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장’ 돼 버린 음력 설 축제…잇단 총기난사로 최소 18명 희생, 대다수 아시아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불과 48시간도 안돼 총기 난사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최소 18명이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 대다수는 음력설을 맞아 이민 생활의 고단함을 달래던 아시아계 미국인이었다.
몬터레이 파크 희생자 대부분은 60~70대 중국· 베트남계 고령 이민자들
23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LA) 수사 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 21일 오후 10시20분쯤 LA 교외에 있는 몬터레이 파크의 ‘스타 볼룸 댄스 스튜디오’에서 베트남계 미국인 휴 캔 트랜(72)이 총기를 난사해 11명이 숨졌다. 희생자 대부분은 60~70대의 중국계 또는 베트남계 노인들이었다.
총격 당시 트랜은 대용량 탄창이 달린 공격용 총격으로 42발의 총알을 발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목격자들은 트랜이 교습소 안에 들어서자마자 총격을 가했다고 전했다.
범행 20분 뒤쯤 그는 인근 알햄브라의 댄스 교습소 ‘라이라이 볼륨 스튜디오’로 이동해 2차 범행을 시도했지만 현장에 있던 시민에 의해 제압당했다. 희생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막은 셈이다. 트랜은 이후 차로 달아나 40분 떨어진 토런스의 쇼핑몰 인근 주차장에서 스스로 총을 쏴 숨졌다.
트랜은 1966년 이후 발생한 총기난사범 가운데 최고령이다. 비영리 단체 ‘폭력 프로젝트’에 따르면 지난 60년간 미국에서 총기난사를 저지른 범인의 평균 연령은 32세였다.
수사 당국은 트랜의 정확한 범행 동기를 조사하고 있지만 개인적 원한에 의한 범행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뉴욕타임스, CNN 등은 교습소의 오랜 회원이었던 트랜이 일부 회원들에 불만을 품고 총격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전했다.
비극이 발생한 몬터레이 파크는 아시아계가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과반을 넘은, 아시아계 이민사에서 상징성을 지니는 지역이다. 특히 스타 볼룸 댄스 스튜디오는 약 30년 전부터 지역 사회의 친교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곳이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중국계 노인들이 라틴 댄스 차차나 룸바를 배우기 위해 교습소를 찾았다. 때때로 동유럽계 이민자나 미국인들도 방문해 서로 어울린 것으로 알려졌다.
총기난사는 몬터레이 파크에서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열린 음력 설 기념 축제가 끝난 지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당시 약 10만명의 주민들이 거리에 나와있던 것으로 추산된다.
댄스 교습소 단골이었던 65세 마이 느한은 주차장 내 차량 안에 있다가 범인의 총에 맞아 숨졌다. 난의 조카는 “비록 마지막 댄스가 되었지만 그가 좋아하던 춤을 마지막까지 즐겼다는 것은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몬터레이 파크 인근에 한인들이 운영하는 식당 등이 있지만 피해는 없었다. 제임스 안 LA한인회 회장은 통화에서 “한인들 피해가 없었다고 안도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 아시아 커뮤니티 일원으로 슬픔을 당한 중국계 단체들에도 손을 내밀어 연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불과 40여시간 만에 캘리포니아 서부에서 또 총기난사
그러나 비극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몬터레이 파크의 참극으로 인한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캘리포니아 서부에서 또 다른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해 중국인 노동자 다수가 목숨을 잃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30분쯤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48㎞가량 떨어진 도시 해프문베이 외곽에 있는 버섯농장과 그에 인접한 운송업체에서 연달아 총격이 발생해 모두 7명이 숨졌다. 해당 농장에서는 중국계 노동자들이 다수 일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해프문베이에 거주하는 자오춘리(67)의 단독 범행으로 보고 있으나 아직 범행 동기는 파악되지 않았다. 그는 경찰 지구대 주차장에 정차된 자신의 차량에서 저항 없이 체포됐다.
크리스티나 코퍼스 보안관은 용의자가 두 범행장소 중 한 곳의 어린이 돌봄 공간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범행 당시 농장 일꾼들은 물론이고 어린이들도 현장에 있었다고 밝혔다. 코퍼스 보안관은 “아이들이 하교한 후에 사건이 벌어졌다”라며 “아이들이 이를 목격하다니, (참담함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해프문베이는 농업에 종사하는 1만2000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해안 도시로, 백인들이 주로 거주해 아시아계의 비중은 5%에 불과하다.
상대적으로 강화된 총기 규제 법률이 시행 중인 캘리포니아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연달아 벌어진 점은 충격을 더하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지난해 법원의 위헌 판단 전까지 반자동 소총 AR-15 등 공격용 총기도 금지했다. 로버트 루나 LA카운티 보안관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가장 엄격한 총기 규제 법안이 있지만 오늘 일어난 일을 보라”며 “현상 유지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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