풍진 세상 흔들리는 과객들에게 ‘줏대’ 세워준 선비였죠”

한겨레 2023. 1. 2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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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이의 발자취][가신이의 발자취] ‘전북 문단의 어른’ 고하 최승범 선생님 영전에
고인은 정년퇴임 이후 30년 가까이 고하문학관에서 집필에 몰두했다.

2023년 1월 13일 금요일. 눈발이 비칠 듯 말 듯, 하늘이 잔뜩 으등그리고 있었다. 매급시 섬닷한 겨울 저녁 귀가를 서두는 허퉁한 퇴근 무렵, 풍류 정신으로 일생을 살아온 고하 최승범 선생님이 비속의 세계로 떠나셨다. 선생님은 스스로 속되는 것을 매우 경계하였다. 예컨대 눈앞의 현실에 얽매이는 경박한 속물의 삶을 벗어나고자 했다. 선생님이 지향하는 비속의 세계는 바람의 흐름처럼 유연하고 활달한 풍류의 공간이었다. 선생님이 추구한 인생론은 다음의 시로 표상되었다.

‘풀잎에 바람이듯 우리 서로 있자요/ 갈미봉 구름이듯 우리 서로 있자요/ 정자와 느티나무이듯 세월 하냥 있자요’(최승범, 서시)

선생님은 풍류 정신을 선비의 생활 자세를 통해 구현하려 힘썼다. 지금은 전근대적 존재로 여겨지지만, “선비”란 전인적 인격의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학문과 덕성을 키우며, 대의명분을 위해서는 속세의 이익을 과감히 버리는 지조 의식을 가진 사람이다. 고하 선생님을 만난 사람들은 이 시대의 마지막 선비의 초상 이미지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불철주야 가리지 않고 연찬하는 학문과 문학에의 자세가 그렇다.

선생님은 전북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때에도 그랬지만 살아생전 매일 아침 일찍 ‘고하문학관’에 나와 온종일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분명하지 않은 어휘가 나오면 가차 없이 사전을 뒤적여 그 의미나 개념을 명확히 하는 진지함의 자세가 몸에 배었다. 선생님의 선비로서 자세는 지극히 엄격하고 치열하였다.

고하 선생님의 진면목은 외유내강의 성품에 있다. 선생님은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변해서는 안 될 인간사의 예절과 도리를 철저히 챙기고 지킨다. 선생님은 제자나 문우나 지인들의 개인사나 현재 상황을 언제나 소상하게 알고 있다. 이는 따뜻한 관심과 애정의 발로 때문이다. 선생님이 인연 맺은 사람들과의 안부나 정 나누기는 고상하고 단정한 성품이 드러나는 독특한 필체의 편지를 통해서이다. 선생님은 대략 하루 5통 이상의 편지를 받고 누구에게나 반드시 답장을 하였다. 또한 전국의 유명한 학자나 문학인이나 예술인들이 전주를 방문하면 꼭 선생님을 찾았다. 이때 선생님은 전주의 전통문화를 친절하고 소상하게 안내하고 융숭하게 대접하여 전북을 알리는 민간대사 역할을 즐겁고 흔쾌히 하였다. 그리하여 선생님은 전북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문인이며 어른이자, 궁극적으로 선비였다.

1950년대 중반 전북대 인문대학장을 지낸 가람 이병기(앞줄 맨가운데) 선생과 국문학과 사제들. 고하 최승범(뒷줄 맨가운데)과 장인인 시인 신석정(가람의 오른쪽), 시조시인 박병순(뒷줄 맨오른쪽) 등이다. 양병호 교수 제공

고하 선생님은 1931년 6월 24일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에서 태어나, 남원농고를 거쳐 전북대학교 인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학부, 석사, 박사과정을 마쳤다. 이후 1957년 모교 국문학과의 교수가 되어 1996년까지 후학을 양성하였다. 나아가 인문대 학장, 교무처장의 학내봉사 업무도 훌륭히 수행하였다. 고하 선생은 전북대 초대 문리대 학장인 가람 이병기 시인의 문하에서 수학한 제자이다. 고하 선생은 평소 스승인 가람 선생님을 존경하여 고전문학 연구와 시조 문학의 맥을 계승하였다.

또한 고하 선생님은 전북의 정신과 문화 발전을 위해 한국문인협회 전북지부장,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전북지부장, 한국문화재보호협회 전북지부장, 외솔회 전북회장, 전주지방법원 조정위원회 위원, 세계서예비엔날레 조직위원장, 고하문학관 관장 등의 다중적 역할을 해왔다. 예컨대 선생은 전북의 문학, 문화, 한글, 서예, 사회 안정 등의 여러 부면에서 기꺼이 봉사 활동을 해온 셈이다. 이러한 업적은 전북의 향토 문화 발전을 위한 선생님의 남다른 애정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한편 선생님은 학문과 덕성을 기르는 선비로서 삶의 지혜와 강령을 시조와 수필을 통해 표출하였다. 바지런한 시인의 연찬은 <여리시 오신 당신>을 비롯하여 30여 권에 이르는 시집을 출간하였다. 시집에는 내면에 살랑이는 미풍과 안빈낙도를 즐기는 늘 푸른 소나무의 문학정신이 숨 쉬고 있다. 선비의 문학정신은 세속에 함몰하지 않고 고결한 삶의 자세를 초지일관 유지하려는 긴장감으로 표명되고 있다. 고하 선생님은 일상의 소박한 행복과 자족적 삶의 자세를 낭차짐하게 시조로 승화하였다.

선생님은 아름답고 간결한 문체를 지닌 훌륭한 수필가이기도 하다. 소박한 전통음식을 고아한 예술의 경지로 묘파한 <풍미산책>을 비롯한 30여 권에 이르는 수필집을 출간하였다. 선생님은 수필을 통해 전통에 대한 애정, 고전 정신의 현대적 실천궁행, 한국적 자연의 본질 규명, 한국의 고유한 맛, 멋, 소리, 빛깔과의 교감, 선인들의 삶의 지혜 등을 맛깔나게 기록하였다. 고하 수필의 담담하고 정갈한 세상 읽기의 문체는 선비적 성품을 반영한 것이다.

선생님은 문학작품을 통해 부박한 현대에 과거 선조들의 삶의 지혜와 은근한 전통의 안정감을 접목하려고 의도한 것이다. 물질과 욕망 중심의 자본주의적 삶이 가져다주는 정신적 황폐를 극복하고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삶의 가치를 고양시키고자 한 것이다. 결국 선생님은 온고지신의 정신을 몸소 실천한 균형 잡힌 선비 학자의 전범으로 돋을새김 되었다.

고하 선생님은 1969년 지역동인지로 창간한 <전북문학>을 2022년에 이르는 50여 년 동안 홀로 지령 289호까지 발간하였다. 이는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가치를 향한 끈질긴 의지를 표상하는 사례이다. 나아가 각종 단체나 조직의 일을 하면서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업무 추진 능력은 선비로서의 은근과 끈기의 사표가 되었다. 고하 선생님은 학자, 시인, 수필가, 교수, 선생, 각종 단체나 조직의 책임자, 일상생활인 등 모든 부면에서 선비로서의 풍모를 한결같이 보여온 것이다.

선생님의 자신에게 엄격하고 철저했던 삶의 자세는 제자들에게 인생의 이정표가 되었다. 선생님은 사람과의 관계를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균형 잡는 시범을 몸소 보인 분이다. 이 풍진 세상을 허위허위 살아나가는 과객들에게 “줏대의 정신”을 실천궁행하신 것이다. 흔들고 흔들리는 본질을 지닌 세상에서 삶의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주체가 정신을 단단하게 세워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다. 선생님의 지조와 절개를 숭상하는 매운 선비정신이 휘청휘청 속세의 어둠에 젖어가는 겨울밤이다. 그러나 극락왕생하신 저승의 평온하고 온후한 선생님의 별빛이 바람 타는 이승의 어둠을 아리잠직 물리치고 있다. 적막하다. 고요할 것이다. 깊어져야만 한다.

양병호/전북대 평생교육원장,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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