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방역갈등 해법 찾기[이종섭의 베이징 리포트]
“방역 강화는 과학적 근거에 따른 것이며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결정이다.”
이달 초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방역을 강화한 정부의 입장이다. 방역 강화가 ‘비과학적이고 차별적’이라는 중국의 주장에 대해 정부는 일관되게 ‘과학적 조치’임을 강조한다. 익숙한 공방인데 공수가 바뀌었다. 중국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3년 가까이 국경을 걸어잠그고 강력한 ‘제로(0)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면서 세계 각국으로부터 비과학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때마다 중국은 ‘인민지상·생명지상’을 내세우며 자국의 방역 조치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과학적 조치라고 맞받았다.
지난달 중국이 전격적으로 방역을 완화하고 국경 재개방에 나서면서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 와중에 한국은 중국과의 방역 갈등의 최전선에 선 모양새가 됐다. 정부는 이달 초 중국발 입국자에 대해 단기 비자 발급 중단과 항공편 운항 축소를 포함한 전 세계적으로 거의 가장 강력한 수준의 입국 규제 조치를 취했다. 중국은 이에 대해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단기 비자 발급 중단으로 응수했다.
중국은 사실 다른 나라의 방역 강화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는 입장이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인 2020년 3월부터 바이러스 해외 유입 차단을 이유로 모든 나라에 대해 국경을 걸어잠그고 가장 오랜 기간 해외 입국자 격리 규정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이런 이유를 들어 중국의 보복성 비자 중단 조치가 ‘내로남불’이자 과잉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정부가 ‘과학적’이라고 강조하는 방역 대응에 감정적 여론이 개입돼서는 곤란하다.
방역 갈등 상황을 냉정히 짚어보자. 중국이 취했던 해외 입국자 규제는 예외를 두지 않았다. 반면 한국 정부의 입국 규제는 오로지 중국만을 겨냥한 것이다. 중국이 ‘차별적 조치’라고 반발하는 이유다. 물론 방역 강화 배경에는 중국 내 코로나19 감염자 폭증 상황이 자리잡고 있다. 급격한 감염 확산으로 중국발 변이 바이러스 출현 가능성에 대한 경계심이 커졌지만 중국은 감염자 통계 발표마저 중단하며 각국의 우려를 키웠다.
다만 한국의 방역 강화 조치도 보기에 따라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예컨데 입국 전후 코로나19 검사를 통해 감염자를 걸러내고 확진자에 대해 시설 격리 조치를 취하는 상황에서 굳이 선제적으로 비자 발급 중단을 선언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인접국으로서 인적 왕래가 많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가까운 일본만해도 비자 발급 중단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강력한 전파력을 가진 XBB.1.5 변이가 유행하는 미국에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잠재적 가능성을 이유로 자국에 대해서만 입국 규제를 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정보의 투명성 차이 등을 이유로 들 수 있겠지만 중국발 입국 규제를 정당화하려면 보다 과학적인 설명이 필요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의 방역 갈등을 풀려면 한·중 양국 모두에 스스로 강조해온 과학적 태도가 필요하다. 국민 정서나 정치가 방역을 압도하고 외교적 갈등으로 비화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방역당국은 중국인 비자 중단 시한을 이달 말까지로 정하고 추후 연장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정부 입장대로 철저히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판단이 내려져야 하는 시점이다. 중국도 과학적 판단과 무관한 정치적 보복성 조치는 빨리 거둬들여야 한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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